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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역사왜곡망언 규탄 범국민대회김순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 파장
  • 이맹영목사
  • 승인 2019.02.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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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역사왜곡망언 규탄 범국민대회>가 지난 2월 23일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에는 광주에서 시민들이 1,500명 가량 상경하여 참석하였다. 

 

The Honorable Moon Hee-Sang. 

Speaker, National Assembly, Republic of Korea. Seoul, Korea

Dear Mr. Speaker,

We are American citizens who lived in South Korea during the years 1965-1991. We were Presbyterian and Baptist missionaries in Gwangju from 1969 ? 1985, raised our families there, and worked with Gwangju Christian Hospital, Honam Seminary, the Catholic seminary, Chosun University and Chunnam University,the Gwangju YMCA, and with Presbyterian and Baptist churches throughout the area.

We were present during all of the Gwangju Sateh, the “Incident” which is now most often called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t was not an organized movement ? it was an illicit assault upon our city of 800,000 people by military forces under the control of Chun Doo-Hwan.

Our husbands took the photographs used in Chun’s trial ? of the helicopter that fired upon the people of Korea, in Rev. Arnold Peterson’s case, and of many of the dead who were brought to Gwangju Christian Hospital during those tumultuous times, in the Rev. Charles Betts Huntley’s case. Believe us, we know what happened in Gwangju ? we were eye-witnesses, and we recorded what we saw and experienced.

Now we hear that in a public hearing held at the National Assembly on Feb. 8, three lawmakers of the Liberty Korea Party joined a far right figure portraying the May 18 uprising as a putsch instigated by 600 North Korean provocateurs ? which is blatantly false.

Democracy must be based upon truth, and people need to trust their lawmakers to know the truth, tell the truth, and act in truth. What these three lawmakers said was false, and very hurtful to the people of Gwangju and the Chullas, and to the nation of South Korea as well.

To this day, there are people who deny the Holocaust ever occurred ? their denials would wipe away the reality of the suffering and loss of millions of people to the world, and the truth of history itself. We would hate to see the same thing happen in South Korea, if these May 18 deniers of the truth are allowed to speak lies in the face of actual, historical reality.

We would hope these three lawmakers will be rebuked if not removed, so that people can trust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Arnold Peterson went to be with our Lord, Sept. 24, 2015 and Betts Huntley June 26, 2017. The people of Gwangju were always in their hearts and will forever be in ours.

We love Korea, and we love the truth. We are grateful for our years in Korea, and are grateful to have been there to see and help even in the midst of great ? and unwarranted ? violence on an entire city. We will always love Korea, and we will always bear witness to the truth we know.

Sincerely yours,

Martha Huntley and Barbara Peterson

세명의 자유한국당 의원은 ‘5·18은 600여명의 북한 특수공작원이 사주한 난동’이라는 한 극우인사의 노골적인 거짓말에 동조했다. 세명 국회의원의 말은 뻔뻔한 거짓이며, 광주와 호남 시민들, 나아가 한국인들 모두에게 상처를 줬다. 우리의 남편인 아널드 피터슨 목사가 찍은 헬기 사격 사진과, 찰스 헌틀리 목사가 촬영한 광주기독병원으로 이송된 수많은 희생자의 사진은 전두환의 재판에도 제시됐다. 우리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최근 홀로코스트(집단학살)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수백만명이 겪은 고통과 상실, 역사의 진실을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5·18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역사적 진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광주에서 벌어진 부당한 폭력의 한가운데서 이를 목격하고 도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우리는 앞으로도 한국을 사랑할 것이며, 우리가 아는 진실을 증언할 것이다. 

헌트리 목사 부인

지박사는 518때 북한 특수공작원 600명이 내려와서 5ᆞ18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때 가담한 사람으로 240명의 광수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사진을 공개하였다. 이들은 황장엽, 리을설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광주시민군을 북한 특수공작원과 동일한 범죄자인 여적죄인(최하 사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CIA와 극보수주의자인 월간조선 조갑제기자는 5ᆞ18때 북한군 광주침투설을 부정한다. 

그와 자한당에게 묻는다.
1. 그 당시 삼엄한 계엄상태에서 특히 광주외곽지역을 물샐틈 없이 계엄군이 지키고 있었는데, 북한군인 600명이 북한에서 광주까지(500km)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침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가 있는가?

2. 간첩 600명이 평양에서 광주까지 침투 할 때 계엄사령부와 보안사를 비롯한 대한민국 군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 간첩들의 침투를 방조한 책임을 누가져야 하는가, 침투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이유와 대한민국 군인이 단 한 명의 간첩을 못잡은 이유가 무엇인가?

3. 광주에 침투한 240명의 광수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공개하였는데, 단 한 명이라도 이에 대한 실체적인 증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4. 북한 고위층에 해당하는 240명의 광수들이 특수공작을 완전하게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 고위지도층의 업적(노블래스 오블리주)을 인정하고 있는 종북주의가 아닌가?

5. 황장엽이 귀순하여 왔을 때 그가 5ᆞ18 때 광주에 내려왔었다는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6. 광주시민군이 북한 특수부대원과 동일한 여적죄인이라고 하는데, 지박사의 주장대로라면 공수부대원과 북한 특수부대원이 광주시민군을 학살하였기 때문에 지박사의 시스템으로 볼 때 계엄군이 여적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7. 지박사의 시스템으로 볼 때 피해자는 광주시민군이고, 가해자는 계엄사와 보안사가 진두지휘한 공수부대와 북한 특수부대가 맞지 아니한가? 지박사의 주장대로라면 광주시민군을 학살한 사람들은 전두환이 지휘했던 공수부대와 북한특수군이 아닌가?

8. 518때 자신이 남파되었다고 주장하는 탈북자에 의하면 270명이 남파되어 200명은 죽고 70명이 북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는데, 죽은 200명의 신원이 단 한 명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5ㆍ18 시작부터 끝까지 참여했던 저는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간첩이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남파된 고정간첩들의 활동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광주시민들이 이들에 의하여 추동된 것은 결코아니다. 지박사처럼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518 민주화의거를 왜곡하는 기만 책동에 불과하다.

만일 고정간첩들이 개입했다면 계엄군과 보안사는 이들을 단 한 명도 검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시민들만 폭살한 수치스런 정치 군대에 해당된다.     

엉터리 시스템으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산화한 518영령들을 모독하는 행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배반하는 일이라는 것을 자한당은 왜 모르는가? 그들의 속셈과 정체가 의심스럽다.

남산자락, 베드로 마을(두터운 바위 마을, 厚岩洞), 양선교회(Goodness Church), 이맹영 목사.

다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금년은 5 • 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항상 5월이 되면 고교 때 부른 ’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 이 노랫말이 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이 노래는 자연발생적인 순수한 마음으로 역사적 현장에서 가슴으로 부른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아직 2월인데도 가슴이 답답하고 쓰라립니다.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제 인생의 큰 분수령이 되었기 때문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당시 저는 광주일고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학업에 정진하고 있었던 고교생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5 • 18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부가 반대적인 행위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처음으로 목격한 곳은 저희 학교 교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검을 총뿌리에 꽂고 저희들에게 위세를 가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수업을 중단하고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참을 수 없는 의분으로 인하여 적극적 가담자가 되어 선두지휘차량 Speaker가 되어 시민을 독려하는 Speech을 열심히 하면서 수습 전 날까지 여러모로 이 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래서 5.18민주항쟁 그 당시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불순한 세력들이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간첩들에 의한 폭거로 규정하는 천인공노할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가기념일로 정할 정도로 명백한 일들을 전복하려고 하는 이들의 국가관은 어떤 국가관인지 참으로 개탄치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혼란했던 그 당시에 간첩들이 그들의 임무수행을 위하여 광주에 집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에 의해 5 • 18 광주민주화운동이 조종되었다는 주장은 빛고을 광주의 혼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이 인지하는 사실을 거역하는 반역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광주 시민군들은 간첩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구금하면서, 국법을 저버린 군부에 항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에 저 또한 의심스러운 두 사람을 체포하여 이를 담당하는 시민군에게 넘긴 일이 있습니다.

저는 5 • 18로 인하여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여 청운의 꿈을 접고 젊은 날을 분노한 황소처럼 지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님을 만나 늦깍이로 신학을 공부하여 장로교 목사가 되는 성은을 입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분수령이었던 5 • 18은 육사생도를 꿈꾸던 저에게 선지생도가 되도록 그 방향을 바꾸게 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연하게도 제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5 • 18의 장본인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 전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 너는 이제 이들을 용서해야 할 사람이 되었다.”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두 분께 성경책을 서울구치소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죄를 용서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반갑고 기쁜 일은 노태우 전대통령께서 큰 딸 노소영씨의 진심어린 기도의 열매로 몇 해 전에 신앙인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인이 되기 전에 구치소에서 성경을 열심히 읽는 은혜를 입었다고합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97년 현 자한당의 전신인 민자당 집권 때 사법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판결이 완료되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반헌정 반정부 반역사적 반세계적인 일입니다.

다시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 땅에 용서와 평화가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980년 5월을 회고에 보았습니다.

이맹영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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