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까지 광주 전남도청을 사수했던 시민의 이야기
이양현 당시 5.18항쟁지도부 기획위원 |
엊그제 광주5.18민주항쟁 당시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이 함락되던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켰던 5.18항쟁지도부 기획위원 이양현(68) 선배와 서울근교에 있는 산을 함께 오르면서 37년 전에 있었던 못다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심경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의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들은 총 한자루를 들고 도청 유리창을 하나씩 맡고 있었는데 이양현의 바로 옆에 있던 윤상원열사가 복부에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이양현은 그 순간 윤상원이 조금 더 편하게 죽도록 해 주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숙직실에서 이불을 가져다 바닥에 깔고 윤상원이 그 이불 위에서 죽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언론들에서 찾아와 인터뷰를 해 갔다고 한다.
5월 27일 새벽에 도청이 진압되었는데 5월 26일 밤, 한 때 대여섯 명만 남고 시민들이 거의 다 도청을 빠져 나갔었다. 그 시간 이양현은 도청을 사수하며 지난날 선배들로부터 배운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되새기며 총대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담양까지 도주했던 친구 정상용(나중에 광주 서구 국회의원)이 친구 이양현이 불쌍하다고 동지들을 이끌고 되돌아 왔단다. 하나 둘 모여든 시민들 200여 명이 마지막 밤을 지키다 국군의 총탄에 죽어갔고,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상무대로 끌려 갔었다. 거기에는 이양현의 고교후배들인 김태종, 김선출, 김윤기, 채영선 등이 같이 잡혀가서 모진 꼴을 당했다. 이양현은 임신 7개월 된 아내와 함께 잡혀 갔는데, 아내에게 "당신은 살아 나가 오늘의 역사를 증언해 달라"고 했더니 그 아내는 "남아서 같이 죽겠다"고 해서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최근에 우파진영의 자발적 태극기부대 회원들로부터 강사로 초청을 받아 광주5.18에 대해서 증언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5.18피해자들이 5~6억씩 돈을 받아먹었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였단다. 그래서 이양현이 답하기를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한 기록 때문에 나온 보상금 5천만원이 전부였고, 그 돈은 주변에서 생활비 꿔다 쓴 빚 갚는데 사용했다”고 말했단다.
그때 홍남순 변호사, 정상용 전 의원 등 5.18핵심 활동가들은 보상금을 일체 받지 말자고 결의한 이후, 보상신청서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요즘 지만원이란 사람이 광주5.18민주항쟁은 '광랑'이라는 자발적 빨갱이 세력과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 특수부대가 일으킨 폭동이라고 거짓뉴스를 남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만원은 광주시민들을 총포로 진압한 것이 정당한 조치였다고 어처구니 없는 주장하고 다닌다. 이영현을 초청했던 태극기 부대는 주로 지만원이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인용하여 가짜뉴스를 퍼트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만원은 출반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두 번이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도 지금도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니 정말 기가 막힌다고 했다.
이양현은 이번 5월 18일에 망월동묘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37년간 맺힌 한을 풀어 주어서 후련하다고 고백하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항쟁으로 국가폭력에 맞서 목숨을 바쳐 싸운 분들을 명예회복을 시켜주면서 함께 울어준 이번 기념식을 통해 자랑스러운 5.18정신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만시지탄이다.
그래서 이번 5월 18일 기념식이후 광주5.18관련 당사자들은 온통 울보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 이양현은 광주방송국(KBC)과 윤상원 열사와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던 중에도 눈물이 터져서 하염없이 울었단다. 그리고 서울에서 5.18행사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서도 울고, 집에 돌아와서 망월동 기념행사를 TV로 보면서 또 울었다고 했다. 이양현은 본인만 눈물흘리고 우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행사 참석자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