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 김세곤 지음, 온새미로 간행

서평 : 고경태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湖南國家之堡障(호남국가지보장)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是以昨日進陣于閑山島以爲遮海路之計

(시이작일진진우한산도이위차해로지계)

 

충무공 이순신이 1593년 7월 16일 한산도 대첩을 앞두고 친구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유성룡의 <서애문집>에서는 경상도는 문호이고, 전라도는 창고가 되기 때문에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가 없고, 전라도가 없으면 다른 도도 없는 조선의 상황이라고 제시했다(無慶尙則無全羅).

 

김세곤 선생은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꾸준하게 역사와 문화를 탐구했다. 고용노동부에서 고위직으로 퇴위한 뒤에 호남역사연구원을 설립해서 전문적인 연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연구 활동은 저서들로 결실을 맺고 있다.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도 그 중 한 작품이다.

 

이순신의 흔적은 전라도 곳곳에 있다. 여수, 해남은 좌수영, 우수영으로 전라도 곳곳에 이순신의 흔적은 가득하다. 곡성군은 섬진강 자락을 1597년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이 군사, 무기등을 모아 이동하는 "조선수군재건로"로 명명하여 테마를 조성했다. 장성, 장흥, 남원 등에 가득한 이순신의 흔적을 호남 땅을 중심으로 제시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재기해서 조선을 지킨 호남, 전라도가 없으면 조선도 없다. 국토의 어느 부분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는 이순신 장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켜 피난길에 배고프지 않았다고 제시했다. 김세곤 선생은 이순신의 칠전량 해전 패전으로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재기하게 되고(1597년), 어란진에서 벽파진으로 12척으로 명량해전(1597년 9월 16일)에서 대승을 이끄는 과정을 자세하게 제시했다.

 

한국 역사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2부에서 남원성 전투에 대한 설명은 호남이 왜군을 향한 처절한 쟁투의 흔적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남원성 전투에서 승리한 왜군이었지만 그 기세는 명랑해전의 대패로 기세를 잃었다. 명랑해전의 대패로 기세를 잃은 것이 아니라, 호남 민중들의 거센 저항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명랑해전에서도 전라도 사람들의 동참으로 승전했다고 제시했다.

 

1592년 임진왜란, 서울 건촌동 사람, 충청 아산 사람인 이순신이 활약한 전라도, 전라도가 건재했기 때문에 조선이 보전되었고 경상도도 회복되었다. 하나가 힘이 없으면 하나가 지지해서 회복하는 것이 운명공동체의 생존방식이다. 도마뱀의 생존방식으로 살려한다면 결국 몸통까지 잘라내야 할 것이다.

 

호남에서 태어나서 호남역사에 매진하는 김세곤 선생의 필력은 대단하다. 행정고시로 등용한 관료이지만, 전문사학자와 같은 자료 수집과 원문 강독으로 역사를 제시하고 있다. 전라도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음식의 고장이다. 전라도를 여행할 때 그 곳곳에 담겨있는 역사 의미를 안다면, 풀한포기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다.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은 전라도 땅의 깊은 맛을 주는 저술이다. 전라도 곳곳을 보라 이순신이 없는 곳이 없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병자호란 때에 고산 윤선도는 의병이 이끌고 북향하다가 삼전도 굴욕의 소식을 듣고서 의병을 해산하고 보길도에 은둔해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전라도는 대한민국의 힐링의 고장이 되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가득하고, 평안과 여유가 있는 유일한 땅이다. 湖南國家之堡障(호남국가지보장)이 지금도 유효할 것인데, 김세곤의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을 읽으면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 그리고 전라도, 역사의 정절의 고장에서 선조들의 정절과 쉼을 얻어 보자.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