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성지순례(1) - 로마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총회장 김선규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목회자를 위한 성지순례를 마련하였다. 이에 현지에서 순례중인 소혜영 객원기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내 온 사진을 시리즈로 연재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사도 바울의 참수터 세분수교회 전경

'바울 참수 터’는 어떤 곳인가?

로마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렐리아 성 밖으로 나가 에우르(Eur) 방향으로 5km 정도 가면 바울이 순교한 장소에 도착한다. 당시 그곳은 ‘아크바스살비아’라고 불렸는데, 사도 바울이 참수당한 후 그 자리에 ‘트레폰타나(Tre fontana)’라는 수도원을 지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참수당한 후 목이 바닥에 세 번 튀었는데 그 자리마다 물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 수도원의 이름을 ‘세 개의 분수’라는 뜻을 지닌 ‘트레폰타나’로 짖게 되었다. 지금도 그 단두대는 온전히 보관되어 있고 목이 떨어져 물이 솟았던 자리에는 표식이 있다.

바울은 로마법대로 둥그런 돌기둥에서 목 베임을 당해 죽었다. 사형은 대부분 ‘반역죄’에 해당되었고, 예수님께서는 로마 시민이 아니었기에 장시간 고통받다 죽는 십자가형에 처해지셨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라는 혜택으로 그나마 고통 없이 빨리 죽는 처형 방법인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했다.

사도 바울이 죽기 전에 갇혔던 마메르틴 감옥에는 “감옥 벽에서 샘물이 솟아나와 그 물로 침례를 주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마메르틴 감옥은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갇혔던 곳이라서 후대에 성지가 되었다.

세분수교회 전경 진입로 가운데 부분의 돌포장은 16세기 당시의 도로복원 부분이다.

참수교회, 일명 ‘세 분수 교회’는 주후 6세기부터 내려온 것으로 추정하는데 로마의 5번째 황제 네로시절 로마에서 순교한 사도 바울의 참수터에 세워졌고, 현재 세워진 교회는 여러번 개축 하여 1599년에 지어졌다. 바울기념교회는 사도 바울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정한 후에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는데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바울이 참수된 지점
바울의 참수터 안내 표지

참수터 옆자리에 위치한 천국계단교회 지하의 감옥

여기에 사도바울이 수감되었으며 디모데 후서를 집필하였다.

학자들은 바울과 베드로가 네로 황제 지배 당시에 순교했다고 추정하지만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순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네로의 기독교 박해 역사를 살펴보면, 주후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과 관련이 깊다. 당시 네로는 자신의 궁 아우레아(Aurea)를 확장하려는 야망으로, 가난한 시민들의 불탄 집터를 값싸게 매입했는데, 그런 행동은 시민 사이에 네로 황제가 일부러 방화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샀다. 설상가상으로 지방 사령관이 반란을 도모하는 상황이 닥치자, 네로는 방화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전가하는 대책을 강구하였다.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에게 방화 혐의를 씌워 박해했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광분을 샀고, 원로원에서 네로 황제를 폐위하고 사형하기로 결정한다. 그 사실을 안 네로는 자살을 했다. 네로가 극심하게 기독교인을 박해한 주후 64~68년 즈음에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는데, 각자 어느 때 죽었는지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바울이 참수되기 직전 대기했던 곳에 세운 천국계단교회

천국계단교회는 3세기말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도로 달하였을때에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최대의 목욕장을 건축하면서 수천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을 동원하여 건축하게 하였다. 완성 후에는 다시 감옥에 수감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이곳에 신자들을 생매장하였다. 이후 베르나르도 성인이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땅속에 억울한 영혼들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환영을 보게 되어 순교지로 선포한 후 건축한 교회이다.

성베드로 성당 중앙. 미켈란젤로가 책임지고 직접 완성시켰다고...
바울교회
바울교회

주후 313년, 기독교 박해가 끝난 후 로마 콘스탄틴 대제는 사도 바울 무덤 위에 바울교회를 세웠다. 현재 이곳은 1600년 전 규모 그대로다.

그곳에 가면 세계 복음화의 기수인 사도 바울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다. 웅장하게 솟은 화강암 기둥 80개로 구성된 교회 내부의 힘찬 모습에서 사도 바울의 구령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천장 벽화에는 신구약의 주요 내용이 담겨 있다. 반원형 돔의 모자이크화에는 성서를 들고 있는 예수님, 그 오른쪽에 베드로와 안드레, 왼쪽에 바울과 누가가 그려져 있다.

바울교회

바울이 죽은 지 300년 후,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바울 역시 세계 기독교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

바울교회는 그곳 지명을 따라 ‘오스티엔세(Ostiense)교회’라는 고유 지명으로 불린다. 고대 교회에 속하는 바울교회는 규모로 보면 유명한 베드로교회 다음으로 크다. 길이 120m, 넓이 60m, 높이 23m이고 그 안에 화강암 기둥이 80여 개나 늘어서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중요한 것은 교회 규모보다 사도 바울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점이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운 적이 없는데도 로마에 바울 기념 교회가 많은 이유는 바울이 기독교에 공헌한 점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복음 증거에 자신의 생애와 목숨까지 바친 사도라는 점을 기억할 때, 후세 기독교인을 위해 그를 기념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바울의 기념 교회를 세웠다.

바울교회 안에 있는 바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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