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4) -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감사’하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도 간단하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데 ‘그게 참말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국의 정치ㆍ종교ㆍ사회ㆍ문화ㆍ과학ㆍ국방ㆍ외교 통상 등 모든 분야의 리더들에게 감히 말씀드린다. 감사를 생각하고 감사를 실천하며 감사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고 말이다. 다시 말해 감사운동을 해보자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리더들에게도 ‘감사’를 권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지금 극심한 한국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다. 모두가 조급하다. 조급증이라는 문화병에 걸려 떠내려가고 있다. 모두가 같이 떠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심각한 자살률, 급속한 고령화, 황혼의 이혼, 초혼 연령의 증가, 출산 연령의 증가, 낙태와 미혼모의 증가, 세계에서 최저인 출산율 등 문제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이미 교회를 떠났다. 아니 예수를 버렸다는 말이 더 옳다. 필자가 초청을 받아 가는 교회들마다 회중석을 보면 머리가 허연 분들만 앉아있는 형편이다. 이게 기독교만의 이야기일까. 교회의 예배와 찬양, 말씀과 예식, 행사와 프로그램에 있어 감사와 행복 모드를 추구할 이유가 분명 거기에 있다.

‘감사’라는 말은 기쁨과 은혜와 아주 밀접하다. 감사(gratitude)와 기쁨(gratification)과 은혜(grace)의 어원이 같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라틴어의 그라투스(gratus)이다. 은혜(grace)는 하나님으로부터 흐르고 넘쳐서 인간에게 번지고 달려 내려오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이치와 같으며 이는 놀라운 역사이다. 물은 막힌 곳에서는 몇 시간이고 몇십 년이고 멈추어 서지만 조금도 조급해하는 법이 없다. 무한정 기다린다. 하지만 빈틈이나 낮은 곳이 나타나면 이내 그곳을 통하여 내려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턱이 열리지 않으면 물은 세월을 낚기도 하고 썩어 문드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로 화를 내거나 소릴 지르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반면 감사(gratitude)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삶의 이유와 목적을 가리켜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영광과 같은 이치다. 예수께서도 열 명의 나병환자의 비유에서 두 가지를 동일시했는데 자신을 하나님과 같다고 했고, 그리고 감사를 영광과 같은 의미라고 여기는 표현을 썼다(누가복음 17:16-18). 감사가 있어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오고 가는 놀라운 쌍방향 소통이 완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한 가지는 기쁨(gratification)이라는 녀석이다. 기쁨은 감사와 은혜 사이를 더욱 풍성하게 하며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다. 감사와 영광 돌림이 풍성하면 인간에게도 하나님께도 기쁨이 된다. 은혜가 놀랍게 임하는 역사가 있으면 이 역시 하나님의 기쁨이며 인간에게도 기쁨이 된다. 동시에 이 기쁨이 넘치는 역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흡사 전기가 통하여 감전되듯이 전도체가 되어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며 달려 나다닌다. 기쁨 없이 감사 없고 기쁨 없이 은혜도 없다. 마찬가지로 감사 없는 기쁨 없고 은혜 없는 기쁨도 없다.

대한민국 교회 안의 문제들을 직시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믿음에는 엑설런트 하면서도 행위는 부족하고, 예배와 봉사는 열정적이면서도 감사에는 문제가 있는 병든 신앙인들의 모습을 본다.

신앙인들은 놀라운 은혜는 사모하면서도 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은혜는 거저 받으려 하면서도 감사의 수고는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할 일과 책임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 한단 말인가? 은혜?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신다. 그러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수고 쯤은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는 사모하는 자에게 값(대가) 없이 주시는 은혜이지만 결코 싸구려 은혜가 아니다. 물질만능주의가 유입되다 보니 이상한 풍조들이 생겨났다. 값진 은혜를 싸구려로 취급한다든지, 고귀한 은혜를 자판 아래 썩은 생선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교회 안의 근원적 문제의 해결책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 길은 감사를 찾는 것이다. 너무나 쉬운 주제요 흔해 빠진 말이기에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말이지만,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감사가 있는가? 감사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아도 인사치레에 불과하고 진정한 감사는 잊은 지 오랜 듯하다. 진정 행복을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감사를 시작해보자. 감사하면 행복해지는 비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절박한 시점에 나는 감사라고 하는 주제를 붙들 게 되었다. 감사가 주는 힘은 컸다. 감사는 나를 화마(火魔)에서 건져낸 소방수(?)요, 조난당한 험산준령으로 다가온 구조대(?)와 같다고나 할까? 난 지금 행복한 60대가 되었다. 남은 여생은 더욱 행복할 것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매일매일을 감사(일기, 저널)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왜 자살공화국이 되고 있는가?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최고로 높다. 특히 노인 자살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아일보 2014년 3월 3일 자 A28면, 오피니언 코너; WHO통계(2010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3.5명으로 세계 1위, 노인 자살률은 그 두 배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로 인구 10만 명당 79.9명으로 역시 세계 1위다. 해를 거듭할수록 수치는 낮게 집계되고 있지만 여전히 27.0명(2014년)으로 1위, 자살공화국이라 불리던 일본의 1.4배 수준이다.

경제성장 뒤에 찾아온 어두운 모습이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나의 시각에서 보건대, ‘감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

나 또한 불의한 유혹에 시달리고 사악한 음성에 넘어질 뻔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과연 자기 삶에 감사가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감사를 찾는 이들에겐 아파트의 창문을 박차는 일도, 옥상 난간으로 뛰어오르는 일도, 제 농약(수면제. 제초제. 병충 농약... 등)을 먹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차제에 교회마다 개인마다 감사를 되살리는 운동을 했으면 한다.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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