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양육강식의 천민자본주의 사고를 버리고 공생 공존하는 메시야 나라를 열어라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대신학박사, 본국제신학교학장. 본헤럴드 모바일 신문 발행인, 등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방식이 다양하겠지만 두 가지만 함께 고민해본다.

첫째는, 힘의 논리에 의해 약육강식이 지배를 하는 사회이다. 약육강식이란, 약한자가 강한자에게 먹힌다는 뜻이다. 약한자의 희생을 통해서 강한자가 번성하는 논리가 지배한다면 행복한 사회일까? 사람도 법도 약육강식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다면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보다는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에 오염되고 말았다. 적자생존이란 단어는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의 이론에 등장하는 말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 남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나 집단이나 사람은 결국에는 도태되고 만다.

지금 지구촌은 무한 경쟁시대에 총성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먹지 아니하면 먹히고 마는 경쟁의 쇠사슬에 함께 마모되어가고 있다. 평생 피땀흘려 이룬 중소기업이 자금과 인력이 충분하지 못해, 유동성 자금 흐름이 안좋으면 한 순간에 기술과 고급인력이 많은 대기업에게 먹이가 되어 버리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도와주고 함께 상생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되면 좋은데, 이것은 우리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죄로 오염된 잘못된 내면의가치를 보라

왜, 우리 사회에는 양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당연히 느껴지고 있는가? 힘있는 자만이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우리 내면에 죄로 오염된 잘못된 가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앙인들의 생각속에도 너무도 깊이 자리매김해 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이 믿음이 강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받아 축복을 받은 하나의 외적인 표시로 생각을 한다. 그것은 잘못된 복음이고, 메시야 왕국의 성격을 잘 몰라서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같은 법칙이 난무하는 사회에는 평화가 없다. 정글의 법칙처럼 늘 불안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하는 외로운 늑대처럼 살아간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닐것이다.

 

▣메시야 나라의 모습을 보라▣

메시야 나라의 평화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 아니고, 함께 손잡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염소와 함께 누우며, 어린아이가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을 끌고 다니는 모습”이다(이사야 11장 6절).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며 모습이다. 정글의 법칙은 사탄의 법칙이요, 죄로 오염된 인류 문명의 유산이다.

 

▣자본주의 4.0시대의 주요한 의제 :  함께 살아가는 나눔의 영성▣

오늘날 세계는 자본주의 4.0 시대의 문을 열었다. 자본자주의 2.0시대에는 너도 나도 모두 가난했다. 자본주의3.0시대에는 고도성장의 열매를 주주들이 독식했다. 정부의 각종 세제 지원과 금융 특혜로 부를 얻었는데, 그 부를 자신이 독식하고 말았다.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으로 얻은 부를 함께 나누지 못하고 독식하며, 갑의 위치에서 내려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부를 명품 과소비와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위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3.0시대의 폐단으로 우리 사회는 심각한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계층간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늘날 세계는 자본주의 4.0 시대를 열었다.

자본주의 4.0시대는 함께 살아가는 나눔이 주요한 의제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의 쏠림현상을 바라잡고, 특정 계층 사람들의 부의 편식을 함께 나누는 공유사회로 가자는데 있다. 나눔에 인색한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뒤틀린 사회의 모습에서 함께 경제, 문화, 예술, 체육, 문학, 학문, 종교등 서로 함께 나눔으로 섬기는 공유사회를 지향할때, 자본주의3.0시대의 폐단을 치유할 수 있다.

 

▣교회를 지탱해줄 모자리가 죽어가고 있다. 그 대안은 무엇인가?▣

교회도 새로운 패라다임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양극화가 심각할 정도이다. 대형교회는 인적, 물적. 공간 자원이 풍부해서 썩어져가고 있고, 작은교회는 3무의 전형적인 구조로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생존권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대형 교회를 지탱해주었던 힘이 농어촌교회와 도시의 작은 교회의 성도들의 이동이었습니다. 이제는 모 자리 역할을 한 작은 교회가 더 이상 줄 모가 없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한국교회와 리더들은 함께 공존, 공생할수있는 자본주의 4.0시대의 문을 열어야한다. 일부 특정인들의 배불린 효과를 자기 과시요, 특권의 한 형태로 자부하고 살았던 못난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교회도 자본주의 사회의 못된 가치가 들어와서 어느듯 자신의 집단은 특별한 공동체인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착각의 문을 빠져 나올때 자본주의 4.0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메시야 나라의 성격은 일부가 독식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함의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다. 이것이 메시야가 이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이다. 또한 종국적인 메시야 나라의 모습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사는 모습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정당화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막으며, 바르게 세워가는 영적 지도자들의 혜안과 자기 결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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