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 없는 여성들은 죽음을 부른다!

김에스더 목사 - The Second Life Foundation 대표, 뉴욕퀸즈교회 담임, 뉴욕사모합창단 및 미주여성목회자합창단 지휘

(2) 남편의 말에 복종하지 않은 하와(חַוָּ֑ה, Eve)

하나님께서 여성을 돕는 베필로 만들어주셨을 때에는 남편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잘 보좌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먼저 가정의 머리인 남자를 만드시고, 남자를 통해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베필이 되도록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질서있게 만드셨다. 그런데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면서 그 질서를 깨뜨린 것이다.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남편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그 명령은 남편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직접 명령하신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리스천 여성에게 있어서의 복종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마귀로부터 온 것인지를 먼저 분별하는 것이다. 하와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처럼 지혜롭고 선악을 판단하고싶은 마음 즉 탐심이 분별력을 잃게 했다. 탐심은 항상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서 인간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들고 영적인 분별력을 잃는 순간, 인간은 무질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질서가 깨진 상태를 성경은 '저주(죽음)를 받은 상태' 또는 '혼돈'과 '어둠'으로 표현한다.

아내에게 있어서 저주란, 남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가정 안에서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려고 하는 상태와 아내가 그러한 남편을 자기 뜻대로 컨트롤하고 싶어하는 상태가 바로 남자와 여자 모두 '저주받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러한 모든 저주에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는데, 그 상태가 바로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한 그 희생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며, 아내는 교회가 예수님께 한 것처럼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아내는 교회의 역할을 각각 가정에서 감당해야 한다.

'복종하라'의 헬라어 ' 휘포탓소'(ὑποτάσσω)'는 휘포와 탓소의 합성어이다. '휘포(ὑπό)'라는 용어는 '아래로 향하여', '~곁에', '~아래에', '~에 의해서'라는 뜻의 전치사이며, '탓소(τάσσω)'는 '배열하다', '정돈하다', '지정하다', '결정하다' 등의 뜻을 갖고있는 동사인데, 이 '탓소(τάσσω)'에서 '탁시스(τάξις)'란 단어가 나왔으며 '탁시스'는 '질서', '반차', '계승', '위계 질서', '정돈'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복종하라는 말은, 질서 안에서 즉 자신에게 순서대로 지정된 위치 아래에서 자신에게 정해진 일을 하라는 말이다. 즉 나에게 정해진 순서 이상으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앞서려고 하면 안되며 내 앞에 주어진 순서대로 질서를 지키며 따라가라는 말이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였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ὑποτάσσω, subject)하더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ὑποτάσσω)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17, 20)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ὑποτάσσω)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ὑποτάσσω)를 받나니 (고전 14:21)

따라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라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복종하라고 하신 것이지, 여성이 남성보다 비천하거나 모자르기 때문에 복종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부모님을 머리로 섬기듯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남자가 머리가 된다는 말이며, 이것이 질서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질서를 위하여 주께 하듯 복종하라"라는 말씀이다.

태초에 여자(네케바 נְקֵבָ֖ה)는 남자(자카르 זָכָ֥ר)에게서 나왔을 때에 생명이 주어졌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 안에 있어야만 한다. 즉 여자인 교회는 남편인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떠났을 때에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이다(계 3:1). 그래서 남자 안에서 그의 보호를 받으며 그의 지시를 따를 때에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 해방운동(feminism)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세상만사는 좋은 것만 있는 것도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라 모두 장단점이 있다. 여성해방운동을 통하여 학대받는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좋은 일을 하였으나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는 것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태초에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여성인 하와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여자를 나게 하시고 남자 아래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게 만드신 질서를 무시하고, 남편이 먹지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서 남편까지 먹게 했다. 그녀는 남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 지시를 역행하여 자신의 지시를 남편이 따르도록 하여 온 가족이 '죽음과 저주의 길', '삶 속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오므로 어둠과 고통의 삶'을 살도록 했던 것이다.

에덴동산에는 죄가 없었다. 죄가 없었던 그곳에서 하와가 한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하여 온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로 몰고 갔다면, 오늘날 죄가 만연한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은 얼마나 쉽게 그들의 가족을 고통과 혼돈의 삶으로 몰아가겠는가! "이것 한 번만!"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와는 선악과 하나로 자신과 남편을 죽음의 길로 몰아갔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분별력이다. 분별력이 없으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삶(벧후 2:22)을 반복하다가 지옥에 가야만 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무엇보다 영적인 분별력을 구하는 가운데 항상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그분께서 주신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 4:14-15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말씀한다.

머리에 순종할 때에 몸이 건강하다. 머리가 밥을 먹으라고 지시를 해도 입이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얼마 못가서 죽을 것이다. 또 입은 먹으려고 하는데 손이 귀찮다고 음식물을 입에 넣어주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머리의 지시에 따라 온 몸이 움직여줄 때에 비로소 몸이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머리인 남편의 지시에 따라주라는 말이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2)

그렇다면 '복종'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와가 남편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가 머리 역할을 하므로 인류에게 죽음이 왔는데, 남편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복종해야 할까? 성경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한다. 만약 머리가 독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그러한 지시는 거부해야만 한다. 매사에 남편의 말에 복종해주지만, 거룩과 반대되는 일에 시끄러운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복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3) 남편의 말에 복종한 삽비라(Σαπφίρῃ, Sapphira)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예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이 부부는 교회에 자기들의 재산을 바치기로 작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미혹이 들어갔다. 그들이 재산을 바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그들이 소유했던 것을 팔고 돈을 손에 쥐게 되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계획했던 것의 얼마를 감추고 헌금을 했다.

약속대로 즉 원래 마음먹었던대로 하지 않았던 남편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만약 아내 삽비라가 분별력을 갖고 제대로 돕는 베필의 역할을 감당했다면, 남편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에 어떻게 해서든 막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남편의 죽음을 막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는 남편의 선택에 동조했다.

영적 분별력이 없으므로 탐욕에 눈이 멀었던 삽비라는 남편 뿐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까지 죽음의 길로 몰고 갔다. 남편이 돈에 욕심이 생겨서 주의 종과 성령님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므로 벌을 받아 죽을지언정 그녀만큼은 살 수 있었다. 만약 남편이 가부장적인 사람이어서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자신만이라도 정직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삽비라 역시 남편과 똑같이 탐욕으로 인하여 눈이 멀었다. 그래서 남편이 그릇 선택한 것을 알면서도 함께 그 길을 갔던 것이다. 성경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한다(골 3:5). 즉 이들이 선택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뿐만이 아니라 물질도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삽비라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므로 누구를 섬겨야 할지 선택해야할 중요한 기로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선택하므로 남편도 죽이고 자신까지 죽음의 길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여자의 복종은 하나님을 속이며 거짓말을 하는 남편의 말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결과는 죽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결혼하려는 여성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머리가 될 남자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지를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