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러시아 정교회와 개신교

둘째 날 아침 우리 부흥단 일행은 신한촌에 들르기에 앞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를 찾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대표적인 러시아 정교회라고 말하는 <포크롭스키 성당>을 찾았다.

프크롭스키 정교회을 방문한 기감 중앙연회 부흥단

멀리서 정교회의 위용이 드러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크고 웅장한 내부는 아니었다. 러시아 정교회 예배당의 가장 특징적인 외형은 먼저 지붕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지붕은 비잔틴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문화가 접목된 독특한 지붕형태를 보이고 있다. ‘꾸폴’(머리)이라고 부르는 돔 형태의 지붕은 그 이름처럼 꾸불거린다. 이런 양식은 초기 비잔틴의 일반적인 돔 형식에서 14세기경 ‘루꼬비짜’ 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변형된다. 마치 양파 모양 같은 돔 지붕이 생겨난 몇 가지 유래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포크롭스키 러시아정교회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포크롭스키 러시아정교회

 

초여름 햇살에 포크롭스키 정교회 예배당이 유난히 빛나보인다
초여름 햇살에 포크롭스키 정교회 예배당이 유난히 빛나보인다

가장 먼저 종교적인 이유로 이 돔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절에도 ‘꾸폴’(머리)에 황금색을 입혔다. 또한 촛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촛불은 전통적으로 ‘기도’와 연관 짓는다. 그들은 ‘꾸폴’을 보며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에 오른다는 인식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교회는 세상의 등불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건축적인 이유로는 눈이 많이 내리는 러시아에서 지붕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는 의미로 ‘꾸폴’이 양파 모양으로 형성되었다. 더불어 상징적 이유로 군인들의 투구를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그리스도의 군사로 진리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과 공원 뒤 러시아 정교회
블라디보스토크 잠수함 박물관과 공원 뒤 러시아 정교회

 

포크롭스키 정교회 내부로 들어갔다. 먼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잠시 기도를 마친 필자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유럽의 여러 성당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였다. 포크롭스키 정교회의 맨 중앙 부분, 개신교에서 말하는 강대상 부분이다. 서양의 성당들과 다른 점이 눈에 보이는가?

포크롭스키 러시아 정교회 강단

잘 아는 것처럼 동방정교회로 대표되는 러시아 정교회는 ‘성상’이 없다. 즉 완전한 입체를 갖춘 ‘조각상’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서방의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겠다. 단지 동방정교회가 성상을 금지한 것은 그들의 내적인 영성에 영향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서양의 화려하고 외형적인 형상들이 주님의 임재나 성인들의 모습을 다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것도 하나의 우상으로 여겼다는 정도만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평면적인 이미지는 허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의 조각상 십자가의 예수님 대신 성화상(聖畫像)인 <이콘>이 대신한다.

그들만의 특별한 이콘이 눈에 들어왔다. 포크롭스키 정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다. 유럽의 성당들을 순례할 때 느껴지는 화려하고 웅장한 조각상이 아니라, 마치 도화지에 그린 목탄화를 오려 붙인 듯한 느낌이다. 솔직히 필자에게는 정교하고 입체적인 서양의 십자가상 보다 더욱 마음에 끌렸다.

정교회 안의 예수님 십자가 성화상(이콘) 십자가 발판이 기울어 있다.

정교회 십자가의 특징을 하나 더 말하자면 그들의 십자가가 독특하다. 우리가 아는 십자가 위에 작은 가로 횡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달았던 죄목을 상징한다. 동시에 십자가에서 보면 예수님의 머리 부분이다. 그런데 예수님 발아래 십자가가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에 있던 다른 강도들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낙원에 다른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이 전통적인 이해이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 발판이 올라간 쪽은 천국에 오른 강도를 상징하고, 발판이 아래로 기운 것은 예수님을 부정하여 지옥으로 떨어진 강도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 독특한 십자가 형태는 위에 있는 정교회의 지붕(꾸폴) 위의 십자가를 자세히 살펴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느낀 것은 정교회 안에 피아노 같은 악기가 없다. 심지어 비교적 엄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조차 없다. 러시아 정교회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찬양은 찬양대이든 일반 회중이든 육성으로만 부른다. 이것조차 정교회가 갖는 종교적인 심성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러시아 정교회 안에 없는 것은 의자이다. 예배드리는 회중은 온전히 서서 예배드릴 뿐이다.

정교회 신도가 서서 기도한다. 정교회 안에서 여자는 머리카락을 보일 수 없어 가려야 한다.

러시아 정교회는 과거 공산정권에서 상당한 박해를 거쳐 숫자가 줄어들긴 하였지만, 여전히 러시아 국민들의 국교처럼 인식되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게 잔인하고 혹독한 겨울로 다가왔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과거 이슬람과 싸워 버틴 영적인 저력을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 예전의 전통이나 하나의 단일체를 지킨다는 뜻의 정교회(Orthodox Church)라는 의미도 있지만, 서방교회가 이슬람의 탄압에 비교적 자유로웠던 반면, 정교회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이슬람과 싸워 이겨냈다는 신앙의 자부심이 있다. 이것은 서방교회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과거 공산치하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것은 정교회 신앙에서 인정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다가 공산정권이 붕괴할 무렵인 1980년대 말부터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꾸준히 늘어갔다. 지금은 러시아 국민의 약 65~70%가 정교회 신자로 파악되고 있다.(다른 조사에 의하면 40%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국교가 없다. 표면적으로는 아직도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세운다고 말하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 정교회는 국교나 다름없는 위치를 갖고 있다. 물론 국민들 대다수가 정교회 신자라는 이유도 있지만, 정권이 러시아의 사상적 결집력을 위해서 정교와 손을 잡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정교는 이제 하나의 종교를 넘어 정치적인 힘을 가진 세력이 되었다.

과거 공산치하에서 무너지고 불탄 교회의 역사에 비하면, 이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교회(정교회)를 복원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정교회 건물은 이제 러시아 곳곳 중요하고 눈에 띄는 곳에 당당히 서 있다. 과거 이슬람과 공산정권을 이겨낸 보상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큰 힘이 돼 버렸다.

필자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표적인 장소라고 말할 수 있는 잠수함박물관이 있는 곳에서도 어김없이 러시아 정교회가 잠수함 박물관과 그 공원을 내려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수많은 승전의 역사를 자랑하는 C-56 잠수함 옆, 희생한 군인들을 기념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 뒤로 러시아 정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국민들에게 꺼지지 않는 불꽃같았다
꺼지지 않는 불꽃.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국민들에게 꺼지지 않는 불꽃같았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지금은 레닌 특별전을 하고 있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지금은 레닌 특별전을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대표적인 박물관인 아르세니예프 박물관(Arseniv Museum)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필자가 갔을 때는 ‘레닌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물관 3층에는 ‘러시아정교회 홍보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3층 러시아 정교회 홍보관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3층 러시아 정교회 홍보관
블라디보스톡 역 이콘
블라디보스톡 역 이콘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도 어김없이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을 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았을 때도 그곳에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검은 예복을 입고 건물을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가 갖는 위상이다.

블라디보스톡 대합실 천장의 역사화에도 어김없이 정교회 사제가 등장한다(김계현 목사 제공)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정교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푸틴도 러시아 정교회를 힘입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푸틴의 오랜 독재를 의미하는 ‘푸티니즘’이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큰 이유도 바로 러시아 정교회의 힘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푸틴은 공식행사 기념사진을 찍을 때 마다 왼쪽에는 국방장관 오른쪽에는 정교회 사제를 세운다. 이것이 러시아 정교회의 오늘날 위상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주교(실명 블라디미르 군댜예프)를 찾은 블라디미르 러시아 대통령

정교회가 갖는 반서방적인 종교적인 성향은 정치적인 성향과 손을 잡고 러시아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묶는 바탕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신교의 선교의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개신교를 ‘이단’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며, 개신교의 적극적인 전도활동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개신교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세력으로 보는 면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정교회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힘과 위상을 위협할 잠재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정교회는 암묵적으로 정부에 개신교의 규제를 요청한다. 그래서 상당수 많은 개신교의 교회와 단체들이 어려움을 당했다. 러시아는 ‘신종교법’ 을 만들어 정식으로 허가받지 않은 예배당에서의 모든 종교 활동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정교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과거 이슬람의 칼날과 공산당의 총탄을 이겨낸 영적인 힘이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상과 싸워 이긴 저력이 있다. 이것은 충분히 존중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오늘의 정교회는 세상과 손을 잡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세상 권력쯤은 무시할 수 있는 자존심도 있어 보이지만, 이제는 세상 권력과 결탁하여 안녕을 취하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더 나아가 전에는 ‘갇힌 자’였지만 이제는 ‘가두는 자’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는 ‘갇힌 자’의 내면의 능력과 풍성함을 말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싸우면서 능력을 키워왔다. 성도는 고난과 싸울 때 영적 힘이 커진다.

2000년 기독교 역사가 말해 주듯, 교회가 세상 정치와 손을 잡으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손을 놓아버리신다. 교회에 금은보화가 채워질수록 영적 풍성함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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