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마땅히 발휘해야 할 삶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하나님 나라와 그 삶의 본질’이라는 주제 아래 3장에서는 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4장에서는 지혜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5장에 와서 지혜와 대립 관계에 있는 악의 정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4장에서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7)는 경계에 이어 5장에서는 악의 성향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마땅히 발휘해야 할 삶을 밝히고 있다. 

이미 2장 16-19절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음녀를 주제로 5장의 구조와 양식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짜여 있다. 도입부(1-2절)에 이어 3-5절에서는 5장의 주된 주제인 음녀(הרז) 혹은 낯선 여인에 대한 짤막한 진술이 뒤따른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그 뒤를 이어 7-14절은 음녀로 말미암아 파국적인 종말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권면이 나온다. 이 권면은 15-20절에서 정절을 지키는 기쁨을 통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21-23절에서는 음녀를 멀리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1. 음녀의 정체

잠언에서 음녀(הרז), 낯선 여인 혹은 이방 여인에 대한 언급은 2:16-19; 5:1-23; 6:20-35; 7:1-27 등 4차례에 걸쳐 반복해 등장한다. 이것은 생명을 주는 지혜와 대조적으로 음녀가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그 속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음녀는 젊은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묘사되었으며 그녀의 문에 이르는 길은 ‘사망의 길’(2:18-22)임을 경고한 바 있다. 이 음녀는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한 기혼녀로 묘사되어 있다. 잠언에서 음녀는 지혜가 가리키는 생명을 주는 길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녀를 ‘낯선 여인’ 혹은 ‘이방 여인’이라고 칭할 때 이 단어가 외국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가정 밖’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구약 성경에서 가정에 대한 충성은 언약의 하나님이 주의 백성에게 보이는 충성과 그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을 반영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혼인 언약과 여호와와 더불어 맺은 언약은 서로에 대한 유비였다(2:17). 이런 점에서 ‘낯선’ 혹은 ‘이방’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혼인 서약을 파기함으로써 스스로 가정 ‘밖’에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진다. 나아가 이 여자는 혼인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언약 공동체를 떠났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 또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와 이질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롭다”(잠 5:3-4)는 묘사는 음녀의 특징으로 처음과 끝이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처음엔 꿀같이 달콤하지만 쑥처럼 쓴 것이 그 본질이며 기름처럼 부드럽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이 그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녀는 본질을 감추는 위선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2. 종말을 상징하는 음녀

여성의 매력은 그 아름다움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 영향력은 달콤하고 부드러움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변질될 때 그것은 무서운 무기로 바뀌게 된다. 겉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녹일 만큼 부드러우나 그 속에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칼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5:5-6)고 잠언 기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음녀는 생명으로 가는 확고하고 넓게 펼쳐진 평탄한 길조차 찾지 못해서 이리 저리 비틀거리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 자신이 내적으로는 죽음을 향해 가는 처지이면서 외적으로는 자기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외모만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을 살펴볼 때 사망의 쓴 독이 가득함에도 그럴듯하게 장식된 외모만을 바라보고 그 음녀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음녀와 함께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에 잠언 기자는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 5:7-8)고 경계를 하고 있다. 만일 지혜의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종말은 처참하게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9-11절). 
이와 같은 경고는 오래 전 가나안에 입성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이스라엘 후손들에게도 주어진 바 있다(신 31:16-18).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하나님의 분노와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신 32:16-27).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에 대해 염려하며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신 32:29-30)라고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3. 음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지혜

잠언 기자의 음녀에 대한 경계는 충분히 모세의 심정을 담고 있다. 대낮같이 밝고 환한 세상에서 확고하게 보여주는 생명의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6절) 그 길을 외면하고 지혜의 부름을 거역한 결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지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9-11절). 그 때는 돌이킬 수도 없으며 후회한다 해도 이미 늦어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괴롭기만 할 것이다.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잠 5:12-14)는 자학적인 때늦은 탄식만으로는 더 이상 지혜의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잠언은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잠 1:24-31)고 경고한 바 있다.
잠언(לשׁמ)의 특성 중 하나가 비유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음녀와 그 유혹에 대한 경고는 문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잠언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2장에서 이미 음녀에 대해 경고하면서 잠언은 지혜가 음녀로부터 주의 백성을 보호하는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본문에서 허탄하게 자괴감에 빠져 탄식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혜의 보호 기능으로부터 소외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마치는 말

사망의 그늘에 갇혀 있는 자들의 탄식 소리는 음녀의 입술에 발라진 달콤한 꿀과 음녀의 입에서 나오는 부드럽게 속삭이는 유혹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잠언이 상대적으로 비웃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반대로 음녀의 은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지혜의 보호 기능으로 말미암아 지혜를 따르는 자들이 평탄한 생명의 길을 가게 될 것에 대한 확고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잠 5:1-2)는 지혜에게로의 부름이 얼마나 큰 평안(םילשׁ)을 가져다 주는지를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름을 외면한다는 것은 탄탄한 생명 길을 놓아두고 어둡고 침침한 사망의 길을 가는 음녀처럼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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