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드레스의 피아니스트

                                    

                                       김종욱

 

비 오는 밤의 어둠은

검은 그랜드 피아노의 몸체같이

매끈하고 윤이 났다

여인의 몸매와 같은

아름다운 곡선

 

불 꺼진 창문으로

매혹적인 자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오는 소리는

반짝이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미모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소리였다

 

창밖으로 지나는 불빛은

한 음 한 음 맑게 울렸고

어둔 풍경 속

가끔씩 반짝거리는 사물들은

빗소리인지 별빛인지 알 수 없었다

 

빗물 흐르는 창을 사이에 두어도

어둠은 하나가 되고

나도 어둠이었다

은하수가 흘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도록

그대로 흘러가고 싶었는데

 

모든 어둠이 음악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는데

나는 어떤 아름다움에 홀려

제자리였다

그게 나였다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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