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김종욱

 

신은 스스로 고독을 창조하고

그다음엔 고독과 싸우는 존재를 발명했다

세계는 필연적으로 고독과 싸우는

사랑

검은 물에 어른거리는 섬세한 물비늘에서

굴절되던 신은

어느 예술가의 죽음과도 같았다

 

마치 약속은 어겨지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검은 물결이 반복되는 신의 발명품

 

죽음의 시작과 끝 태양이 가라앉는 곳에서

0으로 수렴하는 네 개의 푸른 달의 파동

검푸른 윤슬로 어지러워지고

그 밤에는 유리로 된 섬광이 깨지면서 빛나는

어둡고 외로운 발자국이 있었다

고독이 왜 피투성이 발로 그 밤을 걸었는지는

농부와 시인은 알 수 있을까

 

드러나면 되는 것들도 감추는 수수께끼

그건 보이지 않는 사랑을 위해 싸우려는

고독의 의지였다

 

사랑은 보이지 않아야 해

눈이 멀어야 사랑이니까

 

시간은 고독의 깊이만큼 길어지고

죽어가는 사랑만큼 지워진다

붉은 피와 푸른 눈물은

각시투구꽃처럼 피어나는 보랏빛 새벽

 

나무 위의 빈 새집은 상념의 열매인가

빛이 새는 지붕 사이로 풋사과 향기 쏟아지는

갈대 피리 소리

 

보이지 않는 고슴도치의 눈물도

가시

가시나무숲

가시 왕관

개나리 꽃씨가 눈송이처럼 내리고

죽은 고독은 겨울을 품은 봄바람으로 핀다

 

그리고 이성과 언어는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드러나면 되는 것들은 감추어질 테니까

계속 흔들리는 검은 물결 아래서

 

 

<편집자 주>

라틴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신의 기계적 출현’을 의미한다. 이것은 극의 사건 진행 과정에서 도저히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뒤틀어지고 비꼬인 문제가 파국(catastrophe) 직전 무대의 꼭대기에서 기계 장치를 타고 무대 바닥에 내려온 신의 대명(大命)에 의해 해결되는 기법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주로 이런 연출기법을 썼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Medeia)』 또는 『이피게니에(Iphigenie)』이다. 그 이후에도 이 기법은 17세기 바로크와 19세기 비엔나의 민중극에서 널리 애용되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드라마사전, 2010., 문예림),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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