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의 삼정사단(三正四斷) 원리- 요한계시록 2장과 3장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역자들에게 앞으로 나타날 촛대교회(메노라처치)에 대해서 김시환 목사의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김시환 목사는 미국 뉴저지한밝교회 원로목사로서, 미국합동장로교총회 서기 및 기독저널 주필을 역임하였고 뉴욕에서 러브영피플 사역을 하였다.<편집자 주>

예수께서는 이런 암괴적출과 멸균작업을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을까? 이미 말한 바대로, 예수께서는 암괴가 되는 무리와 독균들이 교회와 교단정치에 관여하는 즉시 그곳이 ‘성전 바깥 마당’이 되게 하신다 하셨다. 그리고 그 자녀들을 그곳에서 탈출시킨다 하셨다. 그런데 그 악한 교권쟁탈전에서 탈출시키는 일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일단 일정 기간을 그 악한 자들에게 그 악이 드러나도록 두신다. 그 기간이 지나면, 성전 안마당으로 이방인들을 끌어들인 자들을 쫓아내신다. 이방인이란 독균을 말한다. 그리고 끌어들인 자들은 그 자생적 암괴를 말한다.

그리고는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성경의 세례를 베푸신다. 진정한 표준이 되는 진리의 말씀이 포고되고, 그렇게 살지 못한 죄악을 하나님 자녀들이 회개하고,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을 내리시게 하여, 그 위에 성령의 거룩하신 권능을 부어주신다. 바로 그렇게 정결예식을 치르신다. 즉 성전을 하나님의 원래 규격대로 정확하게 재정비하고, 정화작업을 철저하게 시행하신다(계시록 11:1~2).

원래 교회(성전) 바깥마당에 있던 독벌레들이 감히 범하지 말아야 할 성전 안마당까지 침투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그들은 신앙의 본질을 좌로든 우로든 치우쳐 기울게 하고, 기둥을 썩혀 주저앉히고, 제 욕심대로 성경을 가감승제(加減乘除) 하여, 저울눈과 다림줄 눈을 속이는 짓을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면, 성전의 가로-세로-높이를 다시 측정하여, 대대적인 재보수 작업을 일으키신다. 그것은 마지막 적그리스도 머리를 치시며 역사심판을 시작하실 무렵이다. 그 때에 이 성전 재보수를 위한 잣대(다림줄)도 함께 내놓으신다.

그 잣대는 계시록의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계시록 2장~3장)에 제시되어 있다. 그 메시지는 ‘아시아 일곱 교회 회개운동’의 기준으로서, 종말세대라 할 수 있는 오늘의 교회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할 종말개혁의 삼정사단(三正四斷) 원리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삼정사단 원칙이 실제 개혁 현장에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그것을 정리해 보자. 우선 되살려내야 할 삼정원리(三正原理)는 무엇인가?(계시록 11:1)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잣대는 성전과 그 안의 제단과 예배자들을 측정하라고 하셨다.

1) 예수께서 2) 사도 요한의 손에 3) 그 잣대를 주셨다는 것 자체에 종말시대 교회개혁의 기준이 밝혀져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원래 가르침을 복원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원리를 실천한 사도행전적 역사의 실현 겸 계승을 확인하여야 함을 말한다. 나아가 요한계시록과 그 주석서(註釋書)로서의 요한복음서와 요한1서가 주는 메시지를 토대로 종말시대 교회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 성경권위 회복 ; 속죄양 메시아 예수와 사도들 가르침의 기준을 바르게 잡아라.

◆ 예언직능 회복 ; 속죄양 메시아 예수와 함께 ‘메시아 희년해방 운동’을 되살려라.

◆ 아가페 신앙 회복 ;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아가페 실천 신앙)의 자세를 회복하라.

성전의 가로-세로-높이를 원래 하나님의 규격대로 회복하라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종말세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예수께서 직접 그의 재림을 교회에게 예고하는 ‘두 증인’을 보내시어, 이 개혁 여부에 대한 책임추궁과 심문을 하신다는 의미이다. 이 심문은 모든 교회와 신앙인들 각자의 개인적 신앙 상태에 대한 다림줄이 내려진다는 말이요, 그 측정결과에 대한 평결(마태 25 : 31~46)이 내려지리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물론 이 평결은 지난 모든 세대의 크리스천들도 각기 받아온 메시아의 ‘보편적 역사통치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말세대의 교회나 크리스천들에게는 이것이 단순히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들에게는 나름대로 특별하게 적용시켜 받을 메시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선 메시지 자체가 계시록과 마태복음 모두가 ‘종말세대를 위한 평결’로 명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말시대에는 요한 계시록의 ‘아시아 일곱교회’는 실제로 역사적인이 회개운동에서 거부하기로 결단해야 할 사단원칙(四斷原則)은 무엇인가?

  1. 이세벨의 기복주의와 번영주의와 샤머니즘을 버려라.
  2. 니골라당의 하나님 말씀(성경)폐기나 왜곡해석을 버려라.
  3. 유태회의 ‘보수적 경건 지배주의’와 ‘진보적 지성(知性)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라.
  4. 발람 교훈을 따르는 ‘악과의 타협주의’와 종교상업주의를 거부하라.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아가페 거부의지와 정의 불감증에 걸린 ‘이기적 탐욕 편집증’ 환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돈-명예-권력-정욕에 대한 편집증세에 사로잡힌 비정상적 인격이다.

여기서 성전 바깥마당과 안마당을 신학자들이 흔히 ‘가시적(可視的)인 교회(Visible Church)’와 ‘불가시적(不可視的) 교회(Invisible Church)'로 구분하는 개념과 혼동해선 안 된다.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에게 내주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물리적 자산과 인위적 조직이나 기능을 탐하는 ‘발람의 무리들’이 스스로의 정체를 폭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그들은 심지어 교회를 사유화하는 데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 자들은 크리스천을 가장(假裝)하고, 교회와 관련된 명예와 권위와 자산과 행정과 교권과 그에 따르는 돈, 그리고 심지어 사람의 영혼까지도 사고판다. 그들은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이 이익거래의 품목으로 취급하는 무리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독벌레 떼는 꼭 나치의 게슈타포나 소련 공산권의 KGB 같은 조직 요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티칸의 제수잇트 신디게이트 같은 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내의 ‘종교상인 독벌레 떼’들이야말로 그런 무리들이다.

그런 무리가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이익을 탐하는 활동영역, 그것은 반드시 ‘성전 바깥마당’으로 화해 버림당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이 대개혁시대에 이르면, 반드시 ‘성전 안 마당’에서는 쫓겨난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독벌레 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악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드러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시다. 그런 자들을 돈과 명예와 교회정치력이 있는 곳으로 마음대로 몰리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영적 이방인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 몰린 곳에서 자중지난과 재앙과 저주로 심판 당한다.

그런 독벌레들이 자기 실상을 그 악행으로 스스로 드러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목적은 그 악한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교회와 사회에 끼친 사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공적 심문과 징계를 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는 용서의 은혜도 공적 질서에 맞추어 시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오늘날 이렇게 이방인에 불과한 목회자나 당회원들, 그리고 교회 제직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신앙의 원리를 더럽히는 발언과 그에 따른 파벌조성과 싸움을 일으켜, 하나님의 성전 안뜰을 범한 이들 또한 많다. 거기에다 성경을 마음대로 인용하여, 자신의 악을 정당화시키는 주장까지 했다면, 그가 세상에서 숨 쉬는 동안 반드시 하나님의 직접징계가 따를 것이다. 그런 징계조차 없다면, 그것은 더욱 무서운 저주에 버림당한 증좌이다.

각자 스스로 자신의 신앙양심 법정 안에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잘 가려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안뜰을 더럽히는 악인 줄 알고 행했다면, 그는 그 자체로써 저주받은 사람이다. 그를 구원할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짓이 정말 옳은 줄 알고 따랐다가 겨우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순간 즉시 회개하고 그들 틈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자기 구원이라도 겨우 이룬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양심과 그에 따른 기도와 행동영역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성별(聖別)하여, 늘 정결케 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이다. 모든 교회들은 겸허하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문 앞에서 자신을 씻어야 한다.

이런 경우엔 ‘교단정치의 책략’이 가장 더러운 독균으로 누구나 느껴지게 될 것이다. 즉시 그런 무리들은 소독해내야 한다. 올바른 신앙 양심의 깃발 즉 바른 신학과 목회양심을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대로 행동하는 주체집단이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올바른 깃발을 든 쪽에게 권위의 옷을 입혀주신다.

이렇게 일어서다 보면, 어떤 경우는 서로의 독(毒)을 경계하여 충돌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들어 올린 깃발을 보니까, 같은 깃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서슴없이 둘은 그 진정성만 확인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합해야 한다. 반드시 ‘먼저 합하고자 하는 쪽’의 깃발 중심으로 통합된 조직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현재 보수개혁 측 내부에 이런 혼란이 일어나는 중인데, 이 원칙으로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이를 헤쳐 나갈 로드맵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에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보수개혁 측 교회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바로 자신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인 줄 알고, 진지하게 배우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바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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