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

 

                                      김종욱

 

우리가 하얗다고 믿는 것들이 까맣고

까맣다고 믿는 것들은 하얗다면

가령 흰 우유를 담은 투명한 컵이

우주가 담긴 듯이 까맣고

그 우주를 다 마셔버려야 한다면

뱃속의 블랙홀이 눈밭처럼 새하얗고

까만 기억들이 하얗게 씻겨내리는 소나기라면

그날에 내리던 처음의 마음이 시커멓고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릴 때마다

마스카라가 하얗게 번지듯이

검은 겨울이 하얀 밤으로 걸어들어가서

다시는 식지 않는 재로 타오른다면

번잡한 고뇌도 희어져 그녀의 백치가

검은 생각들로 괴로워하고 밤마다

망각의 불빛을 켠다면

그건 얼마나 더럽혀진 하양일까

그건 얼마나 순수한 검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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