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13) -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큰 딸 지영이가 대학생이던 23살 꽃 다운 나이에 베체드씨병에 걸렸다. 자가 면역질환으로 분류되며 위중하므로 나라에서 의료비를 90% 지원했다. 처음에는 베체드씨병에 대한 지식이 없어 수개월을 허송세월 했다. 입안에 궤양 현상이 생기면 이비인후과에 가보고, 무릎에 반점이 돋아 통증을 호소하면 정형외과나 피부과에 가보고, 그리고 외음부 성기에 치명적인 궤양 증세가 생기면 산부인과에 다니면서 이렇게 6개월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다행히 내가 치료받던 상도동의 이화 피부과 선생님이 대학병원에 추천서를 써주어서 확진 판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인하대학병원에서 확진 판정은 받았으나 베체드씨병에 관한 최고 권위자는 연세대학교의 세브란스에 있다는데 연락을 해보니 진료를 받는 데만도 6개월이나 걸린단다. 난감했다. 다행히 신문사 편집국장인 후배의 소개로 달포 만에 진료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고 평생을 가지고 가야 할 지병이라는 것이다. 기도가 안 되고, 원망에 한숨에 하소연이 겹쳐지고 있었다. 남몰래 컴컴한 도심의 하늘을 여러 차례 올려다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동안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학 졸업 후 MBC, KBS와 멕시코계 광고회사를 거쳐 국내의 중견 광고업체에서 일하면서 유럽에도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기도하고 버티고, 기도하고 안정을 찾고,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일까.

그러던 중에 조금의 안정을 찾은 지영이가 2012년 5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보냈던 예쁜 “감사카드” 내용을 소개해본다. 지영이의 베체드씨병 치유 소식은 뒤에 감사의 결과, 힘과 능력을 간증 형태로 다시 한 번 언급하고자 한다.

 

From 사랑하는 큰 딸 지영~

To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 사랑하는 큰 딸 지영이에요

♡언제나 사랑으로 네 자녀를 양육하시고, 엄마와 화목한 가정 이끌어 나가 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다른 집들 보면 가정불화에, 이혼에, 바람나는 부부들도 많은데... 늘 가정과 목회에만 전념하시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해 주고,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특별히 아빠를 똑 닮은 유전자 덕분에 사회생활도 잘 하고, 다재다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드려요. 하나님 안에서 늘 화목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아빠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해요!

♡You are my shiny star.♡ (당신은 나의 반짝이는 별이에요)

 나는 아비가 되어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지병의 원인이 무엇일까에 골몰하고만 있었다. 함몰 웅덩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딸은 이미 힘들고 우람한 고단하고도 깊은 고통의 강, 콜로라도 강을 건너고 험준한 안데스 산맥에 올라 드넓은 미시시피 강의 대평원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활천(월간, 2016년 12월호)>

 지영이는 이미 감사에 성공하고 있었다. 감사는 참으로 놀라운 결과들을 만들어내는 힘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였다. 감사는 축복의 통로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리고 치유와 힐링이 그 감사를 도구삼아 흐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감사는 내게 기쁜 소식이지만 구원의 복음은 아니다. 감사는 치유도 선물하지만 감사하면 그 결과 반드시 능력이 나온다고 말할 수 없다. 감사는 기쁨을 선물하지만 그 자체가 기쁨도, 평안도 행복도 아니다. 다만 그것들의 통로가 될 뿐이다. 행복으로 들어가는 터널이다. 감사는 인간의 마음 밭에 기쁨을 나눌 공간, 평안을 누릴 공간, 만족을 머금을 공간을 마련한다. 그것이 숙성하고 발아하면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행복은 많은 물건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다양한 취미생활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재물이나 권력도 학력도 아니다. 행복은 감사가 답이다.

-최근 스포츠서울신문을 읽다가 야구선수의 감사이야기를 접하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다. 이것이구나. 롯데의 노장 우완투수 송승준(37)은 야구선수로서는 할아버지 같은 서른일곱 나이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송승준 ‘100승 투’

  위기마다 맞혀 잡는 피칭 노련미 빛나

  넥센 전 5연패 사슬 끊고 시즌 7승

  데뷔 10년 만에 역대 29번째 100승 달성

 이러한 발문(發文) 구만을 보면 큰 감동이 없다. 하지만 송승준의 숨은 이력을 보면 감동이다. 그는 미국의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7년 그의 나이 27살 늦깎이로 롯데를 통해 한국프로무대에 데뷔했다. 10년 만에 100승 투수가 되었다. 왜 그 라고 기복이 없었을까? 지난해엔 부상으로 10경기에 나서 1승2패에 그쳤다. 그는 구속이 130킬로 후반대이며, 포크볼의 낙폭도 크지 않다. 이럴 때 그는 자신의 컨디션을 자각하고 제구에 초점을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투구한다. 백전노장이다. 지혜의 투수이다. 미국에서 마이너리그를 경험 하면서 풍부한 경험의 코치들에게 전수받은 기술들이 녹아 있다. 그것이 지금의 송승준을 만들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만들었다.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다.

인터뷰 끝 무렵, 신문에서 밝힌 송승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미국 마이너 생활 때의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버텼다”

“생각보다 일찍 100승을 달성해 마음 편히 남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11년 뛰는 동안 도움을 준 모든 동료 선수들(감사합니다)과 올해 로테이션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감독님(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가르침을 주셨던 여러 코치님들께 감사하며 특히 내 공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묵묵히 받아준 강민호에게 감사함과 존경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184㎝, 105㎏, 1980년6월29일생, 19세이던 1999년 연봉 4억 원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발군의 선수였다.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이름값의 존재를 나타내지 못했다. 다만 미국에 있는 동안 한 가지는 건졌다. 퍼시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롯데로 입단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롯데에서의 그의 존재감은 놀랍다. 유망주 투수 박세웅, 박진영, 김원중 등 롯데 마운드 재편의 중심에 선 그들 모두가 송승준의 경험과 노하우들을 배우는데 열정적이다. 볼 배급, 완급조절, 자신감, 조언 등 그는 롯데의 버팀목이요 정신적 지주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7년 매우 잘 나가는 그의 입에서 감사가 넘쳐난다. 감독님께 코치진에게 포수 강민호에게...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었다면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들에게도 감사인사를 했을 법하다. 필자가 보건대 송승준은 감사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두 해 전부터 나는 한 달에 두 곳 이상으로부터 감사세미나 초청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다. 처음에는 서원이 들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여름철이 되면 흐지부지 일그러지기 십상이었다. 지난 2년간의 성적표다. 한데 2017년 들어서 기도응답을 보았다. 1월부터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아니 9월에는 4곳으로부터 과분한 초청을 받았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감사운동을 작정하고 혼자 말이지만, 태평양 건너 하와이라도 미국이든 영국이든 싱가포르이든 부르는 곳이 있다면 아낌없이 달려가겠다고 작정했다. 사례가 없어도 자비량으로라도 달려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응원해주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어 감사한 일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위대한맘 센터의 정숙 자매로부터 일전에 전화가 왔다. 7월 말에 이사를 하는데 이사 후 심방예배를 드려달라고 요청한다. 저들의 삶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가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심방은 보통 원치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있음에도 내게 또 심방을 요청했다. 아내와 상의하고 쌀 한포를 준비해 놓고 있다. 그 쌀 한포는 이미 정숙 자매와 자녀들 6명의 몫이다.

 지난주 부천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SNS 상에서 임목사의 감사칼럼을 읽었는데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틀 후에 약속 날짜를 잡고는 만났다. 나오는 길에 쌀 20㎏짜리 한포를 선물로 주신다. 감사세미나 일을 9월 둘째 주로 잡고는 식사하면서 34년 목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헤어질 때, 아래층 한 가게를 더 들러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소고기 정육을 10여만 원 어치 사서 들려준다.

 아침에 아내가 직장에 출근하며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들은 터인데 쌀 포대에, 소고기에, 감사세미나 인도까지 약속을 받으니 이처럼 놀라운 이야기가 또 어디 있는가? 집에 돌아와 나의 책방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는 아버지시여!’

‘나는 부족합니다. 너무 교만했습니다. 서툴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만 전하겠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따르겠습니다. 요나처럼 매 맞고 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조용히 순종하겠습니다.’

 일면식도 없고 아무 관계도 없는 한 사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감사지기 임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부평의 한 카페에서 만나니 당신을 소개하신다.

“나는 감리교회의 한 원로목사 사모입니다. 부평에서 개척했고 일평생 목회하다가 조금 일찍 은퇴하여 온수역 근처에서 노후생활을 하고 있지요. 우리 목사님과 함께 탁구 테니스 등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아하니 얼굴색이 거무스름하니 운동에 살짝 그을린 얼굴이다. 건강미가 넘친다. '저를 어찌 아시고 연락을 했느냐' 했더니 SNS상에 밴드에서 1532 감사일기를 쓴 것을 늘 읽고 있었기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밴드에서 가끔씩 댓글을 달아 관심을 표한 것은 기억난다. 한데 그 사모님이랑 식사를 하게 되고, 또 카페에 들르고,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다가는 그분의 도움으로 스에나가 색채심리 연구소장 백낙선 교수를 소개받게 되었다. 또한 그분의 강의를 위대한맘(인천한부모센터) 정기모임에서 듣게 되고, 또 그분의 도움으로 네이버 해피빈의 폭력치유상담 프로그램을 유치하기까지 되었다. 감사일기와 감사운동이 주는 유익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최고로 어렵고 춥던 시절, 나는 아내의 소개로 감사운동가를 만나고, 한주 한번 정기적으로 모여 감사일기를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이론서를 같이 읽어나가다가 큰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는 결심을 하였다. 이제부터 나는 우리 교단의, 한국교계의 감사지기, 감사운동가가 되겠노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감사관점으로 성경을 읽어 내려갔다. 성경을 수십 번도 더 읽었을 테지만 감사관점으로 읽어 내려가니 성경이 다르게 보인다. 인물들이 다르게 보인다. 사건들이 정갈하게 풀어지고, 인물들이 뛰쳐나와 내 곁을 뛰어다니는 기분이랄까.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 난해 구절이라 해서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일같이 감사한 일들을 경험하며 수시로 수첩에 써 내려간다.

 주일 저녁에는 온 가족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한 사람이 기도한다. 각자가 기록한 1532감사 일기를 발표한다. 거실은 뜨거운 열기로 빛난다. 치킨 두 마리 또는 피자 두 판 정도를 준비해 놓고는 자유롭게 먹으면서 순번 없이 감사저널을 발표한다. 2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는데 얼마나 축복인지 알 수가 없다. 그로 인한 가족 간의 우애와 동질감, 감사의식의 습득과 과정, 결과들을 통해 즐겁고 귀중한 행복을 경험하고 있다.

 하루는 큰 딸 지영이가 말한다. 우리 집의 감사밴드이야기를 밴드책으로 묶어보자고......그것도 신나는 일이 될 듯하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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