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 된지 72년이 되었고, 6.25 전쟁이 발발한 지는 67년이 되었습니다. 해방 된지 5년 만에 6.25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해방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정치와 사회의 이기적인 집단들의 이전투구로 온 나라가 혼란 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 북한이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해방 이후 정치와 사회가 질서 가운데서 단합하여 안정적으로 세워져 가고 있었다면 북한이 남침을 감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6.25 전쟁의 책임이 북한이나 소련에게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은 바른 역사와 외교 관계의 필요에서 마땅히 주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를 통해 반성을 해야 하는 당사국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역사의 책임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광복절이나 6.25를 기념하면서 일본이나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수준 낮고 지혜롭지 못한 감상적인 태도입니다. 광복절이나 6.25 같은 기념일은 결코 떠버리거나 요란하게 기념할 일이 아니고 불행한 과거 역사를 부끄러워하며 진지하고 사려 깊게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대통령은 72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평화 통한 분단 극복이 광복의 완성, 독립운동 임정 건국의 이념은 국민주권, 촛불 든 국민들의 실천으로 이어져...’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목적인데 그것을 수단화 하여 분단을 극복한다는 것은 말로서는 아름답지만 사실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전형적인 진보주의자들의 낭만주의적인, 현실감이 배제된 무책임한 말입니다. 또한 독립운동과 임정의 건국이념을 촛불시위와 연계시키는 것 역시 역사에 대한 지력 미달의 참기 어려운 경박스러움이란 생각에 속이 상합니다.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는 엄중한 국가적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나름 노력은 하겠지만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진지하게 걱정을 하고 있기나 하는 것인지..., 왠지 미덥지 않다는 느낌과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됩니다.

중국 당나라의 천재 시인 두보의 “春望”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나라는 망했어도 산과 강은 여전히 남아있어/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봄이 온 성터에는 풀과 나무 푸르다/

感時花溅淚 감시화천루-세상이 어지러워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흠칫 놀란다/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전쟁이 끝이 없어 봉홧불 석 달째 끊이지 않고/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가족이 보내 온 편지는 황금보다 귀하다/

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하얗게 세는 머리 긁을수록 짧아져/

渾欲不勝簪 혹욕불승잠-다 모아도 비녀를 이기지 못할 것 같구나.

전란의 비애를 상심으로 표현한 애상적 시입니다. 전쟁으로 당 나라의 수도 장안이 파괴되었으나 산과 강은 변함없다는 대목은 절망의 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입니다. 전쟁 중에는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새 소리에도 마음이 놀란다고 하였습니다. 한 번 일어난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석 달째 전쟁을 알리는 봉화 불이 타오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은 이산가족의 비극과 슬픔을 만들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백두소경단, 백발의 머리를 긁으니, 머리 가락이 빠지고, 머리털이 짧아져 의관을 쓸 때 핀을 꽂을 머리카락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만약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파괴되어도 북한산과 남산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6.25를 겪은 세대는 이산가족의 슬픔에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새소리에도 놀라는 두보의 시에 공감할 것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연일 미사일을 쏘아도 놀라지 않고 덤덤하기만 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들도 실제로 전쟁이 나면 꽃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새소리 바람 소리에도 놀라게 될 것입니다.

서기 755년에 당나라 현종 때 하동, 평로, 범양 세 지역의 절도사인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장안을 점령하고 파괴하였습니다. 안록산은 혼혈이었으며 현종의 비인 양귀비와 염문을 일으켰지만 현종이 묵인할 만큼 승승장구하며 실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결국 양귀비는 반군에 의해 비단 줄에 목 졸라 살해되었고 안록산은 장안을 점령한 후 아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이 전쟁을 '安史의 亂"이라고 부릅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는 이 난을 격고 이 詩를 지었습니다. 대한민국 해방 기념일인 8.15일 광복절을 맞아 전쟁의 위험이 고조 되고 있는 조국을 생각하며 두보의 시가 생각납니다.

박두진의 “다부원에서”에서 라는 6.25 전쟁 참상에 대한 시의 한 대목은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나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8월 30일에 태어났습니다. 너무 어려서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전쟁의 후유증의 폐해를 고스란히 입고 자랐습니다. 어린 때였지만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꿈을 꾸면 전쟁에 대한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전쟁에 대한 꿈을 많이 꾸어서인지 마치 내가 전쟁을 겪은 것과 같다는 착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와 6.25 전쟁의 참혹함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못할 짓을 한 일본과 북한을 무척이나 미워하였습니다. 일본과 북한을 미워하는 동안 우리는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만 돌렸습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나 6.25 전쟁의 책임이 일본이나 북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식민정책이나 북한의 남침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불행한 역사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919년 독립운동을 하던 한 조선 청년의 목을 일본군이 작두 위에 얹어 공개 처형하였는데, 울산수비대가 그 때 장면을 찍은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그 사진을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13장에 끼워 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의미는 그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다짐과 또 원수까지 용서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상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민 24:22)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