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기자는 역사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의 눈에 비취는 역사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를 통치하시는 구속사이다. 시편 9편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역사의 흐름과 그 최종 정착지를 관찰한 것이다. 반면에 시편 기자의 역사를 보는 또 다른 안목은 거대한 물줄기처럼 보이는 세속사이다. 물론 구속사와 세속사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역사의 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반신국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따라서 시편 기자의 눈은 구속사와 상반되는 반신국적 성향의 악인들이 도모하는 역사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게 된다. 또한 악의 세력으로 인해 무고하게 고난을 받는 의인들의 고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 하소서”(시 9:19)라고 여호와께 탄원함으로서 반신국 세력은 결국 몰락하게 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1. 세속사에 나타난 반신국 세력의 정체

시편 10편에서는 반신국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반신국 세력의 성향을 자세하게 보고함으로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밝혀진 것처럼 악인으로 불려지는 반신국 세력은 세속의 정치력과 군사력을 갖춘 매우 잘 조직된 조직체이다. 이것들은 개념적이거나 피상적인 존재가 아니며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이다(시 9:15-16). 마치 구속사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악의 세력이 펼치는 반신국적인 행위 역시 역사의 한 장을 꾸준히 기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신국 세력의 흐름이 때때로 아주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세상을 온통 휘젓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구속사의 흐름을 끊고 반신국 세력이 득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럴 때 구속사 속에 있는 의인은 역경에 처하게 된다. 마치 여호와께서 멀리 계신 것 같고 의인의 눈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1절). 반면에 악인들은 가련한 자들을 박해하며 그 세력의 활개를 편 것처럼 보인다(2절).

하나님의 통치가 강하게 나타날 때에는 잠잠히 숨어 있던 반신국 세력들이 마치 때를 만난 것처럼 활개치며 의인들을 핍박하는 이면에는 악인들의 신관(神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들의 실체에 대해 시편 기자는 아주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시 10:3).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악인의 정체인 것이다. 사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며 그들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은밀하고 깊은 욕망과 정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탈자들도 하나님의 보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공공연하게 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오히려 신을 향해 저주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만 천하에 분명하게 드러나면 거품같이 사라질 것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오만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서 결코 그들의 일들을 감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4절). 때문에 그들은 모든 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으며 고난 당하는 자들을 압제하고 착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외형적으로 나타난 이들의 행위를 보면 아주 탄탄한 길처럼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시 10:6)고 장담하고 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처럼 행악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두시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보라! 우리들의 행위에 대하여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찰과 경험에 기초하여 악인들은 더욱 악행을 즐기려 한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악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시 10:7)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악인들의 배후에는 ‘무신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무신론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이론적인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행동한다. 이런 점에서 악인들은 기능적 혹은 실제적 무신론자들인 셈이다. 그들은 말과 행위로서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무신론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기능적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 자체를 관련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도덕성의 부패이다. 그들은 오직 재물과 권력과 행복만을 추구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덕을 무시하고 정의를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판단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 반신국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의 성취

이러한 시대적 특성이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때가 바로 노아 때이다. 그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창 6:5) 보셨던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시대적인 특성과 세상의 종말을 연결지어 언급하신 바 있으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이 시대의 특성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일상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만이 있다는 점이다(마 24:38). 그리고 자신들의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 노아의 때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어느 때까지 하나님께서 잠잠히 보고 계시는가에 대하여 심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1절). 왜냐하면 이러한 시대적인 특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미 화전을 준비하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모든 준비를 다 마치셨음이 분명하다(시 7:11-13). 단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악인들의 허사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악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시 10:11)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펼치시는 날이면 그들을 초개와 같이 불에 사르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반신국 세력의 속성을 자세하게 보고하며 드디어 여호와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을 탄원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시 10:1213).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소행을 일일이 살펴보셨다는 사실을 들어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한다(14절).

이로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포악을 일삼던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한 역사의 통치자임을 증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시 10:16). 하나님의 통치는 공의를 온 세상에 가져온다(18절). 이 사실은 이미 역사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통해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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