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는 여호와의 기이한 일과 그 속에 나타난 인자(דסח)의 산물이다.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역사 속에 심어놓은 이정표와 같다. 때문에 여호와의 구속 사역은 그것의 비중이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기념되어야 한다. 나아가 역사 속에 있는 기이한 일들과 여호와의 인자는 여호와만이 유일하시고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경배하게 만든다.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세상 만민들로부터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것도 바로 기이한 일과 그 인자하심 때문이다.

1. 출애굽 사건에 나타난 여호와의 인자하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기념될 최고의 기이한 일은 출애굽 사건이었다. 출애굽 사건은 애굽의 노예였던 당사자들뿐 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후손들에게 진정한 존재 가치를 밝혀주는 사건이었다. 때문에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녹아져 있어서 그들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이 행하는 성전 제의는 출애굽 사건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었으며, 그들이 행하는 할례는 유월절 사건에 참여하는 표시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처럼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선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결코 몸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피부와 같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출애굽 사건이 과거의 한 시점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출애굽의 경험을 자신의 삶의 현장에 연결시켰으며 여기로부터 여호와의 인자를 체험하는 사건으로 승화시켰다. 그 한 예를 시편 18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고난을 해석함에 있어 그 사건을 개인적인 출애굽 사건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시편 기자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단정할 수 있는 이유도 출애굽 사건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목가적인 상황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는 하나님의 보호와 그 보호 아래 있는 백성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언약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서 출애굽 사건을 결코 배제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과거의 구원 사역을 현재의 시점으로 재해석하고 목자의 비유를 사용함으로서 여호와에 대한 신뢰와 확신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편 기자가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자신은 언제나 출애굽 사건에 비추어 봄으로서 개인적인 구원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마치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출애굽 사건과 결부하여 의미를 부여한 것과 같다(시 18:15-18).

특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표현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 풍족한 생활을 예비해 주신 것을 그 모티프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말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는가를 증거하는 모세의 말속에서 찾을 수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신 2:7). 여기에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는 말씀의 화자는 바로 여호와 자신이시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이미 여호와께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고 말씀하셨던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 원수를 부끄럽게 만드신 여호와의 인자하심

목자의 비유를 더욱 확대하여 목자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에 대한 설명은 2-3절에서도 계속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출애굽 사건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תואנ)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להנ)”(시 23:2)는 묘사에서는 출애굽 사건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본문의 ‘푸른 초장’은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להנ)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הונ)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출 15:13)는 찬송에 나오는 ‘성결한 처소’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서 성결한 처소(הו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표시한다. 이로서 시편의 ‘푸른 초장’ 역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쉴만한 물가’(문자적으로는 평온의 물들, תוחנמ)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생활 중에 평안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안식을 제공했던 언약궤의 ‘쉴 곳’과 연관된다. 때문에 시편의 본문은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החונמ, 문자적으로는 평온)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민 10:33-34)는 기사를 통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때문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는 표현은 출애굽 사건의 최종적인 의미와 부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아브라함 언약(창 12:1-3)의 성취로부터 그 의미를 유추해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출 19:5-6)를 건설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본문은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사명에 대한 각성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여호와의 인자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추구하는 ‘의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명 의식과 정체성이 확립된 상태에 있을 때 시편 기자는 비로소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각성에 문제가 발생하였다면 그들은 결코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매우 깊은 어둠’ 혹은 ‘완전한 어둠’을 묘사한 것이며 일반적으로 어둠은 ‘죽음’을 상징한다(욥 10:21-22). 이와 관련해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렘 2:6)는 예레미야의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사실을 암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동안의 방랑 생활은 여호와에 대한 불신앙의 결과였다. 이것은 결코 출애굽한 백성으로서는 자랑할 만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가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처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끊임없이 구속의 인자를 잃지 않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이것을 근거로 시편 기자는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광야 40년 동안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쉐키나’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서 쉐키나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동시에 대적자들을 물리치는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묘사되었다(4절). 애굽 군대가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가지 못했던 것은 쉐키나 때문이었다(출 14:19-20). 따라서 본문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원수의 손으로부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임재를 부정하는 자들은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시 78:18-20) 하며 여호와의 능력을 부인한다. 반면에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상(식탁)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자신에게도 여호와께서 베푸신 식탁이 주어졌고 그 잔이 가득차 있음을 감사한다. 이것은 원수를 부끄럽게 만드신 하나님의 배려임에 분명하다.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역사 속에서 확고하게 보여졌던 진정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דסח)을 바라보며 과거에 구원을 통해 인자하심을 표현하셨던 언약의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계속해서 인자를 나타내실 것을 신뢰하고 있다. 그 날은 여호와의 집(성전)에서 친히 여호와께서 베푸신 잔치 자리에 참여하는 것으로 성취될 것이다(6절).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역임. 도서출판 교회와성경 편집인 https://www.facebook.com/ChurchAnd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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