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산 영이 있는 사람은 죽어도 살아 있고, 살아도 살아 있는 영적 존재

예수는 왜 죽은 자를 잔다고 하셨는가?

막5:39절에 보면 회당장의 딸이 죽는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막5:38,39)

사람들은 죽은 회당장의 딸로 인하여 슬퍼하고 울고 있는데 예수는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회당장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하셨다.(마9:24, 눅8:52) 그런가 하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에서 예수는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도다”고 하셨고 누가는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60)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를 “자니라”고 했다. 잠을 잔다는 문자적 표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낮에 일하고 밤에 피곤하여 자는 잠이 있고 영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자를 잠을 잔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막5:39과 요11:11과 행7:60에서 말씀하고 있는 “잔다”라는 말씀은 분명히 사람의 육신의 생명이 끊어진 상태를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고 하는 인간을 왜 예수는 잔다고 주장하셨는가? 신구약 성경 속에는 이미 육신의 생명이 끊어진 상태에 있는 죽은 사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려내는 말씀이 있다.(왕상17장, 왕하4장, 막5장, 요11장, 행9장, 행20장) 그런가 하면 죽음을 보지 않고 예수님처럼 하늘나라로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와 같은 사람도 있다. 예수께서 이미 죽어 있는 상태의 인간을 잔다라고 표현하신 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는 육신의 몸을 입고 있었지만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신 분이시다.(막1:15)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눅17:21)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은 믿음의 행위로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믿음은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 참여하는 영적인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깨달음보다는 한계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이성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 되어 버린다 철저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으로 이해하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은 사람을 잔다라는 표현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엡2:1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간의 상태는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라 죽은 상태로 보시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과 죄의 기준으로 생명과 죽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인간은 허물과 죄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있는 상태이다. 처음 사람 아담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창조하셔서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지만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파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죄의 삯이고 죽음이다. 그러므로 현재 인간이 육의 몸을 가지고 살아 있다 죽어 있다 하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전혀 의미 없는 것이다. 주님의 생명과 죽음은 죄 있음과 죄 없음 또는 거룩과 비거룩으로 구분된다.

예수는 이러한 영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영이냐 육이냐 즉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고 있느냐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느냐에 따라 살아 있다 죽어 있다로 간주하신다. “잔다”라는 말은 죽었다 라는 말과 분명히 다르다. 자는 것은 겉보기에 죽은 상태인 것 같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상태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보시기에 나사로와 회당장의 딸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모든 죽은 자의 상태를 잔다라고 하시지 않는다. 예수의 잔다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에 국한되어 있다.

즉 예수를 믿은 사람은 예수님 보시기에 살아도 살았고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살아도 죽었고 죽어도 죽은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육은 죽지만 영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영혼 불멸성의 이론이 아니다. 예수의 잔다라는 개념은 그 사람이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안에서만 통용되는 말씀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바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사건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덤에 장사지낸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확증하신 것이다.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둘째 부활 때에 확연하게 드러날 일이다. 예수는 나사로를 통하여 나사로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마지막 재림하실 때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날 때 나사로도 잠이 깨듯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영적 관점에서 인간의 죽음을 볼 때 그리스도인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히2:14-15,마16:18)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도 산다. 주님은 육의 것으로 영적인 일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의 죽은 자에 대한 잔다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관련되고 예수의 부활은 주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는 잠자는 주안에서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다. 예수의 산 영이 있는 사람은 죽어도 살아 있고, 살아도 살아 있는 영적 존재이며 예수의 산 영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죽었고 죽어도 죽은 자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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