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연성과 창의력 - 우리의 기억력은 어수룩하고 불완전해 보이지만, 나름 쓸모가 있다.

▶ 일단 하나의 스토리나 기억이 구성되고 생생한 감각적 심상(sensory imagery)과 강력한 감정이 동반되면, 내적ㆍ심리적 방법(inner, psychological way)은 물론 외적ㆍ신경학적 방법(outer, neurological way)으로도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억의 생리적 연관성은 fMRI를 이용하여 조사될 수 있으며, 촬영된 영상을 살펴보면 생생한 기억이 감각영역, 감정영역(변연계), 실행영역(전두엽)을 광범위하게 활성화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어떤 기억이 실제 경험에 근거하든 말든, 활성화 패턴은 사실상 똑 같이 나타나는데.

우리의 정신이나 뇌 속에 기억의 진실성(또는, 최소한 기억에 등장하는 인물의 실존 여부)을 확인하는 메커니즘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 직접 접근할 수 없으며, 진실에 대한 느낌이나 주장은 감각과 상상력에 동일하게 의존한다. 헬렌 켈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뇌에 직접 전달하거나 기록할 방법은 없으며, 고도의 주관적 방법으로 여과하여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마다 여과 및 재구성 방법이 다르고, 한 사람을 놓고 보더라도 나중에 회상할 때마다 재여과되고 재해석되기 일쑤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서사적 진실밖에 없고, 우리가 타인이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재범주화되고 다듬어진다.

이러한 주관성은 기억의 본질이며, 우리가 갖고 있는 뇌의 기반과 메커니즘에서 유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착오는 비교적 드물고,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굳건하고 신뢰할 만하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디 한번 생각해 보라! 만약 모든 지식에 출처가 표시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우리는 종종 엄청난 양의 부적절한 정보에 압도당할 것이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 경험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common mind)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출처: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유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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