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환 목사의. 이야기가 있는 교회

1.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삶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우리들에게는 가장 큰 숙제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분명히 구분하는데, 그것은 ‘세상의 요구 앞에서 ‘타협’하는가 아닌가’이다. 즉,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의 사회적은 구조는 당연히 황제를 숭배하는, 즉 우상을 숭배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였고, 하나님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당연히 경제적으로 빈궁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세상과의 타협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요한계시록3:17)’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서머나교회를 향해서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요한계시록2:9)’라고 말씀하신다. 서머나 교회는 자신들이 맞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회적인 구조적 요구에 타협하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교회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의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이다. 그들은 부요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들은 사회적인 요구에 적절하게 타협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3:18-19)’고 말씀하신다.

‘삶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정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목표는 서머나교회이지만, 우리의 삶의 현실은 라오디게아교회같지 않은가?

2. ‘삶에서 하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그래서 신비하다. 바울처럼 예수님을 팝박하려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맡아 증거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만든 아론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평가한다. 즉,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 혹은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살람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사람이다. 그래서 ‘삶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성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여기서 ‘이성적’이라는 말은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편함을 위해, 혹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적이라는 말은 ‘맘몬적’이라는 말로 바꾸어생각할 수 있다. 맘몬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세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 즉, ‘삶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맘몬적인 원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매매가 어려운 것처럼, 맘몬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궁핍의 가능성 앞에 서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택복음6:2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한다. 여기서 재물은 맘몬이다.

3.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주어진 혹은 자기가 당면한 상황 속에서 ‘믿음’을 따라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죽고난 이후에 두려워하는 형들을 향해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세기50:19-21)’라고 말하는 요셉은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믿음은 자신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9)’는 믿음을 갖는다.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음을 안다.

4. 요한 계시록 12-13장에는 사탄의 패배와 패배한 사탄이 마지막 결전을 위해, 즉 자신에게 허용된 1260일 동안의 전쟁을 위해 두 짐승을 불러내는 모습을 요한이 본다. 그리고 사탄은 이 기간 동안 ‘땅에 사는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며 666이라는 표를 그들의 이마나 오른손에 준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수는 지난번에 묵상했던 것처럼 144,000명이다. 이들은 지상에서는 전투하는 교회의 구성원이었는데, 모든 전쟁에서 패한 사탄이 여인의 남은 후손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를 누리는 자들로 이야기된다.

이들의 특징은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요한계시록14:4-5)’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상황과 싸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백성으로 싸웠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유를 드러내시기 위해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요한계시록14:1)’쓰셨다. 즉, 이들의 이마에 있는 표는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 양의 이름이고, 이렇게 인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숭리를 누리며 살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알고,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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