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14-16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김에스더 목사. The Seco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담임, 본헤럴드 미국지사장

기도는 영적인 대화입니다. 대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14-15절에서 대화할 상대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누구인지를 파악했으면, 그 다음 단계는 대화할 상대방에 걸맞는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만약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일 경우에는 예의를 갖추어서 정중하게 대화를 해야하며, 친구라면 허물없이 그러나 예의를 갖추고 친근하게 대화를 하고, 어린 아이라면 권위주의적인 것을 버리고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그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라면, 자기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지 상대방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지를 잘 구분하여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대화를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리에 따라 하기도 하고 말기도 한다면, 교회의 지도자로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지도자 문제만은 아닙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을 다스리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세상에서 리더십을 행사해야 합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누구나 리더십을 갖고있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이들이 형식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형식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에도 들어와서 형식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형식을 없애면서 또다른 형식을 자신들이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왜 꼭 형식을 갖추어야 하느냐"라고 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형식이 없다는 것의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많은 교회의 목사들은 깨끗한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윌로우크릭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의 빌 하이벨스 목사는, 자기 교회의 Youth 그룹을 담당하는 목사가 헐리 데이빗슨(Hurley Davidson)오토바이를 타고, 머리를 밀고, 팔에 문신을 하고, 체인이 달린 가죽 상하의를 입고 설교를 한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목회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인간을 보고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많은 사람을 교회에 오게 하면 무엇합니까?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지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많아지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결국 이 교회는 "넓이는 있지만, 깊이가 없는 교회"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주의"를 미워하시지만, 형식을 따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주의"를 싫어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기뻐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행함이 없이 의식적으로만 생각하고 말만하는 '~주의(主義)'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실 때, 제사장이 입을 옷을 하나 하나 어떻게 어디에 무엇을 달고, 그 모양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성결"과 "거룩"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목사가 목사가운을 하나님 앞에 세상과 구별된 정결한 모습으로 나가기 위해 입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만, 목사가운을 권위주의에 입각하여 교인들과 구분된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입는다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 어떠한 분인지를 우리는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세속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모습으로 우상에게 나아가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가장 깨끗하고 정숙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름만 되면, 많은 여성들이 소매없는 옷에,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또 신발은 슬리퍼형태의 일명 '쪼리'(flip flops)를 신고 교회에 나옵니다. 그것이 현대의 옷차림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면이 정숙한데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내면이 더러운데 정숙한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완전히 깨끗할 수 없음을 우리 자신이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우리의 세속에 물든 몸을 잘 가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더워 죽겠는데?"라고 하지만, 정작 직장에 갈 때에는 잘 차려입고 가면서 교회에 올 때에만 말들이 많습니다. 또 직장에 갈 때에는 정장을 입고 가면서 교회에 갈 때에는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찌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레 16: 3-4)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사도바울은 기도의 대상이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죄악과 함께 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며,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만왕의 왕이심을 생각할 때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위대하심에 비해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간절히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간구의 내용이 본문 말씀입니다. 

그는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전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우리의 뜻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즉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감동이 되어 기도하는 자의 내면이 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기도자의 결단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계획과 뜻에 초점을 맞추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결단하는 것이 바로 기도의 핵심입니다.

16절에서 사도바울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속 사람(ἔσω ἄνθρωπον)"이라는 것은 "영(spirit)", "마음(mind)" 또는 "인격(character, personality)", "양심(conscience)"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세속적인 뜻으로 쓰는 육체(flesh)인 "겉 사람"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나타납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통하여 나타나는 완전함을 말합니다. 따라서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자비가 한이 없으신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자기가 빨리 감옥에서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가 세운 교회의 사람들이 교인이 아니라 성도가 되기를 애타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리더라면, 자기가 품고있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무릎이 아니라 마음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아파서 누워서 기도하더라도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윌로우크릭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교회의 핵심 사역자인 그렉 허킨스와 콜리 파킨슨이 집필한 <Reveal: Where Are You?>라는 책에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3년동안 조사하며 120명을 일대일로 면담하며 영적 변화와 인간개발에 대한 책을 1백권이 넘게 읽은 뒤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숫자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드는 일에는 실패했다.", "뭔가 잘못됐다. 우리가 실수했다." 

그들은 교회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으나, 결과는 내적으로 즉 "속 사람이 성숙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지우개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흰 종이를 다시 꺼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처음부터 다시 써야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회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이 교회를 보고 교훈을 얻어서 우리도 프로그램 위주의 교회를 버리고, 성경적인 교회가 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 교회가 실패한 것이 바로 성경적이지 않고, 인본주의적인 교회를 이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살아있지 않고, 많은 모임과 프로그램만이 더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벌써 문제 속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더 늦기전에 빨리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 사도바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의 속 사람이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도록 무릎을 꿇는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잘못하고 실수하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고 지적하여 비난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속 사람이 연약해서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아직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나 자신이 영적으로 강건해지도록 매순간 성령께서 나 자신을 강권적으로 붙잡아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초청하지 않아도 우리 속에 강도처럼 들어오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문을 열어야 그때에 비로소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하나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잘못된 교회가 있으면 그것은 지적해주고 권면해 주어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처럼 잘못된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깨달은 사람이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오늘 나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귀한 은혜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음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교회들을 볼 때에 과연 주안에서의 성공인지, 세속적인 성공인지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무조건 큰 교회가 하고 있으면, 거기에 따라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잠시 묵상해 봅니다. 부족한 저희가 보기에도 안타까운 것들이 이처럼 많은데, 주께서 보시기에 어떠하겠습니까?

종교다원주의 시대가 되어서 어떤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회, 기독교와 카톨릭은 형제이므로 카톨릭으로 개종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교회, 율법은 구시대의 유물이므로 말씀대로 꼭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 너무나 교회들이 잘못되어서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망막한 시점에 저희가 살고 있습니다.

윌로우크릭 교회가 잘못을 인정한 시점에서, 그 교회를 비롯한 프로그램 위주로 잘못 흘러가고 있는 교회들이 진정으로 주 안에서 거듭난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교인의 내적 성장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깨달았사오니,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서 오직 말씀으로만 돌아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현재 많은 잘못된 교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혹시 저희 교회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면, 목회자와 교회의 리더들이 깨달아 회개케 하시며, 저 역시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나 제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교회를 선택하며 따라갔다면, 그 모든 것을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 동안 몰라서 그랬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구별되게 모시지 않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예배드리러 가면서 편한 복장으로 가고, 찢어진 청바지나 살이 너무 많이 보이는 옷차림이나 세속적인 외모로 경건의 모습이 없이 주님을 대했던 저희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주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주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만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오니 저희를 온전히 주님의 영광의 풍성함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과거의 저처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의 거룩하심의 본을 보이며 가르칠 수 있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하오니, 저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셔서 저희 속 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저희의 내면의 풍성함이 흘러나와 선을 행하므로 저희의 선한 행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주님께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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