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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시 산책】 그믐달의 숲
  • 김종욱
  • 승인 2017.09.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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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의 숲

 

                   김종욱

 

달이 말했다

이젠 지쳤어 창백한 나의 얼굴과 어둠 속에서 색을 잃은 끝도 없는 하얀 길 빛은 언제 오는가 밤의 숲은 두려움에 떠는 숨소리들로 가득한데 숨소리에 녹아드는 가냘픈 희망이어야 하는 어둠의 시간에 이젠 정말 지쳤어 오늘이 마지막이야 진정 이 어둠을 사랑하는 일도 어둠 속의 사슴은 참 이기적이구나 내가 어쩌길 바라고 밤 호수 같은 눈망울로 날 보는 거야 어떡하자고 나뭇잎 떨 듯이 귀를 쫑긋 세우는 거야 나의 흰 몸짓에 기대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어 우리는 여러 번 죽었잖아 어렴풋이 이제 곧 태양이 뜨고 가장 가난하고 수척한 얼굴로 여러 번 거짓말을 했었잖아 내겐 빛나는 마음이 없어 난 정말 죽을 거야 피를 토하면서 벌겋게 빛나는 아침이 온다 저 황금빛 태양을 봐 멀리서도 저렇게 환한 걸 저 태양이 황금마차를 타고 황금 길 위로 행차하면 열두 별자리가 머리를 조아리고 죄 많은 내겐 사형이 언도될 거야 잠시 태양의 황도를 걸었던 죄로

 

사슴이 대답했다

네가 죽을 때마다 얘기해줬는데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여러 번 죽어간 꿈속에서 네가 얼마나 환하게 어두운지 보고 있었고 듣고 있었고 기대고 있어 난 알아 넌 다시 살아날 거야 나의 어두운 꿈속에서 이제 곧 태양이 빛나면 보이게 될 거야 여명과 황혼이 얼마나 닮았는지 서로 배에서부터 올라온 따스한 고통이 얼마나 뜨거운 눈물로 고이는지 사랑이면서 죽음이 전부인 너를

 

 

이 모든 것은 진정 고요해

 

 

에메랄드빛으로 흔들리는 잎새들과

크리스탈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호수의 수면

그리고 여명과 황혼을 동시에 머금은

붉은 루비 눈동자의 사슴 한 마리

어둠도 짙은 사파이어처럼 빛나네

날마다 죽어가고 살아나는 달의 꿈속에서

 

 

 

김종욱  elim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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