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제의 핵심, 선교대상이면서 영적 아마겟돈 전쟁의 현장.

김시환 목사, 현대교회사연구소장, 뉴저지한밝교회 원로목사

“ 북한문제에 관해 난는 과연 말할 자격이 있을까?”  북한문제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우선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북한에 관련하여 일반인들에 비해 비교적 깊은 관련을 맺고 일해 온 사람일수록 이에 관해 함부로 언급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될 것이다. 더구나 다른 이들에게 일깨움과 권고를 하는 자리에는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인권이 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북한에는 그 주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잡아, 권력을 유지하고 연장을 꾀하는 독재체제가 버티고 있다. 그들은 인류사상 유례없이 무자비한 ‘반인류적(反人類的)’ 패권집단으로서, 북한을 누구나 다 아는 기아(饑餓)지옥-인권지옥으로 만든 자들이다. 오늘에 와선 핵개발까지 하여, 핵테러도 서슴치 않을 수 있는 비이성적 집단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그 정통성이 없는 권력 유지를 위해 지금 한국 국민들조차 핵의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군사적 안보와 경제적 회생을 거래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북한을 상대로 일하는 현장에선 이런 반인간적 권력을 상대로 생명을 내건 곡예(曲藝)를 해야한다. 함부로 무책임하게 이런 저런 말을 해선 안 된다.

어디 그뿐인가?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 책략까지 부리며,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식민지화 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2008년 올림픽 종료와 더불어 김정일에 대한 제거나 담합을 위해 급진적인 책략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북한에서의 이익지분을 놓칠새라, 초고속 질주를 시작했다. 아니면, 남한만이라도 조차(租借)지역으로 삼고자, 지금 야꾸샤까지 동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 걸친 거대한 아나콘다 다국적 기업군단(프리메이슨)은 남북한의 분단고착과 식민화에 지금 목을 걸고 달려들었다. 이를 위해 러시아까지 꼬리에 달고, 그 아나콘다 혈안(血眼)에 불꽃을 켜고 우익으로 기우는 한국을 물어찢고자 다가와 있다. 그들은 클린턴 정권 시절 미국의 힘을 빼돌려 자신들만의 효율적 세계지배 장치를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그것은 미국 힘의 분산 재배치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을 비롯하여 ‘악의 축’에 끼는 국가들 즉 대미 적성국가에게 핵과 생화학을 포함한 군사무기 기술까지 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기독교 보수주의 측에서 부시정권을 내세워 미국 강화를 서둘렀다. 그리고 키신저-클린턴 정책그룹에 대해 사정처리를 하려들었다. 이에 당혹한 프리메이슨 그룹은 결국 알카에다까지 동원하여 9-11테러까지 범했다. 그 이후 아프칸-이락 전쟁과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안보위기는 그들 간의 세계지배 대권투쟁 연장선 상에서 보아야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사실은 그들의 전략 사령관 키신저가 중국과 남북한을 오가며 끼친 영향력을 조사해 보면, 즉시 확인될 것이다. 이처럼 프리메이슨은 세계지배를 위해 미국 기독교 보수주의와 목하 ‘보이지 않는 아마겟돈전쟁’ 중이다. 지난 10년 간의 서울 좌익정부는 국민들을 속이면서까지 키신저 정책 그룹에게 사실상 한국의 안보주권과 경제주권을 팔아넘기다 시피 매판시녀(買辦侍女) 집단으로 화하고 말았었다

이에 비해, 미국의 기독교 보수세력은 한국안보와 경제 및 통일 문제들에 관해 가장 한국 입장을 고려하는 자세이다. 그것은 물론 그들의 신앙과 도덕적 신념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서울의 좌파 친북정책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들과 협조가 잘 되었더라면, 아마 지금쯤 현 북한체제 붕괴와 평화흡수 통일을 향해 상당한 진전이 있을 수 있었다

한 세기전(1907년)의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은 오늘의 북한문제 및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코드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부흥운동은 오늘을 위해 단순히 교회회개의 계기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과 중국의 동북공정과 ‘키신저 정책그룹’의 대(對) 한반도 정치음모와 관련하여 중요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영적 아마겟돈 전쟁의 얼킨 실타래를 풀어, 진리의 승리를 가져올 단서도 제공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바로 이 역사를 인해 소중히 여기시며, 기다리고 계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부흥운동 속에는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오류를 제거할 수 있는 교의신학적 비답(批答)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통치권의 타당성을 입증할 역사신학적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를 밝히기 위해,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과 그에 따른 초대 한국교회 역사를 잠시 일별하기로 하자.

현대적 한민족 정체성(Identity)의 원천. 평양 대 부흥운동

오늘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20세기 초 한반도 역사를 돌이켜보면, 개신교 측의 몇 가지 의미 있는 현상이 특이 주목(注目)된다. 그리고 그 현상들 모두가 평양 부흥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 현상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당시의 한국개신교는 서민들을 모아 ‘민족구원을 위한 회개운동’을 주도(主導)했다. 교회는 한국 서민들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도록 감동적인 설교를 하였다. 그 서민들은 국가의 주권상실 원인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며 회개했다. 당시 일본을 대리(代理)했던 초대 조선통감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한국교회에게 독립운동을 못하게 하는 강요문서를 보냈다. 선교사들 중 일부는 이를 찬성했으나, 한국 성도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권상실의 책임을 스스로 안고 회개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러한 회개운동의 선봉(先鋒)에 ‘평양 장대현교회 부흥운동’이 있다.

둘째, 한국 개신교는 그 서민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주어 의식혁명의 기반을 조성했다. 교회는 무지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어머니 겸 스승이 되어, 한글과 서민언어(庶民言語)를 그릇 삼아 그 안에 번역된 성경을 담아주고, 그 언어로 신교육(新敎育)을 해 주었다. 동시에 그 서민언어에 기독교의 신앙과 도덕률과 풍부한 문화를 담아주었다. 그래서 한국을 이끄는 중심언어는 양반 계급의 한자언어(漢字言語 ; 輸入言語)에서 서민들의 순수 한국언어(韓國言語)로 바뀌었다. 이러한 언어를 줄기차게 솟게 한 샘은 교회의 설교와 회개운동 및 신교육이었다. 이에 자극과 격려를 받아 교회 밖에서도 서민들을 상대로 민족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鼓吹)하는 연설회, 웅변대회, 한글신문 및 출판물, 신문학 운동, 신교육 운동이 나타난 것이다. 평양의 부흥운동은 이런 모든 활동의 첫 번째 충격이었고, 원뿌리이다.

셋째, 한국 개신교는 교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차별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했다. 이로 인해 교회 밖으로도 계급과 성별과 빈부와 지방색과 혈연의 장벽을 허무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새로이 통홥된 민족의식을 움트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요소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 안팎을 물론하고 농어촌 계몽운동, 물산장려(物産奬勵)운동, 독립운동의 씨앗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 씨앗이 바로 ‘한민족이 거듭나게하는 불씨’가 된 셈이다. 교회는 언제나 그 씨앗 자체였고, 그 씨앗의 보급로이기도 했다. 평양의 그 부흥운동은 이런 신앙과 윤리운동의 시발점이었고, 불변하는 본이 되었다.

넷째, 한국의 개신교는 ‘인도주의적(人道主義的) 도덕성을 갖춘 민중 지도층’을 양성했다. 이 지도층은 후일에 삼일 만세운동까지 주도하게 되고, ‘새로이 통합된 한민족 의식’을 이끄는 주류(主流) 지도층으로 일어서게 된다.

개신교의 등장 직전까지는 동학(東學)이 부패한 양반들의 지배체제를 무력으로 붕괴시키려 했다. 또 침략 외세에 침륜(沈倫)된 것으로 여긴 서학(西學,天主敎) 교도들을 동학 측은자신들과 하는 것을 당연시 차별화 했다. 그래서 동학은 천주교도들에겐 양반들과 다름없이 폭력적인 억압에 가세(加勢)했다. 그것이 동학혁명이었다. 그 결과로 민족세력은 통합되지 못하고, 외세의 무력개입을 자초(自招)하고 말았다.

그러나 개신교는 양반들과 서민들이 자율적으로 하나가 된 YMCA 운동을 양반이었던 이상재 선생 중심으로 일으켰다. 또 서민 출신인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는 공옥학교(攻玉學敎)를 통해 ‘기독교 민족교육’ 운동을 일으켰고, 이에 이준, 안창호, 김구, 이승만 등의 걸출한 양반 계층 지도자들을 흡수하였다.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민족 자주독립 연설회(여론형성) 붐이 일었고, 서민들과 양반계층이 하나가 되어, 전 민족적 차원에서 비폭력적인 자유-평화-민족 운동의 기초를 닦게 되었다.

일제(日帝)는 이런 운동의 시원(始源)이 평양 부흥운동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신앙운동을 통해 키워진 지도자들의 민족운동이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개신교 탄압 쪽으로 급히 정책 전환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것은 침략민족 일본이나 중국과 차별화된 한민족의 새로운 통합된 운동의 시발점이요, 타당성 있는 생존윤리의식의 시초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민족 정체의식의 기초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 거대한 민족활동은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응집된 일이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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