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록 볼리비아 선교사가 보내오는 편지

원종록 선교사는 2016년부터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어린이를 섬기는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Bolivia Montero 소재, 약 150명 출석). 미주장로교 신학대학교를 마치고 해외한인장로회총회(통합) 서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하늘에서 온 남자』(2014), 『힐링 소마』(2015) 등이 있다. <편집자 주>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 시 25: 5 )

월요일 아침은 영육이 완전 방전된 상태에서 간신히 몸을 가누며 큐티를 묵상한다. 이곳의 연휴가 겹치는 날 주일은 최악의 예배가 된다. 앞주에 성전을 꽉 채우던 성도가 어젠 1/4 정도만 나왔다. 게다가 많은 것이 꼬여 목사의 마음이 불편해지면 덩달아 몸도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간다.

예배 내내 힘들어 하는 마음에 윌리엄 케리 선교사가 떠 올랐다. 그는 인도에서 7년을 복음을 전했지만 단 한명의 개종자도 없었다. 그분과 비교할 때 난 선교사라고 할 수도 없는 존재이며 여건도 지금은 매우 좋다. 케리는 열매가 없어 맥이 빠질 때 일기장에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며 나의 근심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생명을 잃는다 해도 맡겨진 사명만으로도 기뻐 하겠습니다.' 고 적었다. 반면 난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을 속상해하며 씩씩 거리는 것이 진정 그들의 영혼을 위한 사랑인지 아니면 내가 잔치를 차렸는데 오지 않아 화가 난 것인지 묵상해 보았다. 그러면서 다윗의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25:5)"라는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선교사의 사역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하며 다시 결단을 했다.

첫째 내게 주신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한다.

케리가 선교를 떠나기 위해 노력할 때 수많은 장애를 건너며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고 하며 자신을 채찍했다. 선교지로 향한 모든 종들은 주님이 주신 명령을 받고 달려 갔지만, 현장에서의 여러 상황 때문에 임무를 수행치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환난과 장애가 길을 막을 때마다 주님의 명령을 새기고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어젠 하루 종일 두 마음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난 못해 - 아니야 할 수 있어'.

둘째 환경과 상황을 보지말고 주님만 보아야 한다.

목사의 힘을 빼는 것은 엄마들의 허언이다. 금요 성경공부에 모인 20여명에게 1:1 다짐을 받으면 주일 예배에 꼭 온다고 약속은 시원하게 했는데 교회 코 앞에 살면서 아이들은 보내고 엄마 아빠는 오지 않는다. 그래도 미워하지 말고 또 사랑을 품어야지 하는데, 머리는 그러는데 마음은 잘 따라주지 않는다. 그럴때 주님께서 '원목사 너보다 내가 더 답답해' 하신다.

셋째 관습과 행동을 바꾸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케리는 인도에서 sati 라는 풍습을 없애는데 노력했다. 힌디 관습에 남편이 죽으면 과부를 불에 태워 장사 지내는 종교적 관습을 타파 했다. 이곳에도 나쁜 생활습관이 많다. 좀 바꾸도록 권면하면 '볼리비아는 원래 그래'하며 변명을 토해 낸다. 내가 가장 싫어하며 바꾸고자 하는 것이 바로 거짓과 핑게로 일관하는 '원래 그래' 라는 단어이다.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고도 '원래 그래' 하고 넘어 간다. 다소 무리가 따른다 해도 나쁜 것은 고치도록 해야 한다. 토요일 교회에서 자면서 밤새 '쿵쾅거리며 춤추고 마시는 그들의 파티문화가 정말 미웠다. 그러나 아직은 쫓아가 말릴 단계까지는 아니며 점차 계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이방에서 주님의 사랑을 편다는 것이 자칫하면 나의 의로 변질되는 것이 선교사로 가장 경계해야할 덕목이다. 또 한편은 마라톤 주자처럼 지치거나 낙오하지 않게 페이스를 조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고난도 기쁘기까지는 않아도 잘 감당할 수 있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자기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라는 케리가 좋아했던 성구를 추억해 보며 또 각오를 다진다.

원종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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