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사람들은 다 복을 좋아합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떤 복이 가장 좋은 복일까요? 우리는 지금 에베소서를 통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소개받고 있습니다. 이 복이 어떤 복입니까? 이 땅의 육적인 복과는 구별되는 복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구원의 복입니다. 복중의 복인 이 신령한 복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감격적으로 할 수 없고 기복주의에 빠져 밤낮 엉뚱한 복만 바라는 미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에 구원의 신령한 복을 제대로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복이 어떻게 출발합니까? 오늘 본문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택으로부터 구원의 신령한 복이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선택과 예정에 관한 것은 우리 지성의 한계를 초월한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에 속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너무나 분명히 말하고 있는 사상이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였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야곱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택함 받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버림받은 사람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가 있다고 합니다(4절).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신 구원의 섭리가 있다고 합니다(5절).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결정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예정을 입은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11절).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말하면 그런 불의하고 불공평한 경우가 어디 있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한 사람도 구원해야 할 의무가 없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의 상태는 중립적이거나 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후 그의 후손들인 인간은 의인이나 중립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 아래 있는 진노의 자녀로 태어납니다(엡2:1-3). 의인이 없는데 하나도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죽고 멸망하는 것이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 상태 이대로 아무도 구원하지 않고 다 버려도 하나님은 불평 받을 이유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다 심판해도 마땅한 인생들 중에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자기 아들로 삼으셔서 당신의 긍휼과 사랑을 나타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하고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전부 죽어 마땅한 인생들 중에 일부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는 것은 우리의 조건과 자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택했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분을 향하여 찬송하기는커녕 불의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대들고 기분나빠하고 항의하는 것은 얼마나 불경한 것인지요.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아 그리스도가 나의 주와 나의 구원자로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를 아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땅에서 인간의 수단과 능력과 재주로 만들 수 있는 복이 아니고 오직 하늘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허락되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며 받은 자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복중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고는 싶은데 안 믿어져서 못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예수를 전해주는 시대에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예수를 알게 되고 또 자신도 모르게 예수를 믿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그럼 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까? 4절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거룩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란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몸을 보존하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거룩’이란 구별한다. 분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구별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과 순전하게 교제할 수 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는 구별된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가 구별된 인간의 존귀함과 거룩함을 다 깨트려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깨트려진 인생들 중에 그의 기쁘신 뜻대로 누구를 택하여 다시 거룩함을 회복시키시고 영광의 완성까지 가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은 단순히 남의 눈을 의식해서 죄를 짓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어 그의 생각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높이며 하나님을 지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교제의 대상으로 구별하여 바치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나도 미워하고 하나님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이 얼마 없듯이 거룩하게 살고 싶은 신자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구별시켜 사랑의 대상으로 드리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즐기고 누리고 뽐내는 것에 더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발동됩니다. 4절에 보니까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하죠. 거룩은 군대에서 군인들이 훈련받는 것처럼 자유를 박탈하는 피압의 상태에서 반복적인 통제와 훈련과 연습의 결과로 나타나는 어떤 동작과 행동의 익숙함이 아닙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격적인 헌신이며 하나님 앞에서 만들어지는 전 삶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고전13장 4절을 보면 사랑은 오래참고로 온유하며로 시작해서 참고 견디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까? 참고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단지 종교적으로 익숙한 행동이나 습관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안에서 인격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전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거룩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의 인생이 왜 이렇게 긴지 아십니까? 우리가 거룩하게 만들어지기 까지 하나님이 기다리고 오래 참으시는 기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유하심과 참으시는 기다림과 희생과 사랑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랑과 이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되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차례씩 버림받을 짓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

오늘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5절말씀 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 것이 그것입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몹쓸 아이를 사람 만들려면 가끔씩 만나 맛있는 것 사주고 마음을 사고 1주일에 한번 씩 감시하고 가르치는 정도로 되지 않습니다. 아예 호적에 입양을 해서 자기 아들로 삼고 그 아이와 함께 살면서 사랑의 전쟁을 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오랜 기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죄로 그 형상이 다 파괴되고 왜곡되어서 짐승처럼 본성대로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택하시어 다시 고귀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고 영광의 상태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라고요? 그냥 한번 씩 찾아오셔서 초월적인 체험을 주시고 좋은 말로 타이르고 간섭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의 호적에 우리를 입양시키시고 아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 몸을 성전 삼아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그의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사랑의 전쟁을 치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축복이나 특권이기에 앞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엄청난 집념이고 고집이고 의지의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성품을 다 사로잡아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그 고집을 누가 꺾습니까? 아무도 못 꺾습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하나님의 집념과 고집을 꺾지는 못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과 예수님의 엄청난 고난을 값으로 치루고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온 우주를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저주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 값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독생자의 거룩하심처럼 우리도 거룩하게 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성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래서 안녕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고 억울하고 고단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주의 백성들은 그 바라보는 목표와 달리는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거룩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을 더 좋아하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적인 축복과 기쁨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아들 삼으시어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복된 초대에 기꺼이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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