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hen Paddock은 자율인간의 극단적 케이스다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지난 주 Las Vegas에서 스티븐 패덕(Stephen Paddock)이라는 64세의 백인 남자가 무차별 난사한 총탄에 의해 6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매우 혼란하게 하는 것은 살인범에게서 아무런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어떤 동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그는 누구와 원한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생활고에 시달린 것도 아니고, 사상과 이념 때문도 아니고,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에 의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면서 자가용 비행기를 두 대나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하면서 살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가난과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던 건강한 백인 남자가 인간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극악한 짓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이나 언론은 범인을 외로운 늑대니 자생적 테러리스트니 하지만, 성경에 비추어 보면 스티븐 패덕은 인생이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 존재를, 돌보고 통제할 목자가 필요한 양에 비유하였습니다. 통제하고 돌보는 목자가 없으면 각자 제 멋대로 행동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뿐 아니라 반사회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물인 양이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야 다른 양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할 경우 그 인간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Las Vegas라는 사회적 환경이 이런 끔찍한 대형 참사의 숙주 역할을 한 셈입니다. 개인이 그런 중무장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Las Vegas입니다. 전미총기협회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에 따르면 Las Vegas가 있는 네바다 주는 총기규제가 미국 전체에서 가장 느슨한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총기 소지에 라이센스나 등록이 필요하지도 않고 오픈 캐리와 은닉이 모두 허용되며, 자동화기와 기관총도 등록만 하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네바다에서 이런 사고가 그 동안 한 번도 안 일어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미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네바다가 그런 주라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개인 소유의 총기가 약 2억 7천만 정에 이르고 총기에 의한 사망자 수는 매년 3만 1천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총기 규제 강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총기 규제를 강화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정당방위 총기 사건은 259건인데 반해 의도적 총기 살인은 8,342건으로 정당방위의 32배에 이릅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총기 소유가 불법이던 일리노이주의 총기규제법이 2012년에 연방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았습니다. IS만 위험한 것이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만 위험한 곳이 아닙니다. 김정은이 마음 한 번 잘 못 먹으면 핵미사일을 어디로 쏠지 몰라서 대한민국과 일본과 미국과 유엔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를 다루는 사람 중에 스티븐 패덕 같은 사람이 없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외모에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교통 티켓 한 번 받은 적 없이 살아온 그는 대통령에 의해서 순수 악 그 자체로 평가 받을 만큼 악마의 짓을 하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끝냈습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복음은 아니더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이 가야 할 바른 길을 찾고 걸어가면서 그 길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그 길을 가려고 모두가 함께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그 전통 가치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가 정상적이라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합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하면 합법적으로 불이익을 당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고 남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신 것인데 그 하나님의 결정을 거부하고 남자냐 여자냐를 자기가 다시 결정할 수 있게 법을 만들었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결혼할 것인가 여자와 결혼할 것인가를 자기가 결정하고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인간의 정당한 자율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기가 자기의 성을 결정하도록 국가가 법으로 보장을 한 것이기에 국가가 합법으로 하나님께 반역을 한 것입니다. 헬라의 철학은 물론 문예부흥에서부터 현대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과 철학과 학문이 추구해 온 것은 자율인간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연구해 본 결과 다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는 자율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율이란 영어로 Autonomy라고 하는데, 이것은 철학용어입니다. Autonomy가 일반적인 의미로는 자치 또는 자치권을 의미하지만 철학에서는 자율이라고 합니다. 즉 Autonomy란 타인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the ability to act and make decisions without being controled by anyone else.). Autonomy는 고대 그리스어 αὐτόνομος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것은 합성어인데, 즉 αὐτο는 영어로 self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뜻하고 νόμος는 법이라는 뜻인데,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αὐτόνομος 즉 Autonomy가 된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개인이 스스로에게 자신만의 법칙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덕, 정치 등에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이것은 이성적인 인간의 능력에 최종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율적 인간은 세련되고, 일관성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책임적인 존재라는 근거로서의 자유의지와 자율이 비슷하게 이해되기도 하지만(칸트는 그의 <도덕 형이상학 원론>에서 인간성을 정의하기 위해서 자율이라는 개념을 적용시켰다.), 자율이 실제로 활용되는 수많은 경우에서는 자유의지와 자율은 전혀 다른 뜻임을 쉽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의(autonomism)나, 자율주의 그룹,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오늘날 통상적으로 독립적인 급진좌파 경향과 무정부주의(anarchism)적 경향의 운동 흐름을 일컫는 용어들입니다. 자율주의 그룹은 밀접한 관계그룹(affinity group)을 통해 조직화되어 있으며 지배적인 사회 질서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인 자유공간을 창출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반권위주의적, 사회혁명적, 무정부주의 친화적인 이상을 따릅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국가보안기관들이 이 같은 자율 운동을 ‘좌익극단주의’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서 자율주의 그룹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계 거의 모든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생태운동, 반전평화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은 그 이론의 핵심이 ‘자율’입니다. 정치나 제도나 관습이나 종교나 전통적 보편 가치까지 그것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에서는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소위 자율적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그 지배력과 투쟁해오고 있습니다. 투쟁의 과정에서 사용되는 투쟁 방법으로는 어떤 폭력성도 정당화 되고 있습니다. 건물을 점거하고 대안미디어(자유 라디오 방송), 대중교통 집단 무임승차 등의 운동방법들을 개발하여 사용합니다. 90년대 이후 자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행동 영역에는 건물 점거를 통한 자율주의 공간운동, 반 파시즘 및 반인종주의 운동이 있고, ‘불법 인간은 없다’라는 구호 아래 난민과 이민자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자율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여러 상이한 제도권 밖의 급진적인 좌파들이 뒤섞여 있는 혼합체였습니다. 이들은 정당정치를 불신하고 산업일선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직접 활동을 통해 자본가 사회를 붕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사회주의 내에서도 극좌로 분류되는 사상으로서 정치인과 정치 활동을 불신하고 노조 중심의 파업과 같은 직접행동을 확산시켜서 최종적으로 국가 전체의 동시 파업을 일으켜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노동자 연대에 의한 산업을 가동시키려고 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적군파와 친화적인 반제국주의 그룹이 자율주의 그룹을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율주의 운동과 관련된 두 개의 양극단이 있는데, 그것은 반독일 노선과 반제국주의 노선입니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좌파 내부의 반유대주의와 중동문제에 대한 입장 및 걸프 전쟁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쟁에서 불붙었습니다. 이 논쟁은 매우 격렬했으며, 심한 경우 양 그룹들 사이의 직접적인 폭력적 충돌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반독일 노선은 이스라엘과 연대했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자살폭탄 공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미국의 중동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반제국주의 노선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책을 자신들의 이념적 입장에 따라 제국주의적이며 범죄적인 것으로 바라봅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의해 억압당한다고 보면서 팔레스타인 민중 해방운동과 연대했습니다.

다수의 반 제국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자율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들의 세계관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시각은 선진국의 부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대륙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는 이러한 지정학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들은 선진국 대도시들의 가장 가난한 주민들까지도 이 세 개의 대륙에 대한 착취로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이들 선진국에 더 이상 경제적 소외 계층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혁명주의자들의 과제는 이런 점에서 개발도상국에서의 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정권을 후원하고, 선진국의 군산복합체에 대항해 사보타주, 즉 생산 설비 및 수송 기계의 전복, 장애, 혼란과 파괴를 통해 원수나 고용주를 약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반독일 노선이든 반제국주의 노선이든 이들은 제도권 밖에서 자율적으로 만든 원칙과 행동 목표가 있습니다. 개인이 자율적이 되든 집단이 자율적이 되든 그것이 기존의 합의된 정치와 제도를 벗어나 자의적 목적을 추구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하게 되고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그들이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은 물론 인명까지 보호 받을 수 없는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정치와 사회 체제와 제도는 나름의 보편 가치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 보편 가치는 다수의 선택과 사회적 약속에 의해 모두가 존중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한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이 기존의 제도와 보편 가치의 권위를 거부하여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행동은 핵폭탄처럼 가공할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 친구의 우정, 이웃들과 좋은 관계, 자신이 하는 일이 이웃과 지역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게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환경운동, 구제, 약한 자 돕기, 낙심한 자 위로, 하나님 섬기는 것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자율주의를 표방하는 이들 중에도 경우에 따라서 보편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모범적 사회 일원으로 평가되고 존경 받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모든 판단 기준이 자율이기 때문에 다음 순간 극단적 파괴행위를 할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는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행위와 악마 같은 행동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자율은 자기가 자기에게 법과 원리가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 자기실현이고 정의입니다.

노동운동과 인권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하는 이들이 법과 정의와 인권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을 정당화 하는 것도 그들의 모든 활동의 목적이 자율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합의된 모든 가치와 제도를 자율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것들과는 반대 되는, 자율인간이 임의대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런 생각마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자율인간은 걸어 다니는 대량살상무기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은 자율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통제 받아야 자신은 물론 모두가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과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자율인간은 그 자신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모두에게 위험한 존재입니다. 스티븐 패덕은 무의미 무목적 무종교 무신앙 자율인간의 극단적인 경우이고, 끔찍하지만 자율인간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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