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9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과거에 비하면 현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많은 직업과 직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약 10년 전부터 생긴 숲 해설사라는 직종이 있습니다. 삼림과 숲에 대해서,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생물과 생태에 관한 것들을 설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숲을 더 잘 알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느끼게 해서 궁극적으로 숲을 사랑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숲의 속삭임까지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죠. 그냥 피상적으로 숲을 구경하면서 “그 참 공기 좋다”고 하는 것과 이들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 속에 있는 생태를 알고 숲의 속삭임을 느끼고 이해하며 보는 숲은 똑같은 숲인데 전혀 다른 숲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에베소서는 짧은 6장으로 이루어진 서신서이지만 여러 가지 영적 숲이 들어 있는 진리의 보고와 같은 서신서입니다. 여기에는 구원의 신령한 복이라는 숲이 있고 그 복을 받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라는 숲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숲들을 아우르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더 크고 울창한 숲도 있습니다. 이것들을 그냥 보면 구원과 교회의 이야기구나 정도로 피상적으로 볼 수 있지만, 사도바울이 해설하는 이 숲 속에 있는 다양한 내용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생명과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을 실행해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서 이 숲을 보고 듣고 이해하면 이 놀라운 숲 속의 풍경에 대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도로부터 안내받고 있는 지점이 어디죠?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숲 속에 들어 있는 세 개의 골짜기 중 두 번째의 골짜기인 성자 하나님의 골짜기입니다. 이 골짜기에 들어있는 내용은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죄 사함과 속량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속량, 곧 죄 사함이 단순히 죄인들의 구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통일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택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서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키고 통일되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으로 알려주신 이 비밀을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고 누리고 있고 전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여기 비밀로 번역된 단어는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로 ‘공표된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3:2절에도 나오고 3:4절, 3:9절에도 나오는 단어인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을 포함하는 구원의 비밀로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비밀이라고 할 때는 가르쳐주지 않아서 모르는 시크릿입니다. 그런데 뮤스테리온은 가르쳐주고 알려주었는데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공표되었는데 모릅니다. 그래서 정확히 번역하면 신비가 맞습니다. 미스테리입니다. 뮤스테리온, 미스테리입니다.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의 통치 안에 회복시키는 이것은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알려주어도 그것이 구원인지, 회복인지, 하나님의 나라인지 잘 모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이게 구원이야! 이런 늬앙스입니다. 심지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통일시키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비밀입니다. 왜 비밀입니까?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그분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소유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에게 맡기셔서 이 나라를 관리하고 다스리게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삼위 하나님의 복된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이 나라의 왕이 되려고 반역을 꾀했고 이 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사망과 저주아래 있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늘도 탄식하고 땅의 모든 것도 허무한데 굴복하면서 썩어짐의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원래, 개도 저렇게 죽어서 보신탕이 될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고요. 돼지도 그냥 삼겹살로 팔려나가고.....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왜 이 자연이 공해로 신음합니까? 왜 물이 썩어가고 풀들이 죽어가며 나무들이 신음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과 질병과 아픔이 왔고 죄 때문에 모든 피조물도 함께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인생은 죄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제한 된 자원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힘으로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는 나라를 꿈꿉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먹고 마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입니다. 인간이 꿈꾸고 기대하는 구원자는 더 잘 먹게 해주고 더 잘 마시게 해주는 구원자입니다. 인간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도 그런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죄에 빠진 피조세계를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보다 더 완전하고 더 거룩하게 회복하십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죄가 남아 있는 한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이 우주는 원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없애려면 누구를 없애야 합니까? 죄지은 인간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다 버리지 않으시고 그 중에 어떤 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의 피로 값 주고 구속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을 죄와는 상관없이, 죄를 이기며 사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교회를 통해 이 구원의 비밀을 전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사람의 수가 찰 때, 우주에 대 변혁을 일으키시고, 온 우주를 새롭게 통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0절)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영광스러운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구원이 죄에 빠진 인간들의 눈에는 구원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먹고 마시는 나라를 꿈꾸는 인간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밀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로 이 구원이 와 있는데도 비밀입니다. 미스테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먹고 마시는 나라의 차원에서는 이 나라가 전혀 하나님의 나라 같지 않게 와 있고 구원이 전혀 구원 같지 않게 진행되어도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이 구원의 비밀을 이해하고  이 나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비밀을 아는 자로서 이 나라에 헌신해서 거룩한 삶을 진행시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밀의 중심에 신자의 거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는 하나님의 비밀이 역사 속에서 경륜으로 풀려지는 것은 택한 자들이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방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찬송이 되는 방식으로입니다(11-12절). 세계평화를 외치기 이전에 평안을 깨트리는 내 속의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거룩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원수 사랑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내가 하나님의 소유되며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부어달라고 이어지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마음눈을 밝혀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택한 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 그의 피로 구속하고 죄를 사했는지 그 부르심의 소망을 알아야 한다고 기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얼마나 큰 능력과 힘의 위력으로 이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기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는 어찌하든지 이 하나님의 계획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택함 받은 성도를 유혹해서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불화하게 만들고 죄짓게 만들어서, 우리를 그 죄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새로운 지각, 그리스도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지 않으면 예수 믿으면서도 내가 왜 다르게 살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남들이 사는 것 따라 살기에 급급하게 됩니다. 남들이 공부하니까 나도 공부하고, 남들이 취직하니까 나도 취직하고, 남들이 결혼하니까 나도 결혼하고, 남들이 데모하면 나도 데모하고, 남들이........ 여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목표, 거룩을 향한 열망, 의에 주리고 목마를 심령, 이런 것이 생기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도 쉽게 다시 더러운 육신의 생활로 쉽게 돌아가게 됩니까? 이 새로운 지각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새로운 지각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도 매일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구원의 기쁨과 목적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지각을 가지고 구원의 비밀을 아는 자답게 남은 생애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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