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월,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사랑이 뭐냐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피곤할 때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 여러분은 이 대답을 한 사람이 몇 살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테리라는 4살짜리 아이가 한 대답입니다. 정말 얘가 4살 맞는가요? 엄마가 아빠를 위해 커피를 끓인 후 맛이 괜찮은지 먼저 한 모금 맛을 보는 것이 사랑이라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7살의 데니입니다. 또 어떤 대답은 셔츠가 예쁘다고 말을 했을 때 매일 그 셔츠만 입고 오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몇 살짜리 대답일까요? 역시 7살의 여자아이 노엘의 대답입니다.

똑같은 질문을 40-50대에게 조금 다른 각도로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가 뭐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아마도 40-50대는 조금은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보다 현실적으로 확실한 그 무엇을 요구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아파트를 내 이름으로 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40-50대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셔츠를 매일 입고 오는 것이나 나에게 줄 커피를 미리 맛보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차 이런 것 아닐까요? 50대의 사람들은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셔츠라도 매일 입고 오면 화를 낼걸요. 그런 것 보다는 해외여행 티켓 같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혜택과 유익이 주어져야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뭐냐고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말고 보다 더 확실한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혜택과 유익을 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예수 믿는 것을 그런 식으로 배웠고 그런 식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을 지금보다 더 좋은 형편과 환경을 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도 그런 식으로 기대하는데 사실 이것은 복음이 왜곡될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맨 마지막 성경이 말라기인데 말1:2-3절을 보면 그때의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식으로 오해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도 그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반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면서 에서가 야곱의 형이지만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혜택이 아니라 선택과 구원의 차원에서 설명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죄 성을 가진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사랑도 늘 우리의 현실에 이익이 되고 힘을 보태주는 경제적 물질적 차원으로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물질적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 자신을 전부 주시는 구원을 하나님 사랑의 증거로 제시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할 때는 단지 우리의 삶에 조금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전부 주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인물과 인생이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야곱을 택하시어 그를 불러 하나님의 모든 것을 주시면서 그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하나님의 사람 만들어 가시는 구원의 여정을 펼쳐 가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야곱의 일생을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좋아하는 돈을 주고 아파트를 주고 건강을 주고 차를 주는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전부 주시는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 생명과 의로 옮겨지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희생과 열심과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도무지 사랑할 이유도 없고 자격도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고 그의 피로 값을 치루고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 삼고 기업 삼아 그의 영광의 찬송 만들어 가십니다. 이것이 야곱이 대표하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그냥 뚝딱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부를 주는 가장 귀한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을 오늘 에베소서 본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3-14절을 다시 볼까요?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진짜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복음을 믿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데 그 믿음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 말씀이 구원의 복음으로 믿어지게 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듣지만 그 진리를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미련하고 가장 어리석게 들리는 내용이어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증거가 아파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매일 똑같은 셔츠를 입고 와서는 이것이 너를 사랑하는 나의 사랑이라고 말하면 고맙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세 번째 골짜기인 성령의 골짜기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 죄의 값을 묻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대신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하나님과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영광이 되는 소유와 기업이 되어 가도록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믿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하나님 사랑의 증거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인침이며 보증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인 쳤다고 하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인데 당시 가축이나 노예가 자신의 소유라는 표식을 할 때 불에 달군 쇠도장을 찍어서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만인 앞에서 이것은 나의 소유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나의 이 소유를 지키겠다는 확실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천사와 만유 앞에서 이 사람은 나의 사람이며 나의 소유며 나의 기업이라고 도장을 찍어서 표시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믿게 하신 믿음입니다.

성령의 인침은 혹자들의 주장처럼 예수 믿고 그 후에 따로 동반되는 어떤 강렬한 종교적인 체험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여 믿는 것이 성령의 인침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복음을 믿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장차 우리가 받아 누릴 영광스러운 기업의 보증이 됩니다. 보증이란 말은 ‘아라본’으로 계약금, 선금이란 뜻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몸의 구속, 장차 받을 썩지 않고 쇠하지 않을 하늘의 기업,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모든 영광과 생명과 안식,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한 나의 것이 된다는 보증이 바로 지금 나의 믿음입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스러운 몸의 속량과 모든 하늘 기업의 확실한 선금이며 계약금이며 보증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가장 큰 증거가 무엇입니까? 다른 어떤 신비한 체험이 없고 나에게 돈이 생기고 건강이 생기고 유명해지고 과거보다 더 나은 형편이 안 되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가장 크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성령의 도장이며 보증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믿음이며 하나님이 그의 모든 능력으로 우리에게 열매 맺게 하신 복된 믿음입니다. 1:19절을 보십시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그냥 믿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믿어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부를 쏟아 부으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신 결과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지혜와 힘이 다 동원된 것이 오늘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 힘의 위력과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우리를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말씀을 맺을까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로 고단하고 힘들어 어려울 때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믿음,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믿는 이 믿음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이런 열심과 사랑을 쏟아 붓지 않습니다. 에서에게는 이런 사랑과 열심을 쏟아 붓지 않습니다.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야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자녀들에게만 이 사랑과 이 열심을 쏟아 부으십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허락되는 성령의 도장이며 구속의 날까지 이르는 불변의 확인이며 보증이고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은 성도는 자신의 조건과 형편과 상관없이 당당함과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면서 그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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