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1.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가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 세운 교회이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째 교회이다(주후 51년경).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네압볼리에 도착했는데, 거기에서 전도하지 않고 빌립보 지역으로 이동했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지역 중심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지역 첫 성이 빌립보였다.

빌립보는 로마 군인의 도시인데, 회당이 없을 정도로 유대인이 거주하지 않았다.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장소를 찾아 강가로 갔는데, 거기에 자주장사 루디아와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루디아와 그녀의 가족이 세례를 받고, 루디아의 집을 근거로 전도활동을 전개했다.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귀신들린 여종인 바울을 방해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버렸다. 여종의 주인은 경제적 피해를 받았는데 소란죄로 고발했다. 이방인인 바울은 무고하게 참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빌립보 감옥에서 극적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아침에 바울은 자신이 로마인임을 밝히고 당당하게 감옥나와 데살로니가로 이동했다(참고 사도행전 16장).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회당이 없는 곳이었고, 여자가 첫 세례자였다. 그리고 도저히 복음에 접근할 수 없는 간수가 예수를 믿었다. 빌립보 교회는 기적적으로 세워졌지만, 힘든 교회였다. 그러나 복음의 확신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바울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후원한 대표적인 교회이었다.

2.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디모데와 함께 빌립보에 편지를 한다. 바울이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는 로마 감옥에서 썼다(빌 1:13). 빌립보서는 바울 사도가 쓴 서신 중에서 밝고 기쁨에 찬 편지이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에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사랑과 성령이 충만한 상황에서도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빌립보에 성도, 감독, 집사에게 편지를 했다(빌 1:1). 성경에 집사는 현재 한국 교회에 있는 집사와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은 같지만, 교회 안에서 위치는 다르다. 장로교(개신교) 집사는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새롭게 제정된 교회 질서이다. 종교개혁에서 집사는 성직자에서 평신도로 구별시켰다.

3.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다(빌 1:2). 은혜와 평강의 기원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삼위일체 축복이다(참고. 민 6:24-27). 바울은 축복으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4. 바울은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이관되었다(행 28장). 로마 군사들은 가이사에게 항소한 바울을 가택 연금(軟禁)시켜 통제되었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서 기뻐하라고 확신으로 외치고 있다. 바울에게 있는 기쁨은 주 예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감옥과 연금이 억제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복음의 기쁨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누릴 수 있도록 오히려 격려하며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6.25 동란에서 순교자가 많은데, 의외로 목사는 적다고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목사들이 많은 고초를 당했는데, 6.25에서는 목사들이 순교를 적게 했다. 목사는 언제나 가장 큰 고난에서 기쁨과 확신으로 성도와 교회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5. 빌립보 성도에게 기도의 내용을 밝히는 바울.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3-5절). 바울은 13편의 편지(혹은 히브리서까지 포함하면 14권)를 썼는데, 감사와 기쁨이 가장 잘 표현한 곳은 빌립보서이다. 가장 격한 감정 표현은 갈라디아서이고, 문제가 가장 많은 교회는 고린도 교회(고린도전서와 후서)이다. 바울 사도는 매우 힘든 역경 속에서 교회를 세웠고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편지를 써서 교회를 유지했다. 사도 바울은 자시이 개척한 교회뿐만 아니라 개척하지 않는 교회에도 주의 사랑으로 기도하며 돌봤다(골로새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첫날부터 변함없이 유지하며, 사도의 가르침에 서 있는 것을 기뻐했다. 그래서 바울은 확신과 기쁨으로 간구(懇求, pray)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유지될 수 있기를 간구했다(빌 1:6).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사와 기쁨이 넘쳤는데, 그것은 빌립보 성도들이 처음 복음을 듣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 복음 안에서 살아가며 교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갈라디아 교회도, 고린도 교회도, 많은 교회가 처음 사도에게 들었던 복음에서 벗어날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빌립보 교회는 달랐다. 이것은 사도의 마음에 이들을 생각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이유였다.

또한 사도는 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 그 일을 마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빌립보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지만, 사도의 복음 사역에 기도와 재정 지원으로 참여했던 교회이다(7절, 고후 8:1~5). 필자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진 가장 큰 제목을 교회에 준 것은 우리가 세운 교회가 주께서 오신 날에 거룩한 신부로 존재해서 맞이하는 것이다. 교회 사역자의 경륜이 얼마나 크고 웅대한 것인가? 수백억 원으로 건축한 예배당들이 이단에게 매각되는 상황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

6.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우들을 사모하는 바울.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건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빌 1:7).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우들을 사모한다고 고백한다(8절).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향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8절). 바울의 심정을 아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늘 기도했다(빌 1:9-11).

바울은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이 풍성하게 되도록 기도 한다(9절,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with knowledge and all discernment-ESV). 부족한 지식과 총명은 미숙한 사랑이여서 교회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영적 지혜에서 비롯된 총명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도는 지식과 총명에 근거하여 충만해질 사랑을 구한다(참고. 엡 3:14-19).

사도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분별력을 주시기를 구한다(10절). 분별력을 요구하는 것은 참과 거짓이 교회 안에 있다는 위험 경고이다. 교회는 영(靈)과 도덕(道德), 윤리(倫理)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서신에서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말하는 것인데, 모두를 포함해서 분별해야 한다. 분별력은 무엇이 선(善)인지, 악(惡)인지 구분(區分)하는 것이며, 무엇이 지극히 선한지를 알고 그것을 구별(區別)하여 행하는 지혜다. 바르게 분별할 수 있도록 교회는 거룩하며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주의 령(靈)께서 바울에게 편지를 쓰도록 하셨고 기도하도록 하셨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바라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11절). 자기 의의 열매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를 말한다. 이렇게 될 때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이 기도야말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이고 간구할 기도이다.

7. 바울의 기쁨: 예수 이름이 전파됨 - 교회가 든든함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갇힌 것을 계기로 경쟁 관계로 생각하던 사역자들이 기회로 생각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도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던 사역자들도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12-18절).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입성했다. 그런데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로 가려했지만 허락되지 않아 로마서를 써서 먼저 보냈고, 예루살렘을 통해서 로마에 들어갔다. 어떤 교회 사역자들은 옥에 갇힌 바울을 놓고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바울에게 그러한 시기심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시기하고 열심히 사역하는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더욱 열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다. 어찌되었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찌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파되면 좋겠다고 기쁨의 선언을 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교회는 더욱 더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자기가 약함으로 강해지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고후 12:1-10).

8. 바울의 존재 목적: 빌립보 교우를 위한 유익

사도의 마음 속에 있는 유일한 소원과 관심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자신을 통해서 존귀하게 되는 것이었다(19-21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主)의 영광만이 존재와 사역의 목표였다. 사역자는 목표가 성취되면 기쁜 것이고 목표가 퇴보하면 슬프다. 사역의 목표를 훼방하는 세력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관제(灌祭)로 드림(빌 2:17), 신령한 산제사를 드림(롬 12:1-3)으로 표현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고전 1:18-25)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했다.

소요리문답 1문은 인간의 존재 목적에 질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함으로 답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존재 목적이 너희를 위함으로 고백했다(빌 1:24). 바울은 이미 죽음을 수 없이 경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세상을 떠남에 미련이 없을 정도였다(빌 1:23). 간혹 세상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도하다가 죽음의 고비를 수 없이 넘긴 사람이다. 복음을 전도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바울은 담대하게 빌립보 교우들에게 자기 존재 목적을 밝힌다. 자기를 밝힐 수 있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상급이다.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의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에 ‘생의 목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이 마감하여도 여한이 없다. 그럼에도 생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의 주관자께서 자신의 기관인 교회를 위해서 바울의 생명을 거두지 않으신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살고 있다고 담대하게 고백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이 자기 존재목적이다(27절).

복음을 위해서, 복음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일심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 교회다(27절).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교회와 전 우주를 통치하신다. 교회는 보좌와 어린양의 이름이 존귀하도록 해야 한다.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도록 하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29절). 사도는 자기가 복음을 위한 영적전투는 사도만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함께 싸워야 할 싸움임을 밝힌다(30절). 빌립보 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로서 이 싸움을 계속해서 감당해주기를 격려한다. 믿음이 성숙할수록 영적전투는 더욱 교묘하고 치열해진다. 영적전투는 결코 끝이 없다. 이 싸움은 주의 재림으로 끝나기 때문에, 성도는 싸움의 끝인 재림을 사모한다. 그래서 마라나타를 고백하며 인내하며 복음을 정진한다.

9.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는가? 심장에서 피를 공급한다. 그리스도의 심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피를 공급한다. 바울이 가진 그리스도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피를 공급한다. 심장이 박동해서 피를 순환시키면 생명은 유지된다. 피가 돌면 생명은 유지된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는 사람은 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 그 피가 흐르는 복음의 사람이 사역자이고 성도이다. 그래서 사역자나 성도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한 형제, 하나이다.

복음만 있으면 만족하고 기쁘다. 빌립보 교회가 그 어려운 환경에서 이 복음으로 기뻐하며 바울의 사역을 지원했다. 왜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울을 지원했을까? 그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과 기쁨 그리고 사랑이다. 21세기인 지금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기뻐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 복음은 천상에게 계신 주 예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거저주시는 풍성한 은혜이다. 빌립보 교회가 확신을 갖고 바울을 지원했던 것처럼 지원할 수 있고, 감옥에서 자신을 시기한 동역자들의 억지춘양에도 바울처럼 기뻐할 수 있다.

10. “전능하신 하나님, 주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의 지체로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교회를 세운 복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시험과 유혹이 있고, 특별히 동역자에게도 갖는 시험도 있습니다. 나의 분깃을 알고 자족하며 믿음의 정진을 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의 복음으로 힘을 얻고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모두가 복음이 증진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주께서 영광을 받으면 주의 종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사나 죽으나 주와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를 앎에 지각과 분별이 깊고 충만케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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