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3~51 말씀을 중심으로

 

닉 부이치치 신드롬이 지구촌에 희망의 불꽃을 피워 많은 분들에게 큰 기쁨과 도전을 주었다.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가장 비참하고, 어둠속에서 죽는 날만 가지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머리와 몸통밖에 없지만 그는 어떤 정상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밝게 더 기쁘게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 친구들로부터 “외계인”, “괴물”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힘들고 지쳐 죽고 싶을 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를 이렇게 만드신 데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며 언젠가는 그 전모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아들을 위로했다.

틈나는 대로 “너는 정상적인 아이들과 같이 놀아야 해, 너는 몇 가지 사소한 신체 조직이 없을 뿐이야, 그게 전부야”라고 칭찬하며 위로해주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어머니의 칭찬과 사랑과 격려가 그를 오늘날 세계적인 희망 전도사로 만들어준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두 안경을 끼고 살게 된다. 하나는 칭찬의 안경이다. 칭찬의 안경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인정하고 힘을 준다. 결국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얻게 된다. 또 하나는 비판의 안경이다. 비판의 안경을 쓰고 사람을 보게 되면,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사람이 떨어져나간다. 나중에는 외로운 사람이 되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우리 모두를 창조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마귀의 형상대로 우리를 빚으신 것이 아다. 하나님의 인격대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걸 작품인 사람에게 3가지 복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라는 복은 한 마디로 성장하라는 복이다. 성장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믿음이 성장하고, 일터가 복을 받고, 가정이 세워지고, 민족이 번영하는 것은 당연히 주어진 복이다.

“땅을 정복하라”는 복을 주셨다. 모든 어둠의 영들을 정복해야 한다.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어둠, 가정과 교회와 일터와 민족을 어둡게하는 영이 있다면 물리쳐야 한다. 어둠의 영들을 정복해야 한다. 복음의 거룩한 비전으로 땅끝을 정복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다스리라“는 복이다. 이것은 리더가 되라는 것이다.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권위적인 리더인가? 아니면 섬기는 리더인가? 서번트 리더가 되라는 것이다. 섬기는 종, 헌신하는 종이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나서 복을 주셨는데, 비판과 정죄는 없고 오직 잘되어야 한다는 희망적인 칭찬과 격려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도 칭찬의 안경을 끼고 나다나엘을 바라본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그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친구 나다나엘을 찾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사람을 우리가 만났는데 그분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이다. 나다나엘은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한마디로 공격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46절).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서 말한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라고 칭찬을 했다. 편견으로 가득차 있던 나다나엘을 예수님은 칭찬하셨다.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나다나엘은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라고 고백을 했다.

그에게 관점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생각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왜 이렇게 금방 사람이 변했는가? 이유는 하나이다. 칭찬이다. 칭찬이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다. 칭찬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칭찬은 관계를 이어가는 위대한 힘이 있다. 칭찬은 관계를 부드럽게 한다. 칭찬은 관계를 따뜻하게 한다.

편견으로 가득차 있던 나다나엘을 예수님은 칭찬이란 방법을 사용하여 제자를 얻었다. 나다나엘을 예수님의 12 제자중에 “바돌로매”와 동일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칭찬은 사람을 얻는다.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넣어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동기 유발을 할 수 있는가?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만족책과 유인책이다. 만족책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했을 때 돈으로 보상을 하는 것이다. 한 두 번은 동기가 되지만 계속적으로 반복할 경우 더 이상 동기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유인책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했을 때,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칭찬과 격려와 감사와 인정을 할 경우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일으킨다.

칭찬이란 위대한 단어속에 우리의 믿음을 실어 연약한 사람들을 세우고, 고난속에 지쳐있는 영혼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주고, 희망을 잃고 낙망함속에 있는 분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에 사용되어지는 위대한 인생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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