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섭 장로님을 추모하면서

지갑섭 장로님은 지난 5월 13일에 101세를 사시다가 소천되시었다.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서 자녀들은 그 유지를 받들어 가족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마치었다. 이제야 그 소식을 듣게 되어 늦게마나 지갑섭 장로님이 가신 길을 축복하고 추모한다.  

지갑섭 장로님은 생전에 제일은행 상무이사로 정년 퇴임하신 후 전문경영인 생활을 하시다가 은퇴하셨다. 지갑섭 장로님의 아내분은 천호동에 땅 1,000평을 기증하셔서 함영고등공민학교를 동창들과 함께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계시다가 후에 한국신학대학으로 넘기셔서 지금은 한국신학대학교 부속고등학교가 되었다. 지갑섭 장로님은 강원룡 목사가 담임했던 시절에 경동교회(기장, 장충동 소재)에서 장로로 교회를 섬기다가, 뜻한 바가 있어 노명식 장로(전 경희대 사학과 교수)와 더불어 낙산교회를 설립하시어 섬기셨다. 

사진 좌측에 아들 지규철 집사(본푸른교회)와 생전의 지갑섭 장로

지갑섭 장로님은 지난 2017년 100세 생신날에는 자녀들을 앞에 놓고 팔복을 설교하셨다. 또한 책상 위에는 항상 성경책과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영어사전이 놓여 있고 애독하신다. 장로님은 아침과 저녁에 한 시간 씩 나라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지난 5월 13일 소천되신 날까지 실버타운에서 노후를 보내셨다. 등급을 받으셔서 요양사의 서비스를 받으셔도 되는데, 장로님은 '왜 나랏 돈을 축내느냐'고 혼자서 목욕하시고 자기 관리를 하셨다.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성품과 신앙의 본을 실천하시는 귀한 어른이셨다. 지 장로님이 살아계셨던 지난 2013년 97세에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언장을 남겼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종교개혁을 선언한지 500년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성장했지만, 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독버섯들이 있다. 그 독버섯은 바로 도덕적 거룩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평생 신앙인으로서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신 믿음의 대 선배의 뒤안길에서 우리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다시 찾을 수 있다. 그 농축된 삶의 지혜의 행간을 읽어가는 기쁨을 누리면 좋겠다. 

지갑섭 장로님. 97세에 자녀에게 남기시는 글을 쓰시고, 친필 싸인을 하시고 자녀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나누어 주셨다.

아래는 지난 2013년에 남기신 유언장의 전문이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의 의무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바, 믿는 바를 너희들에게 남기고 싶다. 자녀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는 나에게 어쩌면 이것이 나의 의무인 것 같다.

 

▣먼저 내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모친께서 항상 말씀 하시기를 “너는 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다”라고 하셨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을 거역한 일이 없고 항상 순종적이었으며 따라서 평생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왔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생각되며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 하나를 생각할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지금도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는 못하지만 성경에 “하나님은 사랑이다”(요1 4:8)의 말씀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상적으로 소위 진보주의자가 아니고 보수주의자이다. 혁명적인 사고보다는 점진적 진보를 선호한다. 나의 철학은 이상주의 철학이다. 현실주의에 대비되는 이상주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자인 나는 은행에 재직시에 대내, 대외적으로 은행의 제도, 기구 등에 많은 개혁을 했다. 이러한 일들도 이상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승만 박사를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며 또한 존경하며 우리 국민의 은인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분에게 공과 과가 있다. 사람에게는 공과, 영욕이 있게 마련인데 공이 더 많을 때 공을 취해야 한다. 18세기의 미국의 초대 대통력 조지 워싱턴도 영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분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19세기의 독일의 연방 정부를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통일 국가로 세운 비스마르크도 영욕이 많지만 통일 초대 대통령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너희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남기고 싶다.

(1)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희 가족과 이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명심하라. 특히 자기 회의와 좌절이 너희 인생에 닥쳤을 때 절대 그 사실을 잊지 말아라.

(2)몸의 건강 유지를 위해 힘쓰라. 육신의 건강은 축복이다. “mens sana in corpore sano”(라틴어,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내가 중학교 3학년때 일본 고승이 우리 학교에서 강연할 때에 이 말을 가르쳐 주었다. 평생 내가 명심한 말이며 오늘날 나의 장수에 도움이 된 말씀이다.

(3)좋은 습관과 버릇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평소 필요한 덕목은 세 살 경부터 가정이나 혹은 유치원에서 배운 그것이 평생의 습관과 버릇이 된다고 믿는다. 부모공경, 윗 어른 공경, 이웃에 예의 지키기, 질서 지키기, 순서 기다리기, 규칙 지키기, 이웃에 폐 까치지 않기, 남에게 혐오감 주지 않기, 해 끼치기 않기, 나와 내 주위를 청결하게 유지하기. 등등이다. 이상은 가정과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다. 속담이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는가?

(4)좋은 친구 갖기다. 믿고 의지하고 존경하는 친구를 두명 내지 세명 갖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고 그러한 친구를 갖는 것은 큰 축복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알아 보라고 하지 않는가. 나에겐 외우(畏友)와 신우(信友)가 두 명 있었다. 고인이 된 그들이지만 그분들과 교분을 가진 것이 일생의 축복으로 여긴다.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행복감이 충만하다. 일본의 문호 도꾸도미소호가 인생의 쾌(유쾌)는 쾌우(즐거운 친구)와의 쾌(유쾌) 만큼 유쾌한 것이 없다고 했다.

(5)독서를 많이 하라. 난독과 정독을 많이 하며 책을 많이 읽거라.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책의 저자의 필생의 노력과 연구와 탐구와 사색을 나는 읽기만 하면 되니 쉽다는 말이다. 그 고뇌에 찬 저작을 나는 누워서도 읽고 어떤 편안한 자세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가장 쉬운 일이다. 독서를 하는 가운데 천 년 이천 년 전 사람을 지금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의 인격을 접할 수 있고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역사책을 많이 읽도록 하고, 고전을 많이 읽어라. 철학책도 많이 읽어라. 나는 독서에 대해 내 나름의 소견을 갖고 있다. 책 10권을 읽었을 때는 10촉 전구 밑에서 사는 것이고, 책 200권을 읽었을 때는 200촉 전구 밑에서 사는 것이며, 500권을 읽었을때는 500촉 전구 밑에서 사는 것이며, 1000권 이상을 읽었을 때는 환한 대낮에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느 것이 최상의 조건인지 판단해 보아라.

비유컨대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을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 많은 산을 등반 한 사람이 금강산에 가고, 에베레스트에 가고, 킬리만자로에 갔을 때, 경탄과 경외심을 갖고 창조의 오묘함을 대할 때, 시인은 시심을 일으키고, 화가는 화심을 갖게 되며, 평범한 사람도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며 철인이 되는 것과 같이, 고전을 읽을 때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6)인생을 긍정하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라. 범사에 감사하라. 정부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생을 긍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이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의 반열에 속한다고 했다. 인간은 도덕적인 동물(moral animal)이다. 부정부패가 심한 것은 이 나라의 도덕 수준을 말하고 있다.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7)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삶을 살기 바란다. 삶의 척도란 자기가 맡은 일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 달려 있다. 영어로 직업을 calling이라고 한다. 콜링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는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직업이나 돈에 좌우되지 않고 소명의식을 갖고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으며 가치 있게 사회에 봉사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라. 내가 산다는 것의 구체적인 의미는 필생의 직업의 축적이 내 삶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8)회계를 정확히 하라. 주고받는 돈의 회계를 분명히 하고 셈을 분명히 하라. 회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어느 공동체에서나 회계 책임자는 가장 신뢰를 받는 사람이 맡게 된다. 회계가 분명할 때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9)외국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마라. 현대에 교양있는 지식인은 외국어를 두 개 이상 이해 해야 한다. 세계어로서의 영어는 기본이고 가까운 이웃 나라 또는 가장 가장 문명국의 언어를 배워라. 섹스피어가 말하기를 한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한 대륙을 발겨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중국어를 알면 13억 인구의 중국을 발견한 것이고, 일본어를 이해하면 가장 문명한 나라 중의 하나인 일본을 발견한 것과 같다. 이상이 너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다.

 

▣이제 내 개인의 숨은 얘기를 하겠다.

◐God is love란 성구가 내 일생을 구했다. 

내용인즉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장질부사를 앓았고 두달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시에 부모님은 내가 죽을 줄 알고 관을 준비하려 하셨다고 했다. 그해 가정통신부에 모든 과목이 병(丙, 성적표 ‘미’에 해당), 정(丁, 넷째, 성적표 ‘양’에 해당)인데, 유독 영독ㆍ영작ㆍ영문ㆍ영습자 네 과목 만은 갑(甲, 첫째, 성적표 ‘수’에 해당)이어서 낙제를 면했다. 유급이 되었으면 가정 형편상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다. 그러면 내 생애가 어떠했을까?

그 까닭은 이러하다. 처음 영문법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칠판에 “God is love”라고 쓰시고 학생들에게 답을 물으실 때 세사람이 손을 들었다. 첫 번째 급장은 “하나님은 사랑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고, 두 번째 학생도 비슷한 답을 했다. 세 번째 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답했다. 선생님께서는 옳은 답이라고 하면서 이곳에서 God는 명사이고, is는 술어라고 하셨고, love는 명사라고 하면서 영문법을 가르쳤다. 다음날 영독 시간에 그날 배울 문장을 내게 먼저 읽으라고 했으며, 그 이후로는 영독 시간에는 나에게 먼저 읽으라고 시키셨다. 내가 God is love를 맞힌 것이 선생님은 나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갔었고, 내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영어는 예습을 꼭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일로 해서 일생 영어에 매달릴 수 있었다.

 

◐친절한 독일 신사를 만난 사건

독일 신사를 만나 즐거운 구라파 여행을 한 사실을 얘기하고 싶다. 1983년 65세에 구라파 여행을 계획했다. 이유 중 하나는 독일 튀빙겐 대학원에서 철학 공부를 하고 있는 3녀 순희를 만나 격려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와 아내는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자식 사랑에 욕심 많은 집사람이 큰 짐을 준비했다. 여행길은 가벼운 짐이 원칙인데 자식 때문에 가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목적지는 런던이었는데 비행기가 급유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40분 머무는 동안 큰 짐을 순희에게 부치러 비행장을 나와서 지나가는 독일 신사에게 가까운 우체국을 물었다. 그분이 일러주기를 대로로 곧장 가면 우편에 광장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우체국이 있다고 말했다. 가보니 광장은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우체국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놓칠까봐 짐을 들고 돌아왔는데, 그 독일 신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우체국을 찾지 못한 것을 보고 그분이 직접 안내해서 우체국을 찾아 짐을 붙일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독일 신사는 사라졌다. 독일 신사 덕분에 40여일간 7개국 구라파를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우리가 친절을 베푼다 해도 그 독일 신사처럼 장시간 시간을 허비하면서 친절을 베푸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독일 신사를 통하여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뼈저린 경험을 했다. 또 이 사건이 만년의 즐거운 회상을 안겨 주고 있다.

튀빙겐에 있는 동안 교외를 산택 할 때 만나는 독일인들이 목례와 미소를 보낼 때, 이러한 착한 마음을 가진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나치 정권 하에 600만의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할 수 있었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프랑스 지성을 대표한다고 하는 무신론적 실존 철학자 싸르트르가 공산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스탈린이 인정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김일성의 6.25 남침을 끝까지 이승만의 북침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잠언 1장 7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하나님이 없는 지식과 지성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생각하는 이즈음이다.

           2013년 5원 19일 아버지 지갑섭

 

진 좌측부터 아들 지규철 집사(본푸른교회), 손자 지창훈, 증손자, 지갑섭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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