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KAPC 뉴욕동노회장, 총신대 및 합신대학원 졸업

KAPC(미국한인장로교회 총회) 임원과 노회장 연석회의가 일 년에 한 번씩 모인다. 미국과 캐나다와 남미 그리고 하와이 필리핀까지 교단 지역이 넓다보니 어디서 모여도 참석하기가 쉽지 않고 경비 또한 만만치 않다. 숙식은 총회에서 비행경비는 각 노회에서 부담한다. 이번에는 Mexico Cancun에서 모였다.

잘 알려진 대로 Cancun은 휴양지다. Cancun으로 휴가를 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교단 임원과 노회장 연석회의를 Cancun에서 모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놀러 가는구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러 가는 것은 아니고 그곳에서 회의를 한다. 그리고 기왕에 유명 휴양지를 갔으니 쉬기도 하고 유적지 탐방도 한다. 더 그럴듯한 설명은 미국 내에서 모이는 것보다 경비가 절약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미국 내에서 모이는 것보다 Cancun에서 모이는 것이 유리하다.

전에는 총회장이 목회하는 지역에서 모였는데, 이 번에 그 전례를 따랐다면 알래스카에서 모여야 했는데, 그러면 경비가 훨씬 많이 들었을 게다. 회의 장소를 Cancun으로 정한 것이 실제적으로 이익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겠는가, 자두 밭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하고 참외 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아야 하지만 경비가 모자라 임원들이 경비 출혈까지 한 마당에 모두가 혜량 했으면 좋겠다.

나 개인으로서는 이번 모임 참석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금년에는 여행을 많이 한 탓에 좀 지쳐 있기도 하고 장소가 Cancun이라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지난 여름에는 20년 만에 한국을 다녀왔는데, 한국 가기 직전까지 그 여행이 그렇게 부담스러웠다. 막상 닥치니까 크게 힘 드는 것은 아니었는데 전과는 달리 정해진 일들을 앞두고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이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은 부담스러운 일을 앞두고 버릇처럼 하는 혼잣말이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렇게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Cancun 여행도 이 주간이 지나면 지나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시쳇말로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10월 23일 아침, 식은 밥 비벼서 허겁지겁 먹으며 가방 챙기고, 사위 라이언이 라이드 해 주기로 했는데 아침 7시45분이 되어도 기척이 없기에 직접가서 불러 깨워, 나 멀리 가야 하니까 좀 서두르느라 재촉하니 서둘러 준비했다. 그러나 8시 정각엔 출발해야 하는데 8시 15분이 넘어서 출발했다.

꼼꼼히 챙긴다고 했는데도 집에서 출발한 후 선글라스를 잊고 못 챙긴 것 알게 되었다. Cancun에는 햇빛이 강렬할 텐데... 젠장, 할 수 없지 뭐... 젠장은 목사에겐 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데 혼자서는 가끔씩 사용하기도 한다. 내 딴은 잘 한다고 했는데 실수하거나 능력이 미치지 않아 속상할 때 혼잣말로... ㅎㅎㅎ ㅋㅋ.

시간이 늦었지만 애써 태연한 체 하는데 라이언이 늦은 거 눈치채고 차를 빨리 몰면서, 오전 9시까진 공항에 도착할거라고 날 안심시킨다. 나도 9시에 도착하면 충분하지 라고 사위를 안심시켰다. 손자 루카스 유치원 데려다 주고 아이폰 GPS가 가르쳐 주는 덜 막히는 길 따라 달려서 오전 9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정신 없이 서두르느라 과속으로 초조해 하며 조바심에 긴장하여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되면 안 되는데, 문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유 없이 허둥대며 사는 삶에 신앙은 어떻게 작동할까?

공항에 들어서며 전화기를 꺼내어 Mobile Boarding Pass 찾아서 줄을 찾고 있는데 같은 모임에 가는 이웃 교회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뉴욕에서 가는 어떤 목사님이라도 만날 것이라 기대했는데 동행을 만나서 조금은 든든하였다. 낯선 길에 아는 동행을 만난다는 것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확신하는 어떤 일이라면 동의 해 주는 이 없어도 굳건해야 하건만 동의 해 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힘이 되고 용기가 생기는 걸 보면 인간은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check in line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가방과 소지품을 모두 검사대 위에 올려놓는다. 물론 신발도 벗고 허리띠도 풀고 검사대에 들어서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검사관이 됐다는 사인을 하면 패스한 거다. 남녀노소 누구나 소지품을 검사 받고 손을 들고 온 몸을, 비록 기계에 의한 것이지만 검사를 받는다. 기분이 묘하다. 어딘가에 VIP가 검사 없이 통과하는 입구도 있겠지만 체크인 라인에 줄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없다. 아마도 천국 입성 때도 이런 비슷한 곳을 통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유치하고 순진한 생각이 들어 묘한 기분이라는 거다. 체크인을 통과하고 그 목사님 부부와는 헤어졌다. 게이트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마 아침을 안 먹고 와서 간단히 해결하고 올려는 가보다.

나는 혼자 게이트로 가서 확인하고 커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더워서 화장실 가서 내복과 윗 양복 벗어 가방에 넣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느닷없이 안내방송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데스크에 갔더니 패스포트 확인하고 됐다고 한다... 뭐야, 왜 나만?? 다 과속하는데 혼자 과속 티켓 먹는 경우처럼, 다 과속하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 했더니, 폴리스 왈 ‘낚시 해 보셨나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낚시 안 해본 사람 어디 있냐고 했더니 낚시 해 본 분이 그런 말 하느냐며, 낚시에 걸리는 놈만 잡지 어떻게 다 잡느냐고 했단다. 보딩 패스 살펴보니 C그룹이다. 아직도 종이로 된 보딩 패스표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 난 지난여름 한국 다녀올 때부터 모빌 보딩 패스를 활용한다. 컴퓨터 사용한지 25년도 넘었는데 이런 편리 활용하는 것쯤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요긴하고 편리한 것 많은데 굳이 활용 안 하는 것으로 어쭙잖게 자존심 세우는 이들이 있는데, 목회 영역에서도 그런 자존심 세우는 분들이 있다. 높아서 못 따는 포도를 가리키며 ‘저 포도는 시어!’라고 했다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변명이 그런 심리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많지 않아 A, B, C 그룹을 연달아 불렀다. D그룹까지 다 탔는데 조금 전 만나던 목사님 부부가 탑승하는 걸 못 봤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미 나 모르는 사이에 탑승하여 어느 좌석에 앉아 있는 거겠지. 비행기 타는 중 아내가 잘 탔느냐고 전화를 했다.

참, 전화 오는 타이밍에도 머피의 법칙 작용이나 하는 듯..., 가방 하나 끌고, 다른 하나는 메고, 전화기 보딩 패스 켜고, 패스포트 펼쳐 들고, 거기다 커피 컵까지 잡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 받을 형편 아니라서 무시할까 생각하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전화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화 받는 것도 상당한 수준의 인격 수양이 필요하다. 웬만하면, ‘나 지금 전화 받을 수 없어!’라고 하던지, ‘이따 다시 전환하자’고 할 수도 있는데 여유 있게 그리고 나이스 하게 전화 받는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며 좌석 찾아 앉았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는 좌석 창가 자리인데 중간과 입구 쪽 두 자리가 비어 있더니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참 후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살펴보니 빈자리가 많았다. 빈자리가 없을 땐 더 피곤한 것 같이 느끼며 눕고 싶은데 빈자리 많으니까 눕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옛말에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무엇에 대한 불만과 욕망이라는 것도 상대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잠시 기다리다 11시 11분에 이륙 했다. 이륙을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줄을 서서 조금씩 출발선에 다가가고 있다. 내가 탄 바로 앞 비행기는 중국 화물기인데 유난히 동체가 크고 무거워 보였다. 저런 비행기가 어떻게 이륙할까 싶다. 무거우니만큼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는 게 다른 비행기보다 느리고 무거워 보였지만 역시 이륙하여 하늘을 난다. 비행기니까.

비행기는 날아야 비행기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날아서 비행기가 아니라 비행기라서 나는 거다. 비행기가 아닌데 어찌 날 수 있겠는가. 실존이 본질을 결정 하는 게 아니다. 본질로부터 실존이 나온다. 하지만 실존주의는 그 순서를 바꿔 생각한다. 비행기 안은 선선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추워졌다. 내복 괜히 벗었다. 배도 좀 고프고... 점심은 주겠지 국제선인데... 언제 점심 주려나. 시간이 지나자 배는 더 고파오고, 먹을 거 좀 챙겨 올걸, 평소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미숫가루도 꺼내놓고 오다니 바보같이... 누구나 자신을 뒤돌아보면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생각이고 바보 같이 살았음을 애써 감추려는 것일 뿐 죄인이 어찌 후회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스튜어디스가 Mexico 입국 시 제출할 종이를 작성하라며 나누어 주었다. 신상에 관한 모든 것, 여행 목적, 소지품 등 질문에 대답하고 체크했다. 여행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는 그냥 비즈니스 란에 체크했다. 기타 란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질문 받으면 길게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려고 비즈니스라 했다. 교단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일종의 비즈니스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법과 규정을 어긴 사람이라면 이런 종이 한 장 작성하는 데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양심이 괴로울 거다.

늘 인생을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없지 않을 텐데 예수 믿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능력이 되어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지 않는 것도 덤으로 누리는 복이라 생각하며 감사한다. 나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도 나의 능력이 아니고 은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은혜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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