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들이 태어 난지 72일 만에 처음으로 대학병원의 응급실을 찾았고 네 번의 재발로 인해서 13개월 때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장이 꼬이는 병으로 재발은 극히 드문 경우인데 네 번씩이나 재발해서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만 아픈 것이 아니고  엄마도 함께 아팠고 산후 우울증까지 겪었다. 세 아이를 돌보며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신생아의 병간호를 하고 자신의 병 치료까지 감당하든 아내는 지쳐서 있었고 우울증을 겪었다. 아내는 저녁때면 되면 괜히 겁이 나고 불안해서 혼자 있는 것이 싫었고  작은 몸에서는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보기에 안스러울 정도로 변해 있었으며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았던 아파트 아래층의 젊은 엄마는 교회를 나가자면서 매주 주보를 우리 집에 주고 갔다.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전해 준 것으로 기억 한다.  그러나 나에게 제일 적극적으로 전도한 사람은 우리 사무실의 미스 김이다.  그 당시에 미스 김은 풍납동의 어느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를 했다.  토요일이면 교회에도 전화 하고 아이들과도 통화를 하면서 회사 일을 했다. 그 미스 김이 나보고 날마다 교회를 나가라고 하면서 전도를 했다. 자식을 통해서 부모를 부르고 있으니 빨리 교회를 나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치료가 된다고 할 때에 나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미스김한테 구박을 했다. 특히 내가 미스김에게  정이 안간 이유는 가끔씩 금식 기도를 했다. 

금식 기간 중에 사무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에 식사 시간이 되면 배달된 음식을 나 혼자서 먹기가 너무 불편 했다.  언제인가는 저녁에 회사의 회식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빠지면 안 된다고 하니까 퇴근 후의 회식에 참석해서는 맛있게 고기를 구어 먹는 직원들 옆에서 몇 시간동안 물만 마시면서 버티는 것을 보면서 진짜로 독하다고 생각 했다. 그런 모습을 한번 보여주니까 다음부터는 금식기간 이라고 하면 직원 회식에 빠지도록 해 주었다. 그런 모습들이 내가 보기에는 무척 독한 여자로 보였고 미스김을 자꾸만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미스김은 시간만 되면 나보고 빨리 교회로 나가라고 전도를 했다. 어느 때는 내 이름을 놓고 금식 기도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한 나에게 전도하면서 기도 하신분이 또 있다. 청계천에서 봉제업을 하시든 사장님 이었는데 몇 년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장로님이 되셨다. 그 사장님은 항상 온화 하셨고 대화 하는 것을 즐기셨으며 우리 가족의 아파하는 것을 보시고는 항상 기도 하겠노라고 하시면서 설교와 간증 테잎도 몇 번 주셨다.  나도 그분이 좋아서 섬유 회사를 퇴직한 이후에도 인사하러 몇 번 찾아 갔었다.

그러나 나는 미스김에게  쌀쌀맞게 거절 하고 빈정댔지만 한 가지 좋은 것도 있었다. 가수 최 안순씨(지금은 목사 사모님)가 부른 달리다굼 이란 찬양이었다. 미스김은 사무실에 혼자 있고 조용할 때면 카셋트에서 그 곡을 자주 들었다. 나도 내용은 잘 모르지만 곡이 좋았고 따라 부르기 시작 했다. 이상하게 그 노래만 들으면 복잡한 마음들이 평안해 지고 기분도 밝아졌다. 나중에는 흥얼거리면서 따라 부르던 나는 어느 순간에 그 곡을 다 외우게 되었다. 소녀야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나를 전도한 미스김은 내가 교회 나가기 전에 회사를 그만 두었지만 그 미스 김의 송별식을 하는 날 저녁에 나는 큰 죄를 짓고 다음 날 아침에 세상의 모든 쾌락을 끊고 교회를 나가기 시작 했다. 결국 미스김의 퇴직 선물로 나는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고 미스 김은 오랜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그 후로 얼마 지난 후에 미스김이 연락이 되었을 때에 우리가정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 한다니까 자기의 기도 응답이라면서 너무 좋아 했다.

나와 우리 가족의 구원을 놓고 기도 했던 미스김과 거래처 사장님이 지금은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은 나를 잊을 수 도 있겠지만 나는 그 분 들을 평생 잊을 수 가 없다.

내가 가끔 교회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 하면서 지치고 힘 들 때면 그 두 분을 생각 하면서 나의 제자 어느 누구 중 한 명이라도 그들이 성장한 후에 나를 평생 잊지 못 할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으면 나는 보람이요 주님께는 큰 영광이다 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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