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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목사의 가슴 아픈 날미수습자 양승진선생ㆍ남현철학생ㆍ박영인학생의 빈소를 찾아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떡과 은행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우리교회는 매년 늦가을에 은행을 턴다. 수십 년 전 원로장로님이 심어놓으신 은행나무 한 그루를 털면 전교인 가정에 작은 비닐 팩에 담아 하나씩 나누어줄만한 양이 된다. 오늘 점심은 소갈비찜이 나올 정도로 풍성하였다. 1년에 한 번 있는 추수감사절이니까!

오늘 ‘분향소 찾아가는 예배’에 2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가서 예배를 드렸다. ‘감사’가 넘쳐야 할 추수감사절이지만 유족들에게 “감사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분향소예배 후에는 미수습자 양승진선생ㆍ남현철학생ㆍ박영인학생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안산제일장례식장 3층의 남현철 빈소에서는 우리 부부 바로 앞서 세월호희생자 유미지의 엄마 아빠가 조문을 하였다. 엎드려 맞절을 하다가 무너지며 “못 찾았어” 하며 통곡하는 현철이 아버지를 위로한다고 일으키려던 미지 아버지도 같이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나이가 부둥켜 안고 한참 동안을 꺼이꺼이 우는 것을 보니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였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억울함과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실감하였다. 참사를 만든 자들은 물론이고 자기 식구 일 아니라고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세월호 유족들을 폄훼하는 자들을 향한 분노가 다시 일어났다. 멀리 있다고, 내 식구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마침 수원에서 온 정종훈목사와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나 한참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권재근ㆍ혁규부자의 장례식장에 갈까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딸을 대동하여 다녀왔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고 더구나 내가 사는 안산 사람도 아니고 우리 교인도 아니지만, 다녀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서울 어느 감리교회에 다니던 권재근씨는 제주도로 이사가는 날 새벽에도 기도회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교회가 (동생과 조카를 찾겠다면서 팽목항과 목포신항에 3년 넘도록 있었던)권오복씨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터라 나라도 대신 미안하다는 마음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솔직히 권재근ㆍ혁규 부자의 빈소를 찾은 나의 진정한 속내는 ‘내 마음 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녀와서도 뭔가 개운치 못하다. 뭔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어린 여자아이를 우리 앞에 불쑥 데려와서는 “얘가 그 주인공 아이”라고 말하는 어느 여성의 말을 들으며 우리 셋은 충격을 받았다. 뭐 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 죽은 사람들과 남겨진 아이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또 한 번 가슴 아픈 날이었다.

박인환  bonh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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