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1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지도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의 지도력은 언제나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적대자들이 끊임없이 바울을 비방했고 그 영향을 받은 교회들이 바울의 사도 권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갈라디아 교회도 그랬지만 고린도교회 같은 경우는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특별히 고린도 후서를 써야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도 이 두 교회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는 적어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한 어린 신자들의 의심 정도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20:29-31절을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교회를 위한 당부를 하고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내가 떠난 후에 교회에 흉악하고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서 어그러진 말을 하면서 자기를 따르게 할 것이니 속지 말고 밤낮 내가 눈물로 훈계하던 말씀과 사역을 기억하면서 조심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너희들 중에도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말처럼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바울을 깎아내리기 위해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을 가지고 바울과 복음을 폄해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 교회에도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교회만큼은 아니지만 어린 신자들을 중심으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그의 영적 능력에 대한 회의와 그의 메시지에 대한 불신의 원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문맥의 흐름과 맞지 않게 3장 1절부터 갑자기 자신이 옥에 갇힌 것을 언급합니다. 사실 문맥적으로 본다면 2:22절을 마친 후 3:14절로 이어지는 것이 훨씬 매끄럽습니다. 실제로 1절에 나오는 나 바울이라는 주어는 서술해주는 동사가 15절에 가서야 무릎을 꿇고 라고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엄청난 진리를 쏟아내던 바울이 갑자기 옥에 갇힌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변명하듯이 말을 꺼내는 것은 어린 교인들이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의 아버지 같은 사도가 옥에 갇혀 있는가?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면 옥에서 나와 직접 하는 것이 사도의 능력 아닌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바울이 알고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헬라어 원문은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인 나 바울,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이렇게 조금 더 직접적입니다. 자신이 행정적으로는 네로의 죄수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죄인인데 그렇게 된 이유가 너희 이방인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헤어지고 난 뒤 에베소의 성도 드로비모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더럽혔다고 거짓 증언으로 고소했고 이 일로 바울은 잡혀서 결국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은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옥에서 나올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행26:32절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말하는 것처럼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행23:11절에서 하나님이 로마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신 말씀에 순종해서 석방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가이사에게 상소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의 투옥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힌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일꾼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따라서 되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강조합니다(2-9). 왜 감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 안에는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한 이방인을 향한 적대감과 미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방인도 유대인과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복음을 가장 대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수였고 복음의 원수였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사람이고, 예수 믿는 사람만 골라 다니면서 찾아가 그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것도 그들을 위해 감옥에 갇혀가면서 까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까? 바울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 결과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감옥 안에서 이방인이 유대인 성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은 하나님의 가족이며 시민이며 성도라고 말하는 것은 원래부터 바울이 인간애가 뛰어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바울도 다른 유대인들과 똑같이 이방인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악한 본성과 죄 성의 소유자지만 이런 바울 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니까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바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였던 바울을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고 감옥까지 가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능력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만 믿으면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사람입니다. 이방인을 개처럼 여겼던 유대인입니다. 예수 이야기만 나오면 증오심을 가지고 적대하던 사람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까지 가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경륜이 무엇입니까? ‘오이코노미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씁니다. 여기서부터 영어 이코노미가 파생되었습니다. 원래의 뜻은 경제입니다. 돈이 있다고 한꺼번에 다 쓰고 그 다음부터는 쫄쫄 굶는 식으로 사는 것은 경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잘 배분해서 다음 월급 때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경제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여서 죄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생명과 거룩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낼 때 수천 년의 역사와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마치 경제활동을 하듯이 가장 적절하게 배분하고 사건을 허락하셔서 최대의 효과를 가져 오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이 감옥에 있는 것은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 것 같고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안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의 구원 경륜 속에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적절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고요? 바울이 감옥에 있는 것은 자신의 사도 권을 의심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놀라운 하나님의 일에 은혜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너희는 이 일로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깨닫고 그것을 향하여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도대체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로 끌어올리고 싶으셨기에 바울을 이렇게까지 사용해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전하고 있고 지금까지 감추어졌던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복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비밀을 전하고 있고 계속 자라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을까요? 왜 바울이 놀라운 진리를 진술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처지를 변명해야 합니까? 아무리 진리라도 감옥에 갇힌 체로 말하면 믿지 못하는 어리고 약한 지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면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늘의 진리를 오늘의 삶에 담대하게 적용하지 못하고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 자주 흔들리고 의심되는 것은 많은 경우,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눈에 보이는 환경 때문이고 그런 환경을 하나님의 경륜과 상관없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는 한우리 식구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