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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4장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과 확신의 인사
  • 고경태
  • 승인 2017.11.3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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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1. [빌 4:1, 바울의 면류관인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표현했다(1절).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이 주 안에서 굳건하게 서라고 명령했다. 사도의 상급은 성도이고, 성도의 상급은 사도이다. 목사는 성도를 잘 양육해야 하고, 성도는 목사를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성도를 주의 양으로 청지기로 성실하게 양육해야 하고, 주의 목자를 섬기고 울타리로 들어오는 목자를 배격해야 한다.

2. [빌 4:2-3. 바울의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면함: 같은 마음을 품으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두 여자 성도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권면한다. 아마도 빌립보 교회에 중요한 문제가 두 여인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빌립보 교회는 여인 자주 장사 루디아를 첫성도로 시작한 교회이다(행 16:13-15). 초대 교회에서 여인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여인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킬 정도기 때문에, 1세기이지만 여성의 역할이 교회 안에서 상당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분란이 된 두 여인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빌 2:2)고 권면했고,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빌 2:5) 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쳤다.

“멍에를 같이 한 사람(Syzygus, 3절)”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Syzygus는 빌립보 교회에 지도자이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바울은 Syzygus에게 명령했다. Syzygus는 두 여인의 갈등을 조화롭게 하며, 빌립보의 글레멘트와 함께 교회를 세워가도록 했다(3절). 바울은 Syzygus가 동역으로 자기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바울은 글레멘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으니, 당연히 바울과 함께 멍에를 멘 그리스도의 종이다. 바울의 동역자들, 교회의 사역자들은 반드시 협력하고 동역해야 한다. 그것은 사역자의 이름이 생명책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빌 4:4-7. 주 안에서 기뻐하며 관용과 기도와 간구로 정진하라]

바울 사도는 ‘기뻐하라’는 명령(현재 명령형)을 반복해서 말한다(4절). 같은 마음을 품으려면 그리스도의 겸손을 보고 익혀야 하며, 또 기쁨으로 정진해야 한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형제나 이웃을 용서할 수 있다(5절, 참조. 주기도문). 그리고 교회의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용서해야 한다(5절). 마지막 날에 사랑과 인내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힘써 관용할 수 있어야 한다(5절). 사람이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고, 타인의 악행에 대해서 분노가 일어난다. 이러한 일을 만날 때 염려하지 말고(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6절). 빌 4:4-7절은 살전 5:16-18과 동일한 내용이다. 기쁨, 감사, 기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기쁨 그리고 기도와 간구에 감사함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울의 원리이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ἐν, in Christ Jesus) 너희 마음과 생각(hearts and minds)을 지키실 것이다(7절).

4. [빌 4:8-9, 나를 본 받으라]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우들에게 참, 도덕적 고귀함(정직), 옳음(공의, just), 흠이 없는 상태(無欠, 순수)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 하도록 권면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거룩을 명령하셨고, 신약성경에서는 땅끝까지 복음정진을 명령하셨다. 예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하고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고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될 때(창 17:1, 신 18:13, 마태복음 5장의 결론 마 5:48.) 사람들에게 탁월함이나 칭송으로 높임을 받게 된다. 그 때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이것들은 참, 고귀함, 옳음, 무흠(無欠) 등이다. 칭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믿음, 거룩에 정진해야 한다.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자신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도록 제시했다(9절). 즉 성도들에게 바울 자신을 본받도록 했다(빌 3:17, 고전 11:1). 바울을 본 받아 행동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고 권면했다(9절). 7절에서는 “하나님의 평강(the peace of God)”이 지키시고, 9절에서는 평강의 하나님(the God of peace)이 함께 계실 것이다. 이 과정에 바울을 본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본 받은 백성을 지켜 평강을 주신다(임마누엘). 인간이 참 평강을 누리려면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하는데, 바울 사도는 자신을 본받는 것과 등치시킨다. 이 시대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성도들에게 외칠만한 복음의 사역자가 누가 있을까? 사도 바울은 이전의 모든 자랑할 만한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푯대를 향해서 앞으로 정진했다(빌 2:12, 3:7-12).

5. [빌 4:10-23, 확신에 찬 바울의 마지막 인사]

사도 바울은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또 한 번 아주 강력하게 기쁨의 선언을 한다(10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을 감사했다. 빌립보 교회는 가난한 교회이기 때문에 바울이나 다른 것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주의 인도하심에서 바울을 기억하였고 기도하며 후원했다(14절). 그것은 바울에게 큰 감동이었고 기쁨이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도움이 없어도 불만과 두려움 없이 사역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족(自足)의 일체의 비결을 터득했기 때문이다(11-12절). 사도 바울의 사역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풍부에 처할 때가 없었음에도 풍부에 처했다고 고백하며 빈곤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一體秘訣, the secret of being content)을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13절).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든 것’을 성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힘든 처지에서 기뻐할 수 있고, 부한 처지에서 겸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울의 사역을 빌립보 교회가 어려운 형편에도 지원했다. 빌립보 교회가 형편이 어려워도 바울보다는 좋은 상태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괴로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14절). 바울의 사역을 돕는 교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는 꾸준히 도왔다(15-16절).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요청한 것도 아닌데 교회가 도왔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오직 유익을 구했고, 빌립보 교회는 감사와 사랑으로 바울을 도왔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기쁘고 기억되고 의지가 되었다. 따뜻함과 의지는 풍성한 지원이 아니라, 동역자로서 함께함을 느끼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에바브라디도 편에 재정 후원했다(18절). 바울은 그 받은 후원이 풍족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했다(18절). 복음 사역을 지원하는 후원금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다. 예배에 드리는 헌금(獻金), 헌상(獻上)은 복음 사역을 지원하는 예물이다. 그래서 교회는 헌금을 수집하여 목사의 생활비, 예배당 관리비, 구제비 등으로 사용한다. 향기로운 제물을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교회가 부패하고 배교로 가는 길이다. 중세로마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서 면죄부 속전(贖錢)을 수집했다. 또 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과 고대 교회의 가르침을 떠나서 다양한 교리 체계를 창안했다.

이단(異端)들은 정통 교회(역사적 교회)를 파괴하고 새로운 자기 교회?(무역사적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성경을 날조하며 돈을 수집한다. 이단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배교(背敎)하는데 촉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에 속한 자는 구원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 배교를 촉진에 목표하는 집단에 속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부패했지만 배교를 주도할 정도는 아니다. 또한 향기로운 제물은 드리는 것과 사용되는 것까지에서 결정된다. 비록 순수하게 드렸다할지라도 그릇 사용한다면 탐욕과 배교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금(후원)을 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 교회 체계에서 내가 순수하게 드린 헌금이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바른 헌금과 함께 바른 집행을 위한 동역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도움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채울 것이라고 선언했다(19절). 그리고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리도록 명령했다(20절).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했다(21절). 그리고 바울의 사역팀이 빌립보 교회에 문안했다. 그리고 로마 교회, 가이사 집 사람들도 문안했다(22절). 가이사 집(궁궐)에 있는 사람들로 로마에서 구금상태로 생각할 수 있고다. 필자는 ‘가이사 사람들’을 바울을 호위하는 호위병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빌립보 교회에 문안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울의 축복,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23절, 갈 6:18, 몬 1:25)로 빌립보 서신을 마친다(願主耶穌基督的恩常在你們心裡). 사도 요한도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축복했다(계 22:21).

6.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십자가의 멍에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사람의 다양한 생각과 의지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겸양으로 하나를 이루게 하옵소서. 기쁨 가운데 거룩과 믿음의 정진을 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와 간구를 하도록 하며 후히 주시니 감사합니다. 힘써 간구하고 감사하며, 정진하는 임마누엘의 복된 상태가 되게 하옵소서. 자족의 일체의 비결을 주셔서 부하거나 빈궁에 처해도 넉넉하게 이길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나는 예수의 백성이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주 예수의 은혜를 우리의 심령에 풍성히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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