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5일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미국의 기업인이자 투자가인 워랜버핏은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입니다. 빌게이츠가 1위이고 버핏은 아마 올해 4번째의 부자일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서글프고도 재미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신과 점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워랜 버핏 과의 점심식사’라는 프로그램이 그것입니다.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15년째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자리에 누가 갈 수 있습니까? 아무나 못갑니다.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경매를 통해서 7명의 사람을 선정하는데 거기에 낙찰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해인가 최종 낙찰된 가격이 우리 돈으로 35억이 된 해가 있었습니다. 올해도 6월1일부터 6일까지 한 주간 경매를 하는데 입찰시작가가 2만5천 달러라고 합니다. 아무리 투자의 귀재라고 칭송받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과 한 끼 점심 식사 하는데 35억이 든다면 너무하지 않습니까?

워랜 버핏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소위 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이 왕이나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극히 힘든 일이고 더군다나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부자나 대통령이나 왕보다 훨씬 높으시며 만나기 어려운 분이 계십니다. 온 우주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값이 얼마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돈을 다 모아서 하나님께 드린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것은 세상의 부자나 왕이나 대통령 앞에 나아가는 것과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너무나도 거룩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또 얼마나 귀한 은혜인지를 안다면 이 특권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은 다음 주에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12절의 말씀만 가지고 이 놀라운 특권을 생각하고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가서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까지는 아무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범죄 한 인간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들로 지키게 하시고 여인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과 성전과 제사를 주셔서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들이 성전에서 드리는 믿음의 제사를 통하여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예수님 오시기까지 모형과 그림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고 완전한 것이 아닌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 나라였던 이스라엘도 아무 때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오직 1년에 한번 대 제사장만이 피를 가지고만 나아갈 수 있었고 그가 지성소에서 살아 걸어 나올 때 까지 아무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용서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러했으니 이방인들은 오죽했겠습니까?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면 성전의 이방인의 뜰까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하나님이 불러주셔야 하는데 하나님은 이방인들은 잘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스라엘만 불렀습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불러주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직접 나가지 못했습니다. 성전 바깥뜰까지는 어떻게 어렵게 나아간다 해도 안뜰로 들어가려고 하면 거기에 팻말이 있습니다. 여기는 이방인 출입금지!, 이방인들이 이 경계선을 넘으면 반드시 죽을 것!,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었습니다. 나아간다 해도 이스라엘을 통해서만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중적인 장애가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불러주지 않아서 하나님을 몰랐고, 불러주었다 해도 이방인을 통해서만 나아가야 했습니다. 자격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스라엘도 불완전하게 나아갔고 이방인들은 아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조차 없었던 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워랜 버핏과 식사 한번 하는데 35억 원이 든다고 놀라지만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것이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야 은혜를 받을 수가 있고 생명을 누릴 수 있고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그 존전에 누구도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로 한꺼번에 이 모든 죄의 장벽을 없애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바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면 모든 천사들이 길을 비켜주면서 하나님 보좌 앞으로 인도해줍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입혀주신 의의 옷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은혜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아무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복을 받을 수가 있는데 갈 자격이 없었습니다. 함부로 갔다가 죽었습니다. 지성소에 죄인이 함부로 갔다가는 즉사했습니다. 제사장도 즉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귀한 은혜인지 알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담대하고 당당하게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고 12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담대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기죽지 않고 담대하다는 뜻이 아니고 제약 없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free, 시간이나 조건에 매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담대하게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유출입 허가증을 가지고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확신을 가지고 나가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응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담대하고 당당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승낙이 보장된 자유출입허가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이 특권은 개인적인 특권이기도 하지만 교회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지금 이 문맥은 10절부터 교회를 설명하면서 나오는 문맥이죠. 우리 한 사람 한사람도 예수님을 통해 바로 지성소 한복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옷 입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사도가 지금 강조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믿는 각종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귀한 줄 모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이것이 소중하고 귀한 줄 모릅니다. 조금만 바쁘면 안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이 꽉 막혀 있어야 예배드리는 시간이 소중하고 귀한 줄 알 터인데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까 가장 귀한 것을 가치 없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가장 귀한 시간이요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특권입니다. 어떤 특권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이 어떻게 허락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시간에 그냥 나오면 안 됩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옷 입고 나와야 합니다.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면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예복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한 분이므로 그 앞에 나아가려면 흠이나 점이 있으면 못 나갑니다. 천사들이 막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옷으로 우리의 흠과 점을 가려야 합니다. 이 옷을 입어야 당당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부싸움 하고 뚱한 그 마음 그대로 예배드리면 안 됩니다. 세상에 유혹된 허황된 마음 그대로 나오면 안 됩니다. 모든 마음을 추슬러 예수님을 옷 입고 나와야 합니다. 잡념을 가지고 예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에 누가 주보를 버리고 갔는데 이런 낙서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기만 와 바라...간다. 간다.” 도대체 누가 오기만 와 바라는 거예요. 어디로 간다는 말예요. 만약 내가 35억을 내고 워랜 버핏과 식사하는 시간에 있다면 그 시간을 낙서하고 보내겠습니까? 그 시간을 뚱하게 앉아 있다가 가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그 귀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워랜 버핏 같은 부자와 비교가 안 되는 삼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예배를 통해 누리게 되었는데 그것을 놓칠 수 있습니까? 이 특권을 믿음으로 잘 누리는 한우리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허락된 이 놀라운 특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가 당당하고 담대하게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마15:21-28절을 찾고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와 자기 딸이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것을 불쌍히 보시고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막7장은 이 가나안 여인을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지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거절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방인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자격이 있느냐?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들이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그것을 통해서 나와야지 어떻게 감히 바로 나와 은혜를 구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그때 그 여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여인은 지금 자기가 구하는 것을 자녀가 먹는 떡이 아니라 개가 먹는 부스러기라고 인정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지금 자녀가 먹는 떡을 구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언제 말씀의 은혜를 달라고 했던가요? 제가 언제 성령의 은혜를 달라고 했습니까? 단지 귀신 들려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내 딸 좀 고쳐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자녀의 떡이 아니고 개들도 먹을 수 있는 부스러기가 아닙니까?”

참 놀라운 말입니다. 예수님이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특권을 얻은 우리가 그 앞에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이방인인 이 여인은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고 은혜를 받는 이것을 구할 자격은 없지만 개 같은 나라도 부스러기는 구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한 것입니다.. 그 부스러기가 무엇입니까? 병 고치는 것, 돈, 건강, 애들 학교. ......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게는 부스러기 은혜도 필요합니다. 그것도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스러기 은혜는 개들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도 긍휼히 보시고 주시는 은혜입니다. 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얻은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부스러기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나의 돈을 더 많이 불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내 문제가 해결되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위해 나아가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 더 건강하게 되기 위해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죠. 그러나 그것은 다 부스러기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녀의 권리로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그런 것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자유출입증을 가지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의 성품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의 지혜를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의 마음, 그의 은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이 있어야만 죄를 이길 수 있고 자신을 이길 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아갈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까? 그 사람 생각은 하지 않고 그에게 받을 목걸이, 반지, 집, 다이야.....이런 생각만 가지고 나아간다면 잘못된 것이죠. 그런 것은 세컨드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부인은 남편을 구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남편의 사랑, 남편의 마음, 내가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이 나를 아는 그 깊은 관계, 그것을 구합니다. 그 외의 것은 다 부스러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언제 결정적으로 변합니까? 부스러기 가지고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껍데기 벗겨놓으면 다 똑같습니다. 틈만 나면 자기 자랑하고 남 욕하고, 잘난 척하고, 들어 앉아 있는 것이 전부 이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구해야 되며,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자신을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 하나님 당신을 좀 더 알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그 선한 성품을 좀 더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 지혜를 주십시오. 기도로 요청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 놀라운 특권을 부스러기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알고 누리고 경험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여 그 영광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한우리 식구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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