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전문가칼럼
“은사”는 중지되었는가? 계속되는가?은사중지론과 은사지속론의 대논쟁
  • 고경태
  • 승인 2017.12.01 01:03
  • 댓글 0
  • 조회수 1,169
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한국교회는 리채드 개핀의 <성령은사론>이 번역되어 출판되면서 그 정점에 이르렀고, 지금은 “계시이해: 완료되었는가? 계속되는가?”까지 확대되었다. 계시이해가 완료되었다고 생각하는 진영은 계시가 부족한가?라고 질문하고, 계속을 주장하는 분들은 하나님을 제한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두 질문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리처드 개핀의 <성령은사론>은 "Perspectives on Pentecost"이란 제목을 번역한 것이다. “오순절에 관한 관점들”이란 제목으로 직역할 수 있다. 개핀은 사도행전 2장에서 임한 성령이 단회적이라는 견해로 제시했다. 오순절 성령 임함을 종말사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종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 현재 신학계에서 사용하는 ‘종말’은 중간에 발생한 유대 묵시문학의 종말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다. 그러나 통상 ‘종말’은 단회 사건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단회인가 연속인가? 논쟁은 사도행전 2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지만, 신학 전체와 성경 역사를 보는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 위치이다. 신학 전체에서는 계시 사상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이고, 성경 역사에서는 십자가와 성령에 관한 것이다.

먼저 십자가와 성령의 관계이다. 1세기 예루살렘 골고다에서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죽은 것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수의 십자가는 종말 사건이다. 십자가가 종말 사건이기 때문에, 성육신, 부활도 종말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ㆍ부활승천성령파송천상통치재림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연관성이 있다.

그런데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파송하여 교회를 설립했는데, 교회에서 성령 현상(성령의 사역)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오순절의 연속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목적은 예수의 가르침으로 교회를 세우며 거룩한 백성(택자)를 모으기 위한 구원 경륜이다. 그런데 성령이 강림한 뒤에는 주의 백성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강림했지만, 복음전파는 사도 베드로가 했다. 성령의 단회나 연속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전파의 주체와 실행자에 대한 문제가 매우 현실적이다(행 1:8).

둘째, 계시에 관한 견해이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쁘게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보여주시는 복이다. 인간의 지복(至福)은 하나님 앞에 섰다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이다.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항상 계시를 직면한다. “영원한 하나님께서 자기 계시는 지금도 하시는가?”가 주요 쟁점이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을 견지하는 쪽은 ‘계시완료(66권 충족성)’을 주장하고, 성령 강림의 연속성을 견지하는 쪽은 ‘계시계속(개인적 예언?)’을 주장한다.

신(神) 앞에 서면 당연히 경험(經驗)이 발생할 것이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단회성에서는 경험이 아닌 복음전파에 주력하고, 연속성에서는 경험을 이해하고 나눔에 주력한다. 전자가 경험에 침묵을 지향하는 것은 복음전파의 효력을 증진하기 위함이고, 후자는 복음전파의 효력에 경험이 더 효과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복음(4복음서), 복음전파(사도행전, 요한계시록)와 거짓복음 분별(서신서)에 대해서 구성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신경험을 말하는 것보다, 복음을 고백하고 증거하고 찬양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은사는 중지되었는가? 연속하는가?

은사의 목적은 교회 세움에 관련한다. 세움은 최초 세움(설립)과 운영(유지)을 의미한다. 교회는 꾸준히 설립되어야 하고, 세워진 교회는 효율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계시 사건으로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나 그리고 미문 앞에서, 이방인 고넬료 회심 등은 모두 계시가 결부된 사안들이다. 사도행전 교회는 계시적 교회라고 분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반드시 복음 전파 수단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 때는 계시적 사건으로 교회를 세운 은사이다.

그러한 현상이 지금도 유지된다면 ‘연속’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이 1906년 아주사 (거짓)부흥운동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2016년에 미국 LA에서 아주사 부흥운동을 성대하게 기념했다. 그런데 그 부흥운동은 시작이 없는 운동이다. 1세기 예루살렘에 임한 교회 세움은 성령이 120명에게 임하여 시작한 것인데, 베드로 사도의 복음전파로 회개와 성령받음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20세기 미국 LA 아주사에 임한 방언은 1905년에 부흥을 소망하던 집단에게 나타난 소리 현상이고, 최초 한 명의 여자에게서 시작해서 확산된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아주사 부흥운동과 1세기 오순절 성령 강림은 전혀 유사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사 부흥운동(오순절주의)는 신사도 운동으로 발전했다. 신사도 운동은 더 과격하게 은사 계속을 넘어 사도 세움까지 주장하고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과 아주사 운동을 연결하지 않으면서 ‘은사 연속’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싶다. 아주사 운동과 신사도 운동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보고 싶다. 은사 중지와 연속 이해는 아주사 부흥운동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아주사 부흥운동을 참으로 본다면 오순절주의와 신사도운동으로 은사 연속으로 가는 것은 필연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보면서 은사 연속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고경태  ktyhbg@hanmail.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고경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