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신약성경 정경 목록은 아타나시우스의 정경 목록(367년 부활절에 쓴 편지)이 반영되었다(397년 카르타고 공회의). 정경 목록을 채택할 때 모든 정경이 순탄하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 중에 요한계시록의 정경성에 대해 의문은 마지막까지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왜 요한계시록을 정경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았고, 왜 포함했을까를 생각하면 좀 더 쉽게 각각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요한계시록을 정경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았던 이유를 너무나 많은 상징 표현이 있어, 해석에서 그릇 이해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왜 요한계시록은 정경으로 채택했는가? 쉽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갖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혼란을 증폭시킬 위험성과 함께 그 위험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익이 있기 때문에 채택된 것이다. 그 유익이 필자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전제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유일한 가치는 “어린양의 영광”이 명료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주는 유익은 어린양의 영광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께 금대접(성도의 기도)이 올라가며, 어린양은 생명책을 열 수 있으며, 인ㆍ나팔ㆍ대접을 통치하는 주 하나님이시다(regnum gloriae Christi). 그리고 24 장로들은 어린양께 영광과 경배를 세세무궁토록 드림이 확실하다. 이 가르침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cuius regni non erit finis)”와 명료하게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어린양께 드리는 영광과 경배는 이 땅의 교회들이 취해야 할 예배의 대상, 믿음의 대상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믿음의 방향, 믿음의 대상을 가장 명료하게 제시하는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의 정경화에서 아타나시우스의 정경 목록,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그리고 카르타고 공회의 결정이 일관성 있게 연결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영광과 통치이다. 그 가르침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 것이 신약성경 중에 요한계시록 밖에 없다. 그 가치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정경에 있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교부들이 우려했던 혼란의 가능성이 16세기부터 실현되어 21세기인 지금에는 바닷가에서 바늘을 찾아내야 할 정도로 혼란이 증폭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이 강조되는 곳에는 거의 이단이거나 이단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도 득세하는 이단으로 말미암아 변호적인 성격으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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