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도서(傳道書, Ecclesiastes)는 솔로몬이 저자이다. 히브리어 ‘코헬렛’이 ‘전도자’라는 뜻인데, ‘사람을 모으는 사람(카알의 분사형태)’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위키백과). Ecclesiastes는 Ecclesia와 연결된다.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쿰란문서)를 보면서, BC 2세기 중엽까지 편집된 문서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시 문서를 접할 때에 경외와 겸손이 있어야 한다.

2. 코헬렛(전도자)은 솔로몬인데, 솔로몬은 인생의 헛됨(1-6장)과 여호와를 경외하도록(7-12장) 가르쳤다. 전도서 다음에 솔로몬의 아가서가 등장한다. 솔로몬은 처첩을 1,000명을 거느린 화려한 왕이다(왕상 11:3). 그런 솔로몬이 한 여인, 술람미 여인을 향한 노래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솔로몬은 가장 많은 부(富)와 해외 교역과 군사력을 보유했다(왕상 10장). 그런 지혜와 평화의 왕이 외로운 전도자로 서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교회는 황금집으로 부귀권세로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복음을 전도해서 모아야 한다(고전 1:2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은 풍성한 물질을 가득 채워, 가난한 이웃을 박해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멸망한 뒤에 구한 것은 물질이 아닌 표적을 구했다. 물질과 표적으로는 도(道)를 이룰 수 없다. 전도(傳道)는 십자가를 묵묵히 전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

3. 전도서에서 지혜와 지식이 많음에 번뇌와 근심이 많다는 구절(전 1:18)이 지혜 탐구를 금지하는 말씀이 아니다. 뒤에 즐거움, 수고 모든 것이 헛됨을 말하려는 것이다(전 2장). 그리고 때에 대해서 제시한다(전 3장). 때를 아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다(잠 25:11-12). 잠언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가르쳤고, 전도서에서는 때를 알도록 촉구하며 기다림(인내)과 분별을 가르친다. 그리고 다시 학대자의 포악과 학대받는자의 눈물이 있지만 둘 다 헛되다(전 4장). 재물과 부귀와 존귀도 헛되다(전 5장). 사람이 햇빛을 보는 이상 평안함이 없다. 해 아래에 있는 사람은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한다(전 6장).

코헬렛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으니 정직한 사람이 지혜롭다고 가르쳤다(전 7장). 성읍을 지키는 사람은 지혜자와 의인이다(전 8장). 사람이 지혜를 알고자 하여 밤낮으로 탐구하지만 결코 알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 그럼에도 지혜자는 탐구를 쉬지 않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한다(전 8장).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을 지혜자는 알기 때문에, 사랑받음에 교만하지 않고 미움받음에 슬퍼하지 않는다(전 9장). 지혜자와 우매자 중에 우매자(바보)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왕도 우매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전 10장). 코헬렛은 청년의 때에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촉구했다(전 11:9).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선포했다(전 12:1).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들을 심판하신다(전 12:13-14).

4.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지만(해 아래서 헛되다, 29회), 그 헛됨에서 사람은 전도자와 지혜자와 함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탐구하며 정진해야 한다. 호흡이 있는 인생은 죽음으로 가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복됨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기 때문이다. 전도서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지혜(50회), 마음(40회), 헛되다(38회), 해 아래서(29회) 등이 있다. 전도서의 특징 중 하나는 ‘여호와’가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 창조주를 사용한다.

5. 아가서(雅歌書, Song of Songs, Canticles), “노래 중의 노래”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솔로몬이 저자이다(아 1:1). 아가서는 유대 정경 타낙, 케투빔(성문서) 중 다섯두루마리(Megilloth) 중 첫째 문서이다. 아가는 유월절, 룻기는 오순절, 애가는 예루살렘이 파괴된 날, 전도서는 장막절, 에스더 부림절에 낭독했다. 천주교는 마리아로 해석해서 마리아와 관련된 절기에 낭독한다.

성경을 편집된 문서나 문학 문서로 보는 것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성경을 편집된 문서로 보는 것은 계시문서를 대하는 법이 아니다. 아가서를 13개의 칸토(Canto)로 구성한 노래로 제시했다. 그럼에도 아가서는 한 저자 솔로몬으로 보아야 한다.

6. 술람미 여인이 실재 여인인지는 확증할 수 없다. 술람미 여인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외모는 검다(아 1:5). 어머니와 오빠에게 박대를 받았다(아 1:6, 6:9). 그런데 왕 솔로몬은 많은 아내들 속에서 술람미 여인을 사모했다(아 6:8). 수 많은 미녀들 속에 있는 왕이 왜 술람미 여인을 사랑했을까?

7. 아가서는 정경 시비가 있을 정도로 내용이 신비롭다. 칼빈이 발탁했던 카스텔레옹(Sebastien Castellion, 1515–1563)은 아가서의 정경성을 부인하면서 결별했다. 칼빈은 그의 우수한 실력을 인정해서 발탁했는데, 고집스러운 행동(프랑스어 성경번역을 추진)과 아가서의 정경성을 부정하면서 제네바에서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칼빈을 카스텔리옹을 배려했는데, 세르베투스가 처형될 때 칼빈을 악의적으로 비난했다. 카스텔리옹의 근거 없는 악담이 지금에 정설로 자리를 잡았고 더 확장되고 있다. 몽테뉴(Montaigne, 1533-1592),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가 ‘관용’이란 미명 아래서 칼빈을 왜곡했다.

8. 아가서를 우화적(allegory)으로 해석하면 신랑을 예수로 신부를 교회로 바로 적용시켰다. 칼빈은 지나친 우화적 해석 등으로 구약 본문을 과도하게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주의시켰다. 문자적으로 남녀의 사랑 이룸으로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가서는 남녀의 갈망과 부부이룸의 노래는 선정적으로 보일 정도이다(3-4장). 바울이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부부의 깊음을 알 수 있는 말씀이 아가서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9. 사랑을 적극적으로 구애한 남자로 인해서 신부와 맺어졌는데, 그 사랑을 헤치는 여우가 있다(5장). 사랑이 회복된 후에 아내가 남자를 노래하는 부분이다(6-7장). 에베소서에서 부부관계는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복종하라고 했다(엡 5장). 부부관계가 신비롭다. 칼빈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을 제시했다. 부부의 신비를 위해서 믿음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리스도와 성도의 신비를 위해서는 성령(구속의 은혜)이 필요하다. 아가서의 결론은 죽음을 이기는 사랑이고, 사랑은 친구들을 모으며, 활기찬 발로 산야를 달린다(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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