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59) - 예언자의 세계 (1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편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23:5-6).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남 유다 멸망의 산 증인으로 비운의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이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 역사의 마지막 국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레미야서 1장 2절에는 그가 활동한 시대를 언급하고 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 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 잡히니라”(렘1:2-3절).

요시야 왕이 다스린 지 십 삼년은, 주전 627년에 해당한다. 예레미야서는 주전 597년 일 차 바빌론 포로와 주전 587년 남 유다 멸망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 때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서 애굽으로 도망가려는 무리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가게 된다. 그는 거기서 짧은 기간 예언을 한다(렘3-44장).

<예레미야 선지자>, 미켈란젤로, 1511, 프레스코화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렘43:7).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렘44:30).

예언자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 시대 개혁가로서 선다. 이스라엘의 멸망, 유다 나라가 역사가 사라지는 순간 예레미야는 멸망하지 않는 길을 제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백성들과 권력자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역부족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애굽을 따르지 말고 바벨론을 좇아 친 바벨론 정책을 펴라고 말하지만 소용없게 된다.

그 시대의 개혁자로서 예레미야는 최선을 다하지만 국운이 다한 유다는 결국 역사의 뒷 페이지로 사라진다. 예레미야는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한 후에 거의 일 세기 만에 예루살렘에 나타난다. 그의 예언 활동은 예레미야 시대 사람들과 그 후 세대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레미야는 이사야와 달리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나돗이라는 마을, 예루살렘 북쪽으로 수 킬로 떨어진 조그만 마을에서 왔다.

예레미야는 이사야 예언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태생이나 성격과 전체적인 상황이 그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예레미야 사역과 인격, 상황들은 고난의 예언자로서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한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짖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고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1:5-6절).

예레미야 소명은 모세의 부르심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어린 아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거부한다. 또한 말을 잘 못하는 벙어리와 같은 말더듬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준비하고 예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렘1:7-19절).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1:9절).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이 시대에 또 다른 예레미야, 개혁가로 부르시고 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태16: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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