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ㆍ외교ㆍ경제적인 문제일 뿐, 기독교 신앙과의 연관성은 무의미하다.

ㆍ고경태 목사. 광주 망월동 주님의교회 목사. 크리스찬타임스, 한국성경연구원, 세움선교회, 크리스찬북뉴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면서 이슬람과 갈등을 고조시킬까? 그러면 서구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해서 어떤 모습을 할까?

지난 12월 9일 영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영국 교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생일을 축하하다. 원제:UK Church Under Fire for Celebrating Islamic Prophet Muhammad's Birthday Ahead of Christmas”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과 갈등이고 고조되는 것 같은데, 영국에서는 교회와 이슬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종교는 갈등하고 있는가? 화합하고 있는 것인가?

트럼프가 촉발시키는 예루살렘 갈등에 대해서 개념을 정리하려고 한다. 예루살렘은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 위에 있는 천혜의 요새로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고, 다윗이 정복해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도성으로 삼은 다윗성이다.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의 것인가? 다윗의 것이었는가? 그리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정복되었다. 예루살렘은 다윗성인가? 바벨론의 성인가? 바벨론, 페르시아, 알렉사더, 로마의 성인가? 예루살렘의 실재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땅의 소유는 누가 결정하는가? 결국 땅은 강한 자가 소유하고, 그 소유를 지키면 자기 소유가 되지 않겠는가? 현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동점유를 하고 있고, 예루살렘에 설치된 황금 모스크는 이슬람의 자산이다. 유대인은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고, 이슬람은 현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 갈등은 3,000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먼저 예루살렘이 3대 유일신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공통성지라고 하는 것이다. 유대교는 성전을 건축하고 싶고, 이슬람교는 현재 모스크를 유지하려고 한다. 기독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로마 카톨릭 등이 골고다에 기념교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개혁파)는 기념 교회당을 설립하지 않았다. 모든 종교는 성지를 갖고 있지만, 개신교는 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기독교에는 땅을 “성지로 생각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성지(聖地, holy land)는 땅에 어떤 신성한 의미가 있는 영역으로 규정하는 개념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3대 종교는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생각한다면, 마태복음(마1:1)의 선언과 약간 다름이 있다. 마태복음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윗의 후손, 메시아를 사모한다. 유대교는 다윗의 후손을 지금도 대망하고 있고, 기독교는 다윗의 후손, 메시아께서 오셨고, 다시 오심을 믿는다. 아브라함을 공동 지반으로 3대 종교를 묶으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슬람교가 주장한 최후의 선지자의 조상은 “아브라함”이 아닌 “모세”라고 보아야 한다. 참고로 현재 모스크가 있는 예루살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기억된 땅이지, 이스마엘과 관계가 전혀 없다. 다만 미래에 메시아가 그리로 온다고 예언에 의한 것이다(미래의 가치). 유대교는 과거를 회복하려는 것이고, 이슬람은 미래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은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와 이슬람, 예수의 죽음을 기리는 기독교가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는 것에 서는 공통이다. 유대교는 예수를 다윗의 후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교는 예수의 성육신 탄생을 인정하지 않고, 무함마드보다 낮은 한 선지자로 평가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성육신(동정녀 탄생)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하나님의 성육신을 믿는 부류로 나뉜다.

예루살렘이 아브라함의 공동 지반이라면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오실 메시아를 공동으로 대망한다고 해도 갈등이 없을 것이다. 갈등이 있다면 종교적이나 혈통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창 15:5, 22:17).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녀를 상상한다면 세례 요한의 선언(마 3:9)과 갈라디아서의 가르침(갈 3장)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놓고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일부가 공동으로 의식하는 것은 ‘성지 의식’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성지 순례자들이 무덤교회에서 손을 대면서 어떤 신성한 경험을 사모하고 있다. 그러나 성지에 대한 의식이 없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믿는 기독교인은 예루살렘은 성지가 아니라 예루살렘일 뿐이다. 현재 갈등이 고조되는 예루살렘은 정치. 외교, 경제적인 문제일 뿐이고, 기독교 신앙과 어떤 관련이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성지 의식이 없고, 성육신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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