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14)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참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그 빛은 생명에서 나오며, 그 생명은 말씀 안에 있었습니다. 그 말씀에 의해 모든 만물이 지어졌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비추는 그 빛은 하나님이시며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참 빛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준비하신 주의 백성조차 그 빛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빛은 이 땅에 와서 거하게 되셨습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원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사람이기에 그분은 사람의 몸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영원한 분으로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말씀”이신 분임을 뚜렷하게 계시하여 줍니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1-13)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으니, 그분은 바로 피 뿌린 옷을 입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입니다. 영원한 말씀, 곧 로고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한편,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시며 영원히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 및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또한 바람을 잔잔케 하시는 것을 보고는 그분의 신성을 느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3).

또한 베드로가 하늘 아버지의 영감을 받아 예수님에 대해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성소 위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또한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자,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고백합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가브리엘 천사 역시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녀가 아이를 임신하게 될 것을 알려주면서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고 말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친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인 공회 앞에서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답변하셨습니다(눅 22:70-71).

또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머리 위로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본 후 즉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고(눅 1:33-34), 예수님이 친히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때도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며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이 영원한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눅 3:22).

주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아버지)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2-14)

따라서 우리는 주 예수님은 말씀 하나님이시며 또한 성자 하나님으로서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 때에 그분들과 함께 하셨고, 나아가 죄로 인해 저주 가운데 있는 온 세상을 위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으니,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신 그 선지자,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고 다윗의 뒤를 이어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십니다.  

본문 2절과 3절을 보니, 말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피조물이 있기 전에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곧 만물은 바로 “말씀”을 통하여 지은 바 됩니다. 여기서 3절의 “지은 바 되었다”와 뒷부분의 “되었다”는 말은 똑 같은 헬라어 “에게네토”가 두 번 쓰이고 있는데 이 단어는 “없던 상태에서 존재하게 되다”라는 뜻으로서 창조를 의미합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분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15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창세기 1장을 보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계속 언급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을 매체로 하여 세상을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없던 것을 있게 하신 것이요, 그분의 영원한 아들이신 ‘말씀’ 하나님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에 히브리서 1장 역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4절을 보겠습니다. 4절을 보니, 말씀 하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 생명은 생명 그 자체이며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및 영생을 포함합니다. 곧, 이 땅에 오신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분은 생명 그 자체로서 그분 안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있습니다.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1-13)

그런데 4절은 계속 말하기를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즉, 그 생명은 죄로 인하여 멸망으로 향하는 인류에게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빛은 언제나 생명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반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즉, 빛으로부터 생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생명이 오면 그 생명과 함께 빛이 흘러 넘칩니다. 그 빛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며 소망이 되고 또한 무엇을 향하여 나아갈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자 빛이 비추게 되었고, 그 빛으로 이끌린 자들마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생을 얻은 그들의 삶 또한 빛 가운데 걷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향하여 거룩하고 환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상태에서 그 생명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빛 가운데 살게 되고, 또한 그 빛은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 그 빛으로 나아와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에서 빛을 나오니 그 분은 참 빛입니다. 이에 9절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진술합니다. 14절은 지금까지 설명 드린 큰 그림 속에서 참 빛이 세상에 오심에 대해 다시 뚜렷하게 표현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렇습니다. 세상에 오신 참 빛은 아버지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토록 ‘말씀’이며 하나님이십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즉,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신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말씀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성탄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추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8절을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영원한 독생자 아들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9절을 보니 이 빛이 세상에 옵니다. 그리고 이 참 빛은 “각 사람”에게 비춥니다. 각 사람 모두는 참 빛이신 말씀 하나님에 의하여 지은 바 된 피조물이지만 슬픈 것은 그들은 어두움에 속하여 이 빛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그를 알지 못합니다. 그를 통하여 지은 바 되었음에도 그분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져서 어둠에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1절을 보니, 참 빛은 “자기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들로 한 국가를 형성하시고 나아가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많은 선지자들과 다윗 왕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참 빛을 기다리게 하신 그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조차 언약의 백성이 참 빛을 영접하지 아니합니다. 그분을 거부하고 믿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참 빛은 이 땅에 오신 사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도 또한 자기 백성도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나, 그분은 그 빛을 온 세상에 비추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참 빛을 맞이할 “각 사람”을 모든 열방 가운데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혈통이나 민족이나 가문이나 육정으로 주의 자녀가 되는 자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로서 믿음으로 참 빛을 영접하여 새로운 나라가 되고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참 빛을 영접하고 영생을 소유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6-8절을 보니, 세례 요한이 역사 가운데 등장합니다. 그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신의 증거를 통하여 모든 사람으로 그 빛을 믿게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 빛이 아니요 단지 그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착각하여 세례 요한이 그 빛이 아닌가 할 때에 그는 확실하게 말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하지만 세례 요한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고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19절에 보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소위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더라”(눅 3:15).

하지만 세례 요한은 분명하게 금을 긋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눅 3:16).

또한 요한복음 1장 20-21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도 아니며 또한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0-21, 23).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로서 히브리어의 메시아를 번역한 단어입니다. 곧, 그리스도란 말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나는 ‘그 선지자’도 아닙니다. 나는 단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입니다.”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 선지자”란 모세 때에 신명기 18장 15절에 예언된 선지자로서 모세의 뒤를 이어 오실 영원한 “그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선지자”는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언할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면서 “참 빛”되시고 “메시아”되시며 “그 선지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똑바로 증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11절에서“자기 백성”으로 불리던 유대인들이 한결같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그들 앞에 등장하자, 처음에는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믿고 따랐습니다.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요 7:37-44)

놀라운 것은 이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어떻게 올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더욱 확실히 합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더라”(요 7:31).

사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5병2어 사건, 곧 어떤 소년이 내어 놓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경험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예수님을 그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요 6:14-15)

분명히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대다수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부분에서 십자가를 향하여 가까이 갈수록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왜 처음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다가 나중에 거부하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유대인의 마음이 예수님을 대항하기 시작하는 때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칭하는 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요 8:58-59).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29-33)

또한 예수님께서 38년된 걷지 못하는 병자를 고치셨을 때 그 날이 안식일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또한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올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치료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됩니다.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5-7)

이처럼 유대인들의 메시아 개념은 단지 위대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니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고 나아가 예수님이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자신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경제적인 메시아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를 져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이 신기한 기적을 통하여 자신들을 계속 배부르게 할 줄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2장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더 이상 기적을 통하여 음식을 만들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압제하는 로마 가이사(시저)에게 세금을 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로마로부터 자신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할 혁명가도 아니요 또한 경제 메시아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떡과 술을 주는 대신에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라 하니 그들은 큰 시험에 들어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47-51, 60, 66).

즉,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음식을 주는 경제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거부한 것입니다.

셋째로,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민족적,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유대 민족을 세상 최고의 민족으로 만들어 주고, 또한 유대 나라를 세상 최고의 권력의 나라로 만들어 줄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민족을 사랑하시며 오히려 유대 민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니 유대 민족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미워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께로부터 완전히 떠나게 된 사건은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에게 붙잡혀 십자가 상에서 비참하게 죽게 된 사건입니다(막 15:30-36). 그들은 혹시 십자가 상에서라도 기적을 통하여 예수께서 죽지 않고 탈출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상에서조차 아무런 기적을 베풀지 않고 죽어 버린 예수님을 보자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따라왔던 유대인들마저 예수님을 저버리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저주 받은 자만 나무에 달려 죽게 되어 있는데 메시아로 생각한 이 예수가 나무에 달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으니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이요, 오히려 예수라는 자에게 완전히 속은 것으로 생각하며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즉,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경제 메시아, 정치 메시아로서 인간들 중에 가장 뛰어난 혁명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약 예언을 통해 약속하신 참 메시아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구약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4).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 12:28-29)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유대인들은 성경대로 메시아를 바로 알고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과 기대를 채워줄 메시아를 만들어 놓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참 그리스도가 오셨어도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메시아 관을 만족시킬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큰 진노 가운데 있습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살전 2:15-1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참 빛이신 참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갖고 있던 잘못된 메시아관 때문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관은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만들어진 메시아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신앙은 잘못된 신관과 메시아관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릇된 메시아관과 신관을 가질 경우 그 사람은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내신 참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잠깐 누릴 이 세상에서의 빵과 술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나라를 정치적으로 해방 시켜주기 위함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세대주의자들이 믿는 것처럼 유대 민족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온 세상 나라들을 무너뜨리시는 그러한 능력의 메시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그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분이셨습니다. 죄로부터 구원한다는 것은 죄 사함을 의미함과 함께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주의 천사가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면, 죄책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평강을 누릴 뿐만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 승리함으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교회 다니십니까? 왜 기도하십니까? 왜 봉사하십니까? 어떤 예수님을 믿고 계시며 예수님께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참 빛이며 말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참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나의 죄 값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받아야 할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이 메시아로 인하여 속죄함을 얻어 구원 받았으니, 영원토록 어린양 메시아를 기억하며 기념하여 경배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새생명을 얻었으니 말씀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계속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성장합시다. 또한 우리는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받을 줄 알고 언제나 부활의 소망을 갖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살아갑시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성경대로 바른 메시아관을 갖고 나를 용서하시고 새생명주신 그 메시아, 그 선지자를 믿음으로 주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성령을 통해 오늘이라 하는 날에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다가, 죽음 및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영원한 천국,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죽임 당하신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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