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흰 빛

 

                                 김종욱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숲 그림자가 출렁이며 그려낸 밤바다는

달빛과 함께 타올라도 사그라지지 않는

흰 떨기나무 같아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은막과 흑막

우림과 둠밈

금지와 허락

아무 장식도 없는

한 세계에 대한 안녕

그 바다 위에 떨어진 흰 꽃잎 하나

달빛,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처럼 번지는 불길

마침내 망막을 하얗게 태우는 희고 흰 불꽃

눈이 먼 나의 청회색 눈동자에

미색의 저녁을 새긴다

 

순수함은 최고의 매혹이자 최악의 악덕

스스로 타오르는 향기에 정신을 잃으면

내가 당신의 우울과 현실을 도울 수 없는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슬프지 않다

 

너의 무표정은 물 같아서

나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알 수 없고

언제까지나 계속

최단 시간으로 도달하기 위한 빛의 굴절

빛은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다는 뜻일까

 

아름다운 거짓에 스스로 녹아내릴 때까지

오직 비가 올 때만 만날 수 있는 언어의 풍경에

그 빛마저도 물을 머금으며 무거워진다

나의 시와 현실의 경계에서

부서진 아이셰도우 조각들

어지러운 메모들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싶지 않은 것처럼

바라볼수록 더 많이 반짝이네

 

나의 시는 이 반짝임들을 입에 머금고

말하는 것 같아

유리로 된 빛 유리로 된 도시 유리로 된 세계

입속에서 소리 내며 깨지는 것 같아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 Oil on canvas, Van Gog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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