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8.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박홍섭 목사(부산 한우리교회, 교회를 위한 신학포럼 대표)

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집니다. 면책특권, 불 체포특권 같은 정치적 법률적 특권부터 시작해서 보좌관과 비서와 운전기사와 인턴사원 등 9명이 넘는 유급보좌진을 꾸밀 수 있고 전용사무실까지 공짜로 제공받습니다. 1억 1300만원의 연봉에 월 670만원의 활동지원비가 제공되고 KTX공짜 탑승권, 선박과 비행기 일등석 공짜 이용권에 국회의관의 이용실, 목욕탕, 헬스장, 한의원 양의원 무료이용 및 국회도서관의 전용열람실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온갖 의전상의 혜택과 일 년에 두 차례의 해외시찰이 국비로 보장됩니다. 뿐만 아니라 단 하루만 의원을 해도 65세 이후 평생 120만원의 연금이 주어지는 등 무려 200여 가지에 달하는 수많은 특권이 있습니다. 너도나도 국회의원 되려고 야단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에도 특권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2절의 말씀이 그것이죠.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담대하고 당당하게 나아가 예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자유출입권이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라고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투표의 결과로 얻어진 것도 아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믿음 때문에 주어지는 것으로 정말 귀하고 놀라운 특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이 특권을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보다 더 귀한 것으로 믿고 이 특권을 아름답게 사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이 귀한 특권을 가지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사도바울은 엡3:14-19절까지의 세 가지의 기도를 통해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기도이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내주를 위한 기도이며,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충만함을 맛보기 원한다는 기도입니다.

왜 이 기도가 중요합니까? 이 기도가 4장부터 나오는 성도의 실제적인 삶,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영적전투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속사람의 강건함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내주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면서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특권인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바로 이것을 구해야 한다고 자신의 기도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기도의 의미를 생각해보겠습니다(16절). 바울은 무릎을 꿇고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존재의 근원되신 아버지입니다. 사도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가장 간절한 기도의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은 감옥 안에서 에베소 교회를 위해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의 그 간절한 기도의 첫 번째 내용이 무엇이라고요? 속사람이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신약에 3번만 나오는 사도바울의 독특한 표현인데 고후4:16절에서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할 때 그 속사람입니다. 이것은 겉 사람의 반대말입니다. 겉 사람은 우리의 외모나 지위나 조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어느 직장에 다니고 어떤 직위에 있고 한 달에 수입은 얼마이며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차를 타고 얼마나 건강한가? 이런 것들이 겉 사람입니다.

속사람은 눈에 보이는 이런 겉 사람과 대조적인 의미의 단어입니다. 롬7:22절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고 말한 뒤 25절에서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한 것을 보면 속사람은 곧 믿는 자의 내적부분,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결정짓고 좌우하는 핵심적 요인은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외모나 조건이나 환경을 의미하는 겉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 곧 속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인 기도의 특권을 사용해서 간절히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바로 이 속사람의 강건함입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겉 사람인줄 압니다. 겉 사람의 강함과 부요함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서 학력, 권력, 재력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정작 인생이 무너지고 깨트려지는 것은 겉 사람이 아니라 속사람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겉 사람을 화려하게 꾸몄다고 해도 속사람인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무너지면 인생 자체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죠.

오늘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잘 무너지고 자기를 잘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속사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상처를 잘 입고 우리의 감정은 너무 잘 침체됩니다. 우리의 생각은 죄 짓는데 너무나 빠르고 허망한 생각에 너무 쉽게 물들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한 마디를 들으면 밤새도록 아파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고 무엇인가가 욕심이 나면 온통 그 생각으로 함몰되어 그 마음에 다른 것이 있을 틈이 안 생기는 그런 상태가 되고 맙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성도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 상태로는 빛의 자녀로 살지 못합니다. 그 상태로는 성령충만 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로는 영적전쟁을 싸우는 군사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파도와 같다고 했죠. 마음이 왔다 갔다 하고 생각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데 어떻게 빛의 자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조금 잘되면 세상이 다 자기 것처럼 보이고 조금만 어려우면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피 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 싸우는 거룩한 영적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속사람이 강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견고한 심지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약하면 환경에 따라 이러 저리 휘둘리고 조그만 바람과 풍랑에도 흔들리고 부딪치고 깨어지고 요동치지만 속사람이 강하면 어떤 바람과 어떤 풍랑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강한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있지 않습니까? 속사람이 강한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속사람이 강해질 수 있을까요? 지금 바울이 말하는 속사람이 강하다는 것은 단순히 배짱이 좋다거나 담력이 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런 차원의 속사람의 강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주어지는 강건함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강건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사람이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거나 아무거나 듣고 보고 읽고 만지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돈 들지 않는다고 아무 생각이나 하고 아무 것이나 보고 듣습니다. 이 책보고, 저 책보고, 이말 듣고 저 말 듣고 그리고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생각해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속사람이 강해질 수 없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허망한 것을 생각하면 겉 사람이 어떠하든 허망한 사람이 됩니다. 속사람이 더러운 것을 생각하면 겉 사람이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여도 그 사람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속사람이 음란한 생각을 하면 겉 사람이 아무리 거룩해보여도 그 사람은 음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절대로 아무 생각이나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대문에 열쇠를 걸어 잠그고 아무 생각이나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추하고 더럽고 어리석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들어오려고 할 때 바리케이트를 쳐야 합니다.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야 있습니다. 아니 무수히 그런 생각들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통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 소중한 것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쁜 생각이 들거나 떠오를 때 고개를 흔들면서 이건 안 돼 하고 거부하고 즉시 아름다운 생각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생각할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속사람의 강건함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생각하면서 지키는 것이 사람의 노력이나 결단이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인드 콘트롤 이런 것 가지고 우리의 마음이 다 콘트롤  된다면 성령이 필요 없죠. 우리 속에 있는 죄 성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콘트롤 될 정도로 그렇게 약하거나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붙들어 주십시오. 그 강건함으로 거룩함을 향해 달려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움직이려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 외에는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힘써 말씀을 읽으십시오. 열심히 말씀을 들으십시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 있는 말씀을 묵상하고 깨닫게 된 말씀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생각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는 유일한 원리입니다. 속사람의 강건함으로 승리하는 한우리 식구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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