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31)-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몇 자 남겨야 할 것만 같다. 그는 거창 장(章)씨로 경남 거창에 뿌리를 둔 유교적 색채가 아주 짙은 집안에서 자라났다. 집 근처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로 교회 생활을 하다가가 서울신학대학에서 교회음악(피아노)을 전공하고 사모가 되었다. 필자와 결혼을 할 무렵에도 가족 중 예수를 믿는 이는 그녀뿐이었다. 사실, 나는 신학공부만 열심을 냈지 영성훈련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내는 십여 년 전부터 영성훈련에 깊이 몰입하여 일정한 수준에 올랐다. 영성 관련 서적의 독서도 상당하여 그녀에게 ‘이런 지혜와 지식이 있는가?’ 놀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기도를 할 때마다 영적 신실함과 영성 윤기가 묻어 나온다. 한 달에 서너 권씩을 읽고 요약하여 해외에 거주하던 처제와 나누기를 반복하면서 영적 독서 체력을 8년 이상 이어갔다. 처제의 부탁으로 시작한 영적 독서와 책 읽기 프로그램은 어림하여도 약 삼백 여권에 이른다. 어떤 때는 할 일을 못하고 책 읽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짜증을 내던 기억도 있다. 처음엔 깨닫지 못했지만 영적 독서는 ‘거룩한 독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관상기도’ 나아간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2017년 초 우리 센터의 이름을 바꾸었다. 「위대한맘 인천센터」라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인천 한부모 사역(싱글맘)에 처음부터 개근하며 나온 분이 미경 자매이다. 그녀에겐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발달장애가 심한 ‘주빈’(아들, 가명)이 때문이다. 모임에 오면 즐겁고 기쁜데 어울릴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 놀고 즐길 것들이 많은데도 소통이 안 되니 어쩌랴. 처음 한두 달은 주빈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오곤 했다. 하지만 도우미들도 감당하기 어려웠는가. 어느 날 내게 찾아와서는 “주빈이를 정기 자조모임에 데리고 와도 될까요?” 자매의 질문이다.

나는 즉답을 하지 못하다가 “데리고 오세요.”하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아픔이 있는 가정의 아이들을 품어야 모임이 더 진실해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리고는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여 그 아이를 결국 센터의 실장이 맡기로 했다. 아내가 돌보미를 자청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스럽게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이 자조모임 회원들을 보살피고 센터장의 역할을 보조해야 할 텐데~~~.” 그러자 아내는 “지금은 주빈이를 돌보는 게 가장 급선무예요.” 하는 것이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늘 주빈이만을 돌보는 게 괜찮은 일인지 모르겠다” 아내는 “어쨌든 현재는 이것이 최선이잖아요.”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방법을 찾고 싶어 “혹 다른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일까?”라고 하자 아내는 부드럽지만 단호히 뜻을 밝힌다. “저는 한 달에 두 시간 남짓인걸요, 그 엄마 심정은 어떻겠어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으음~...”

 

모임 때마다 두 시간씩 주빈이 돌보기를 3년을 넘겼다. 처음에는 어렸으므로 핸들링이 잘 되었지만 요즘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간석역을 지나 북부 주안역 방향으로 걷다가 기찻길 육교를 넘어 남부주안역 쪽으로 향하고, 다시 간석역 CTS경인방송 쪽으로 걸어간다. 붙잡고 걷다가 뿌리치는 바람에 넘어질 뻔도 여러 번이란다. 사막을, 광야를 걷는 훈련이다. 훈련이라고 생각하니 감당할 만한 모양이다. 매번 그에게 간식을 사주려고 5천 원씩을 확인하고 나가지만 자꾸 더 먹고자 한다. 다 큰 아이가 갑자기 뽀뽀하려고 달려들거나 가슴을 만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엔 하의를 벗고 뛰기도 한다. 이를 어찌하랴. 모임이 끝나면 온몸이 땀범벅인 것을.

 

연말 한부모자조모임 네트워크 회의(서울 본부). 경인지역 4개 한부모자조모임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주빈이 이야기가 나왔다. 한부모들의 가족 가운데 장애가 있는 경우, 이는 온 가족에게 엄청 큰 부담이다. 특히 가족부양을 책임지는 엄마는 할 말을 잃는다. 지나간 일이지만 시간제 도우미가 주빈이를 돌보기도 했으나 모두 다 포기한 상태다.

처음 만났을 때 9살이던 주빈이가 이제 11살이 되었다. 키도 컸고 몸무게도 크게 늘어 힘이 성인에 버금간다. 손을 붙잡아도 뿌리치고 달리기 일쑤. 도로를 가로지를 때는 아연실색한다. 그는 햄버거를 좋아하여 햄버거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자마자 손님의 햄버거를 낚아채고는 괴성을 지른다. 좋다는 뜻이다. 아내는 손님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하고는 다시 점주(주인)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미 매장이 어지럽혀졌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아임을 누차 설명하면서 말이다. 그것도 한 두입 베어 먹다가는 땅바닥에 내버린다. 아내는 위대한맘 모임이 끝났는지를 자주 물어온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전화 저편 너머로 들려온다.

“지금은 모임이 어찌 되었나요?”

“응?, 아직 20분 정도 더 지체될 것 같아.”

“그래요? 그러면 인천시청 방향 ‘녹지공원’에라도 다녀와야겠어요.”

 

회의 중에 사단법인 글로벌 비전의 김 사무총장이 말한다. 민간기관에서 ‘자조모임’을 만들어 이런 사역을 하는 것을 작년 이맘때 서울시청 관련 공무원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시나 정부에서 하는 일보다도 더 멋진 일들을 하고 있다’는 놀람과 동시에 ‘오히려 정부가 하는 일보다 결코 못하지 않군요. 귀하십니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고 한다. 민관이 서로 협력하고 논의하여 정책에 반영할 것은 없는지 협의하자고 한 바 있단다. ‘주빈이 처럼 발달장애아라도 있는 가정엔 특별한 지원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최근엔 아내의 건강이 나빠져, 더욱 신경이 쓰인다. 눈동자 뒤쪽 실핏줄 파열을 두 번이나 겪었다. 지난해 5월에 망막수술을 하고 난 뒤로는 다이어트, 눈 시력 회복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다행히 체중감량에 성공하고, 혈압 조절에도 성공하니 너무나도 감사하다. 눈의 시력도 점차 회복되니 감사하다. 허리에 ‘배둘레햄’을 달고 산 때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허리춤의 선이 선명하다. 탁구를 통해 분발하며 좀 더 운동을 해야 할 모양이다.

 

“내년부터는 주빈이 돌보는 문제를 어찌해야 좋을지...걱정이네” 걱정스러운 나의 말에 아내는 조금도 지체함이 없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돌보아야 해요.” 나는 또 할 말을 잃는다. “.......” 오히려 아내가 나를 위로한다. “힘은 조금 부치지만 이제는 서로 교감이 되고 있어요.” “......” “주빈이가 다가와 팔짱도 끼는걸요.” “......” “이제 건강을 되찾았으니 다시 힘닿는 데까지 섬겨야지요.”

 

헌데, 12월 정기모임에 주빈이가 안 보인다. 미경 자매도 주빈이의 예쁜 여동생 두 자매들도 안 보인다. 다음엔 꼭 나와야 할 텐데, 뭔가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는 모양이다. 모죽(毛竹:대나무 뿌리)은 뿌리를 심어도 수년간 싹을 틔우지 않다가 5년이 되면 드디어 대나무를 밀어 올린다. 하루에 50센티미터 이상까지 밀어 올린다. 모죽이 5년간 뿌리내리는 길이는 장장 5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그녀의 가슴에도 모죽의 시간이 지나 크게 성장, 성숙하기를 기대한다. 주빈이와 서영이 채영이 모두 잘 자라나 주기를 기대한다.

 

 

이참에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연일 새벽마다 기도해주는 ‘기도 대장님’들, 모임 때마다 수고해온 ‘행복도우미’들, 그리고 40여 회에 이르는 모임마다 달려온 강사님들께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창원에서 사역하는 GS리더십 연구소장 하성재 박사님, 인천까지...토요일에 서너 차례나 올라와 열강을 해 주셨다. 사명 없이는 달려올 수 없는 거리다. 강원도 홍천의 모곡 무궁화동산을 운영하시는 현재호 선생님, 대체의학을 통해 회원들의 체질을 모두 분석해주시고 노년을 힘차게 달려가는 조원일 원장님, 우리 모임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김수영 동화작가 선생님, 스에나가색채심리연구소 백낙선 교수님, 미술치료에 열성을 보여주신 윤병숙 선생님, 색채심리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유치해주신 이금자 선생님, 부모교육에 일가견을 보여준 이가희 선생님, 한상효 선생님, 색소폰과 오카리나로 위대한 맘들을 눈물 나게 해 준 신비원 색소포니스트, 상담적 기법으로 자녀와의 대화법을 가르쳐준 송영진 박사님, 마술로, 비즈공예로, 때로는 노래로, 혹은 클레이 점토 놀이로 수고하신 많은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연재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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