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저는 경기도 광주시 광주성결교회를 섬기고 있는 조완호 집사입니다. 목표를 바라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삶의 굴곡이 심해서 평범한 분들과 비교해 보면 삶의 길이가 서너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마다 저와 제 가족을 건져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서툴지만 끝까지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년 말에 성가대 발표회도 잘 끝냈고 새해가 되면서 지휘자가 몇 번인가 강조 했다. 새해부터는 실력을 보아서 성가대 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의 연습시간에 다른 때와 다르게 남성파트 연습이 자꾸만 끊기면서 연습이 반복되니까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결국은 앞에 앉은 여성대원들이 뒤에 앉아 있는 남성대원들을 뒤 돌아보면서 “오늘은 왜들 그래?” 하는 그러한 표정이었다. 나도 조금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분위기에 위축이 되어서 목소리를 낼 자신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랬더니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연습이 끊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도 어렴풋이 무언가 느낌이 왔고 당황했다.

연습이 거의 마무리 될 때 쯤 해서 지휘자가 앞에서 큰소리로 지적 했다. “조 집사님! 오늘은 쉬세요!” 순간 얼굴이 확끈거리고 가슴은 쿵당 쿵당 했다. 일반사회 속에서 그랬더라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느냐고 하면서 큰소리치고 즉시 뛰쳐나가겠지만 교회에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시간은 성가대석에서 립싱크를 하면서 겨우 참아냈다. 예배후의 연습시간은 빠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 할수록 마음이 많이 허전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적당하는 것이 무척 창피했지만 이를 악물고 다짐 했다. 내가 이 정도의 일로 교회를 그만 두지는 않겠다. 다만 누구든지 나를 보고 성가대를 다시 하자고 하면 그 때는 내가 이 교회를 떠난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그 후로 몇 주간은 다른 예배시간에 예배를 드리면서 같이 성가대 했던 분들과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아내도 아쉬워했고 특히 조장님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년 초에 일찍 성가대를 그만두고 주일 예배만 다니는데 그 해의 가을쯤에 조장님이 또 다른 성가대를 권유했다. 두 손을 살레 살레 흔들었다. “무슨 소리 입니까? 한번 망신당했으면 되었지! 두 번 다시 망신당하고 교회를 떠나야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조장님이 하는 말이 1부 예배의 성가대인데 처음 새로 조직 하는 성가대라서 실력에 관계없이 성가대석에 앉아만 있어도 은혜라고 하면서 조장님도 그 성가대에서 봉사 할 것이라면서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조장님하고 같이 성가대하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인데 문제는 합창 실력 이었다. 조장님이 또 권유의 말 중에서 지휘자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어려서부터 선명회 합창단을 하면서 지금까지 합창과 지휘만 하신 노련한 분이고 한국말을 할 줄 알고 사람의 음성만 나오면 가능 하다고 했다. 지휘자가 나 같은 사람도 합창단 단원을 만들 자신 있다고 하면서 계속 권유를 받으니까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지휘자의 요청도 있지만 조장님과 함께 성가대를 한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결국 승낙을 했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의 금요일 저녁에 새로 시작하는 1부 성가대의 연습이 시작 되었다. 처음 연습실에 모였는데 소프라노 3-4명 알토 3명 테너 없슴 베이스 3명! 총원 열 명이나 될까 말까 하는 정도였다.  파트별로 발성 연습을 시켜 보는데 알토파트에서 기본음으로 “우~~~” 한번 발성하는 것을 보고 지휘자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정확히 3명이서 3부 화음이네요!”  내가 보기에도 그 분들이 성가대 봉사가 좋거나 지휘자의 요청에 오신 분 들 이었지 실력으로 오신 분들은 아니었다. 다음은 남성파트 연습인데 테너파트는 없으니까 베이스 파트 연습이었다. 한명은 성가대장이고 한명은 지휘자의 친동생이니까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성가대의 경력과 실력이 있는 분 들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은 나 혼자 였다.  미리 조장님을 통해서 사전에 정보를 주었지만 그래도 자신 없기는 마찬가지 였다. 나에게 한번 발성을 시켜보고는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 되었다. 나의 차례가 되면 지휘자가 내 뒤로 와서는 내 귓가에 바짝 대고 자기의 음성을 들려주면서 나보고 그대로 따라서 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음을 완전히 외우게 하는 것 이었다. 또 한 호흡법을 천천히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완전히 개인교습 시간이었다. 신기한 것은 유행가를 그 시간동안 그렇게 노래했으면 목이 쉬었을 텐데 지휘자 말하는 대로 발성을 하면 등에서 땀은 나도 목은 아프지도 않고 쉬지도 않았다. 그렇게 2-3주 정도 연습하고 첫 번째로 1부 예배의 성가대로 예배에 참석해서 찬양 하든 날은 내 자신이 제일 큰 감동을 받았다. 다른 성가대원들도 자신들이 감동 할 정도로 찬양도 잘 했고 성도석의 반응도 무척 좋았다. 

예배 후에 기도 받으러 교구 사무실에 들렀을 때에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격려를 해 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을 지휘자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고 나니까 그 다음 부터는 자신이 생겼다. 베이스음을 장조에 관계없이 첫 번째 줄, 또는 첫 번째 칸의 음을 완전히 외워 버렸고 계속해서 연습을 반복 하니까 나중에는 처음 받아본 악보도 박자에 관계없이 음정만은 이어갈 수 있었다. 나도 4부 합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또 다시 성가대의 생활이 즐거우니까 교회의 모든 생활에 신바람이 회복 되었다. 그리고 그해 년 말에 신앙생활 최초로 성가대의 임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신앙생활 2년차인 1990년을 행복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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