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최대의 악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 부패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제 7 계명을 다루면서 최고의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아마 부부간의 성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리고 최대의 부패와 더러운 것이 있다면 성적 타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합당한 관계, 곧 부부 간의 성은 거룩한 것이요 선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사실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과 주의 백성과의 완전한 연합을 표현하실 때 다른 것이 아닌 부부의 연합으로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1-32).

성경은 사랑과 연합의 관점에서 볼 때 부부 사이의 성 만족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에서 문제가 되고 큰 죄악이 되는 것은 결혼 언약 관계를 벗어난 모든 성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셨을 때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어서 보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주께서는 하와를 만드셔서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이때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로 데려오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남녀 간의 성은 사람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것이요, 나아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람들에게는 성적인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거룩하게 채우실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결혼 언약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에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고 진술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있었던 성적 욕구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적인 욕망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사실, 여호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격 간의 연합의 신비도 부부간의 결합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 5:1-2)

이는 부부 간의 성은 두 육체가 한 육체가 되는 신비한 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 언약 내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성(Sex)이 선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기독교 외에 많은 세상 종교들과 철학들이 “성”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럽게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플라톤의 철학적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은 거룩하고 순결하지만 보이는 것은 열등하고 천박하고 불결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영혼은 거룩하지만 육체는 더러움 중에 더러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두 육체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성적 관계”는 가장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을 더럽게 여기는 플라톤의 사상은 성을 멀리 하는 자들을 거룩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철학은 금욕주의를 만들게 되었고 나아가 수녀, 사제 제도처럼 결혼을 금하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는 그들을 매우 거룩하게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언약 안에서의 모든 성은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사람이 누리는 축복 중에 대단히 큰 축복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이 정죄하는 바는 성적인 욕망을 불법으로 만족시키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결혼 언약 밖에서 갖는 성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이를 “음행”의 죄라고 부릅니다. 즉, 합법적으로 결혼한 사람외 다름 사람과 갖는 모든 성적인 관계가 음행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아름다운 것의 타락은 가장 더러운 것이 되기 때문에 성적 타락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매우 불편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다루고 있으므로 다루어야 합니다. 또한 타락한 시대의 특징은 음행이며 그 음행이 일반화되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성경의 지적은 더더욱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성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현재 이 세상이 말하는 성범죄와 성경이 말하는 성범죄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세상은 장성한 총각ㆍ처녀들이 서로 합의 가운데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 죄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큰 죄로 봅니다. 성경은 총각ㆍ처녀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녀 및 남창이 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성경적인 기준을 내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 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성적 타락의 정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7계명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하여 해석해 주십니다.

첫째는 음행 죄가 있습니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신 22:28, 29).

성경은 결혼 언약이 있기 전에 성관계를 갖게 된 경우 그 남자는 사통한 젊은 여자와 반드시 결혼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29절).

이때 결혼 전의 성 관계는 다른 성적 타락보다 극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거스르는 것이므로 죄가 됩니다. 그리고 이미 두 사람이 한 몸 되었기에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과 성관계는 반드시 함께 병행해야 함을 뚜렷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결혼 언약이 없는 성관계란 허용되지 않습니다. 결혼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맺는 언약이며 오직 그 이후에야 성을 통해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 언약이 있기 전의 성적인 관계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죄가 됩니다. 이는 음행의 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셔야 합니다.

둘째는, 간통죄입니다. 이 죄는 결혼하기 전에 총각ㆍ처녀들이 짓는 성범죄보다 훨씬 심한 음행 죄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결혼 전에 발생한 두 남녀 사이의 음행 죄에 대해서는 그들이 서로 결혼하게 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자들이 성관계를 맺을 경우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

돌로 쳐 죽이는 이 처형에서 유일한 예외는 자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한 여인의 경우입니다. 그러할 경우 남자는 돌로 쳐 죽이고 여자는 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간통의 죄를 대단히 큰 음행의 죄로 보고 있습니다.

셋째는, 근친상간의 죄입니다. 이 죄악은 음행보다 더 무섭고 간통보다 더 무서운 성적 타락입니다. 신명기 27장을 보면 근친상간의 죄가 나옵니다. 이 죄에 대하여는 모든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저주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죄는 가족 공동체를 완전하게 파괴시키는 죄로서 이 죄를 범한 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로 타락한 죄악으로 보는 것입니다.

신명기 27장 11절 이하를 모세가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1, 20-23, 36).

넷째는 수간죄입니다. 이 죄는 간통죄보다 더 무섭고 근친상간보다 더 타락한 더러운 죄입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2:19).

이 죄는 사람을 짐승과 연합하게 하는 죄로서 자신을 짐승과 똑같은 존재로 만드는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스스로 짐승이 된 것과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에 그는 주의 형상을 지독하게 더럽힌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일반 은총은 이러한 본능이 사람에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무한하게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다섯째는 동성애입니다. 수간의 죄를 범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추악하고 무서운 성적 타락이지만, 이 죄악을 더 넘어서는 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

사실 수간은 짐승과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죄이지만, 동성애의 죄는 짐승 이하로 스스로 떨어지는 죄악입니다. 그 이유는 짐승들도 이러한 연합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롬 1:26-27).

동성애의 성적 타락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성적 타락입니다. 동성 성관계의 죄는 사실 고대 헬라와 로마 세계에 매우 만연했던 죄였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 죄악은 점점 더 두드러진 죄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5월 11일에는 한국 예장통합 교단의 뿌리로 여겨지는 미 장로교(PCUSA)에서 동성연애자들을 안수 집사, 장로, 목사를 안수하고 세우는 것을 공적으로 허용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였습니다.

현재 하나님을 거슬러 이러한 죄악을 옹호하려고 하는 무서운 단체들이 많이 일어나 단체 행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현상으로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성경에서는 한 사회의 멸망이 있기 전에 동성애의 일반화 현상을 말합니다. 사사기를 비롯한 여러 성경의 묘사에 의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사라질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은 여러 종류의 음행과 함께 그 끝은 언제나 동성연애의 보편화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예비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러한 이해를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성경대로 생각할 때 이 세상을 본받지 않을 수 있으며 죄를 죄로 여기고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회개할 때만이 죄 사함이 있을 수 있고 회개가 있을 때만이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믿음으로 이제 곧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좋으신 예수님께서도 제 7계명에 대하여 산상수훈을 통해 설교해 주셨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 5:27-28, 31-32).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음욕의 마음을 품는 그 때부터 이미 간음함이요, 그리고 음행의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간음함이요, 또한 버려진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도 간음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도색 잡지를 본다거나 또는 인터넷에서 야한 동영상을 본다거나 혹은 지저분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 자체가 이미 간음죄에 빠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부추겨 음욕을 품게 하는 것들을 피하셔야 합니다. 또한 마음으로라도 그러한 음욕을 품게 되었다면 반드시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더러운 상태에 머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혹시 이러한 음행의 죄에 빠진 적이 있거나, 지금도 이러한 죄들을 짓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신속하게 회개하셔야 합니다. 진심으로 이 시간에 당장 돌이키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어떠한 성적 범죄도 다 용서하십니다. 회개한다면 흰 눈처럼 씻기십니다. 그러므로 깨끗이 씻고 일어나기 바랍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용서 받는 것은 용서 받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러한 자세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다시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새출발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만일 회개하기 보다는, 세상이 다 그러한데 성경의 요구가 조금 지나친 것 아닌가 라고 하면서 음행과 간음을 합리화한다면 어느새 그 양심은 화인 맞게 되면 반드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지옥불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그러나 음행이 죄라는 사실을 시인하고 주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하심을 믿고 일어난다면 우리 주께서는 반드시 우리들을 음행의 죄악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이제 음행의 충동을 다스릴 수 있는 몇 가지 성경적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는 독신의 은사를 주셨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성관계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 19:12) 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어떤 자들은 성적인 욕망이 있어도 그리스도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해 이러한 욕구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진정으로 온 맘을 드린 자들로 하여금 성적인 충동과 욕구를 충분히 다스릴 능력을 주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믿으십니까?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분히 이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적 충동을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합법적인 결혼 관계를 활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적 충동과 욕망을 조절하는 방편으로 결혼 제도를 사용할 것을 권면합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 7:9).

잠언 5장은 탕녀에게 빠지지 않는 방법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아내를 가장 고귀하게 알아 그 아내를 통하여 만족함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그 만족함은 신체적, 정신적, 특별히 영적 만족도를 말합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잠 5:15-20).

또한 성경은 경건한 형제 자매들과 함께 믿음의 깊이를 더해 갈 때 세상의 음란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즉, 믿음 안에서 함께 할 때 신앙이 크게 깊어가면서 청년의 정욕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1-2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미 검토한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간음하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근본적인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자유하려면 사탄의 유혹에 미리 이겨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은 사실 큰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작은 것은 바로 눈, 귀, 대화를 통하여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성적 더러움을 야기하는 세상 문화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 귀,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부터 자신을 절제하고 걸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속한 타락한 문화가 계속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고 나아가 기회가 닿으면 죄악을 계획하여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보호하려면 항상 눈과 귀와 대화의 순결부터 먼저 추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음행을 영혼의 부패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세상 신들을 섬길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성적 타락이었습니다. 따라서 성적인 범죄는 무엇보다 먼저 믿음의 안일함과 부패에서 발생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에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성적인 죄는 몸 안에 짓는 죄이기 때문에 한번 무너지면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몸 안에 짓는 죄라는 뜻은 내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 자체도 그 타락의 맛을 알아 언제나 굶주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성적 범죄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성 범죄를 이미 저지른 사람들이 몸에 익은 성적인 죄를 이기는 길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상담으로도 안 되고, 약으로도 안 됩니다. 전자 발찌를 채운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 즉 생명의 성령의 법 외에는 몸에 물든 성적 범죄를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지금 세속 사회는 혼외 정사에 대하여 죄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낭만이요 멋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타락한 세상 사조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거민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성애의 삶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과연 문제는, 누가 그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그러한 삶의 모습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 전부 멸망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들이 다 그러니 괜찮겠지’라는 착각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이 세상이 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 받더라도 나 만은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바로 서야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사랑할 때 가장 깊은 남여의 연합이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결혼의 언약 안에서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모든 성적인 만족도 끝없이 무한하여집니다. 이렇게 거룩한 연합을 이루며 올바르게 서로를 마시고 즐길 수 있을 때, 죄악된 유혹에 대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거룩한 방법으로 참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때 세상의 사탄의 유혹에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배고픈 사람이 빵을 훔치게 되는 것처럼, 성도들이 주 안에서 만족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세상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체의 욕구를 막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결혼 안에서, 그리고 부부 사이의 경건한 연합을 통해 온 몸과 마음의 하나 됨의 욕구를 채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 2:18).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제 7 계명은 영적인 하나됨이 육적 하나됨보다 훨씬 앞서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영적인 하나됨을 체험할 때,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때, 모든 육적 부분의 연합도 더 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초월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진정한 면에서는 영적으로 더 깊어질수록 때에 따라서는 육적인 부분이 싱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함의 지식에 빠지길 바랍니다. 이는 주를 아는 기쁨과 황홀함, 그리고 주 안에서 연합하는 영적 사귐이야말로 이 세상의 더러운 쾌락과 음행의 쾌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극한 황홀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들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3-16).

오늘 이 말씀을 마음속에 두시면서 우리의 여생에 언제나 제 7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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