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5일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자신에게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 아내와 사는 남자가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는데 마음은 따로따로입니다. 자신의 사랑에 화답하지 않는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이 남자는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참으면서 그런 아내와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런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결혼했고 또 그런 아내를 변화시켜 마침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아내로 만들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 끝없이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아내를 설득하는 이 남편의 사랑은 너무 아픈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종종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런 남편으로 비유합니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해서 예수를 영접하면 그때부터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내주라고 부르는 이것은 마치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마음을 나누며 같이 살아가는 부부가 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순간부터 이 사람은 모든 면에 있어서 남편 되신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그 뜻을 따라 사는 영적인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아직 자신의 뜻대로 살고 싶은 죄 성이 남아 있으며 그것을 간섭하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싶은 타락한 본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도의 삶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앞에 내어드려야 할 삶의 영역들을 내어드리지 못하고 끝까지 자기가 붙들고 놓지 못하는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면 자신을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서로에게 맞추는 삶을 살아야 행복한 부부가 되는 것처럼 신앙도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맞추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 사도의 기도는 바로 이것을 위한 기도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해서 기도한 뒤 곧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기를 원한다고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에베소교회의 교인들은 이미 신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에는 멀리 있었으나 지금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 가까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자들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도 그들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도 사도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 마음속에 계시기를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이 말은 예수를 믿어 이미 그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생활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주님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내어드리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가 주관하며 자기가 고집하는 어리고 가난하고 미숙한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신앙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아시죠?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도발했을 때 사울 왕과 모든 백성들이 그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성경은 그때 골리앗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키는 얼마나 크고 그가 입은 갑옷이 어떻고 투구는 어떻고 칼은 어떠한가를 아주 자세히 설명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한마디로 골리앗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사울과 이스라엘이 겁먹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던진 물멧돌에 나가 떨어졌다고 우습게보거나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직장생활 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달 월급 100만원 받으려면 500만원어치의 노동력과 땀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해보십시오. 장사하려고 해보십시오. 사업하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사업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활짝 문을 열어주면서 환영하고 길을 터주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골리앗처럼 우리가 겁먹고 두려워할만한 충분한 무장을 하고 거대하게 다가와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면서 큰소리칩니다. 그 소리 다 듣고 그 모습 다 보고 있으면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모습과 내용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가 시키는 대로 살지 못하고 그 소리에 주눅 들어서 세상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죠.

왜 예배드릴 때는 그리스도가 계신 것 같은데 자식 공부시킬 때는 그리스도가 없는 것 같습니까? 왜 기도하고 찬송할 때는 그리스도가 계신 것 같은데 장사하고 사업하고 직장생활하고 결혼할 때는 그리스도가 전혀 계시지 않는 것 같습니까? 그것은 만만치 않은 세상의 모습과 그들의 외치는 소리에 우리가 지레 겁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내 마음에 계시게 할 수 있습니까?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라고 기도합니다. 믿음으로입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가 없는 것처럼 산다고요? 믿음을 발동하지 못해서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이 세상보다 크고 강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분이 내 삶을 주관하고 다스리며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사용하고 발동하지 않아서 현실에서는 전부 주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때 믿음을 발동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진 상대가 언제 또 내 앞에 나타날 것인가? 이 사람을 놓치면 다시는 이런 사람이 나하고 결혼하자고 덤비는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주님 잠시만 눈감아 주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이 사람 마음을 사로잡아서 일단 결혼부터 하고 그 다음에 주님의 뜻대로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할 때 그렇게 합니다.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이니 주님 눈 감아 주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이 기회를 살려서 사업을 일으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면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믿음이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사람이 맞다면 나의 신앙과 신앙에 근거한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을 분명히 밝혀도 그것 때문에 내가 싫다고 떠나지 않습니다. 만약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가진 신앙과 거기에 근거한 내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깨어진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장사나 사업의 경우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가 맞다면 신앙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취소되거나 계약이 불발되지 않습니다. 만약 신앙적인 방법으로 해서 기회가 사라지고 계약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건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보기에 중요한 일에는 마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것처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처럼 살기 위해서는 사실도 중요합니다만 그 사실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눈이 더 중요합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할 때 10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이제 다 죽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너무 크고 장대하고 그들이 가진 힘과 무기는 도저히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강한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보고한 것이 사실입니까? 아닙니까?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나 입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가나안은 만만치 않습니다. 골리앗처럼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그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그 사실을 해석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으로 분명한 사실을 해석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계신 것처럼 살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저들을 취하라고 했으니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해석을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도 믿음으로 골리앗을 해석했습니다. 골리앗은 분명히 거대한 장수였고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볼 때 자신이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상대했던 사자들과 맹수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다른 무장도 하지 않고 물맷돌만 들고 나간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 감정, 의지가 주님께 통제되어지고 주님께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이 전부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믿습니다.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나의 생각을 굴복시켜야 되고 나의 감정을 주님께 드려야 하며, 나의 의지를 말씀에 순종시켜 주님의 뜻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마음에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제적으로 우리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의 간섭과 통제와 다스림을 받는 삶의 진전과 성숙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