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7-15

빌립보서 3:7-15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누가복음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예수께서는 재림의 때를 말씀하시면서 주를 영접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롯의 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을 미워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 하셨다는 점에서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롯의 아내처럼 되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고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롯의 아내에 대해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롯의 아내는 여러분들처럼 풍성한 교회 공동체와 여러 신앙적인 특권들을 누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가정 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암흑과 무지와 미신과 죄 가운데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들과는 달리 대단히 큰 영적인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롯과 결혼할 때, 롯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남자였습니다. 특히 그녀가 롯과 결혼하게 되면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녀에게 삼촌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향해 대단히 깊은 통찰력이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롯의 아내가 사라로부터 받은 영적인 영향력은 대단히 컸을 것입니다.

이처럼 롯의 아내는 신실한 남자들과 믿음의 여인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지식과 기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 제단을 쌓을 때에 그곳에 있었고(창 12:8),  그녀와 롯이 소돔으로 이사와서 살아갈 때 어느날 천사들이 소돔으로 찾아와서 롯과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경고할 때 그녀는 천사를 만났으며 또한 천사들의 경고를 분명하게 들었습니다(창 19장). 천사들이 롯의 가족을 성 밖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들의 손을 붙들었을 때 그녀의 손도 천사들의 손에 붙들렸습니다(창 19:16).

하지만 이 모든 특권들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복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불신의 상태에서 비참하고 불경한 모습으로 회개치 못한 상태로 죽었습니다. 그녀는 외적으로는 그녀의 남편의 종교를 따랐지만 내적으로는 그녀의 마음은 세상의 쾌락과 물질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지도 않았고, 주의 기쁨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주께서 그녀를 미워하셨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적인 특권을 가진 것만으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롯의 아내는  우리에게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데는 종교적인 특권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종이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죄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그들에게는 믿음으로 인한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특권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종교적인 특권이 주어지면 마치 자신들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큰 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특권을 누리면서 롯의 처처럼 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경건한 부모가 있다고 자동으로 구원 받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복된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구원 받을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성경을 읽고 찬양대를 한다고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와 믿음, 그리고 이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와 거룩한 삶의 열매입니다.  

성경은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고 기록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은 그녀의 마음이 정녕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그 중대한 순간에 소돔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의 약속과 나라보다는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재미있고 풍성한 죄악의 도시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둘쨰,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은 주께서 천사를 통해 주신 직접적인 명령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천사는 분명하게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 딸들에게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롯의 처는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방금 전에 받은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으로 볼 때, 롯의 아내는 평소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셋째, 롯의 아내는 소돔을 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이 경고를 불신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2, 18-19)

넷째,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것은 그녀가 소돔을 사랑한 것을 입증합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생명보다는 이 땅의 재물과 집과 보물에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약 4:4).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2:15).    

사랑하는 여러분!
롯의 처는 살인자도 아니고 간음한 자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본 것은 세상이요 재물이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만 여전히 세상의 물질주의와 쾌락과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롯의 처를 기억함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롯의 처처럼 갑자기 멸망하여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롯과 같은 경우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 기독교 가정에서 잘 자라나지만 결국 불신자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릴 때 신앙심이 좋아 보였지만 청년이 되고 나서는 오락과 인터넷에 중독되어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소녀들은 장성하면 할수록 멋 부리는 것과 친구들과 노는 것 외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점점 롯의 처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 중에도 처음에는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 사업과 직장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신앙을 저버리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직장이 없던 때는 직장을 얻으면 주께 자신의 삶을 다 바치겠다고 주 앞에서 맹세도 하고 부지런히 그리스도를 따랐지만, 막상 직장을 얻고 난 후에는 마음이 변해서 점점 더 신앙 형식에는 물들어가지만 내면의 성품은 전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신자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세상의 풍조에 물들더니 어느덧 롯의 아내의 발자취를 따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라는 날에 미지근한 신앙을 해결하기 바랍니다. 사람들을 의식하며 외식하는 신앙을 당장 정리하기 바랍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마 6:1, 2, 5, 16)

내 자신을 훌륭하게 보이려는 동기를 가지고 교회 다니는 것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오직 다른 이유 없이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때문에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고 철저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기 바랍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앙망하며 믿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최고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롯의 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창세기 19장 26절을 보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노하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 그녀가 즉사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아직 건강한 상태였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즉사하였습니다. 롯의 아내처럼 죄를 짓다가 현장에서 즉사하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종말은 롯의 처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입증합니다. 그녀는 잠깐의 기도조차 드릴 시간이 없이 죄 가운데 즉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즉사한 경우는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이 주의 종에게 반란을 일으키다가 지진에 삼킨 바 되었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직분을 통해 횡령과 음행을 행하다가 전쟁터에서 즉사하였으며, 그 외 사울 왕, 아합 왕, 압살롬, 벨사살, 가룟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그들은 회개할 기회조차 없이 갑자기 멸망 당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살다가 죄 가운데서 망하여 죽은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은 죄 가운데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지 못한 자로 판명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확인하기 바랍니다. 지옥을 두려워하기 바랍니다. 롯의 아내처럼 죄 가운데 죽음을 당하면 지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까? 참으로 기다립니까? 어느 날 우리는 죽음을 통해 주를 만나게 될 것이고, 또 어느 날 우리는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 예수께서는 모든 불신자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참으로 여러분은 이 땅에서 죽음을 지날 때 천국에 들어가는 주의 백성이 맞냐는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그 성이 이제 곧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다고 멸망한 것처럼, 불신자들마다 죽음 이후에 곧바로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더 이상 늦기 전에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숨은 죄악들을 버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양심을 속이는 작은 죄악들이 우리를 롯의 아내처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정상이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거듭난 자라면 성령의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철저하게 회개하고 온 마음을 다해 믿음을 지킬 것이며 쉬지 않고 경건의 훈련에 힘쓸 것입니다.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딤전 4:8-9)

지금은 말고 나중에 한 참 살다가 죽을 즈음에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한 생각은 마귀에게서 나온 지독한 어리석은 미려한 생각입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고 당장 회개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의 일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에게 사로잡힌 상태이며, 롯의 처의 뒤를 따르는 것이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바울이 말합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롯의 처처럼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즉,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와 육신의 정욕을 미련하게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앞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그러면 바울이 말한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려야 한다”는 뜻은 무엇이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뜻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뒤에 있는 것”은 그가 과거에 가졌던 유대인의 특권을 뜻합니다. 
[4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또한 그릇된 지식과 열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가슴 아픈 죄악들이기도 합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자라”(빌 3:6).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복음과 무관한 모든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또한 그릇된 지식과 열심으로 인해 저지른 죄악들 및 세상을 사랑함으로 지은 수많은 죄악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잊어야 합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도다”(골 2:13-14)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에 의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구원 얻는 것과 영생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것을 확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야 그는 과거에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기던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다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과거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 바울은 그 푯대를 부활과 연관시킵니다. 14절에서는 부름의 상과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바울 자신도 아직 그 푯대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푯대를 향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혔기 때문이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힐 때에 그 푯대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푯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울이 말한 푯대를 분명하게 알기 위해 빌립보서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의탁하며 수없이 반복하여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바울이 말한 푯대가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먼저 1장 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착한 일은 시작일 뿐이고 그 완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물론 그 완성도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상관이 있습니다.

1장 9-11절을 보면 바울의 기도가 있는데 그 기도는 뚜렷하게 그 푯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9-11)

그 푯대는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허물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을 뜻합니다. 또한 여러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그 푯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는 지식과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하여 서로 사랑이 깊어지는 단계가 있고, 또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바울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푯대를 이루어가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고 알려줍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2절을 보면,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2-14)

이 말씀은 주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착한 일을 너희도 그리스도를 더욱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그분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그 구원을 완성시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 그 푯대입니다. 이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불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작된 안전한 구원은 단지 시작일 뿐이니 그리스도께서 그 구원을 완전하게 이루는데 있어서 너희도 온 마음과 뜻을 다해 두렵고 떨림으로 동참하라는 뜻입니다.

이에 13절의 설명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소원도 주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흠도 없이 정결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거룩한 부활의 능력으로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 그 힘을 받게 되면 넉넉히 그 푯대를 향하여 완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의 본문으로 돌아와 읽으면 이제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9-14, 16)

그러므로 우리가 내다보아야 하는 앞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 성품이 흠도 점도 없이 정결하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정결하고 흠 없는 믿음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인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써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 어느새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나아가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우리는 오늘 롯을 통해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 뒤를 돌아볼 경우 멸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을 통해 우리의 남은 삶을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가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흘러 넘침으로 매일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다 함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보람찬 사역에 동참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위 설교 중 앞부분의 일부는 존 라일의 <거룩>에서 응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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